스내커

우리 사이,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오만과 편견>을 쓴 영국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라고, 남자는 아무 말 안 해도 되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말한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사이’나 ‘아무 말도 안 해도 되는 사이’는 얼핏 전혀 다른 관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같은 말이다. 두 경우 모두 ‘서로 신뢰하는 사이’라는 점이다. 서로 신뢰하기 때문에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거고 아무 말 안 해도 이심전심 마음이 통한다. 직장에서도 이런 관계는 가능할까. 신뢰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 30년을 한결같을 수 있는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동료나 상사, 부하 사이가 물론 사랑하는 연인 사이와 같아야 될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신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신뢰를 쌓는 데는 굳이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든 비즈니스로 맺어진 사이든 모두에게 신뢰는 꼭 필요하다. 신뢰는 한결 같은 태도, 즉 일관성을 말한다. 

‘국민MC’ 하면 아마도 유재석 씨가 떠오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30년 가까이 이끌어 온 송해씨야말로 모든 MC의 멘토로 ‘원조 국민MC’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는 30년 가까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노래와 장기는 물론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 그 고장의 특산물까지 소개해왔다. 한때 나이나 건강 때문에 이 프로그램 은퇴 선언을 하고 MC 자리를 떠난 적도 있었지만 그의 빈자리를 손색없이 채워줄 적합한 새얼굴이 없었다. 결국 오래지 않아 열화와 같은 전국 애청자들의 청원을 무시하지 못하고 다시 복귀했다.

시청자와 참여자를 움직인 힘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깔끔하고 똑 떨어지는 칼 같은 진행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방청객들이 춤을 추고, 극성스런 출연자들이 그의 뺨을 부비고, 껴안고, 특산물을 억지로 먹여주어도 그는 싫은 기색 없이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다 받아준다. 한결같이 이렇게 하기도 힘들다. 변함없이 늘 자연스럽고 익살맞고 너그러운 캐릭터가 많은 시청자의 마음에 신뢰를 쌓은 것이다. 덕분에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금융 광고 모델에도 발탁되어 톡톡한 광고 효과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여든 중반의 나이에 젊은 시절보다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는 흔치 않은 방송인으로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송해씨는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그에겐 시청자나 출연자가 동료이고 곧 고객이었다. 한 직장에서 30년을 일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관계를 30년 이상 이어갈 수 있다. 서로 일터는 달라져도 지금 내 옆의 동료와 쌓은 신뢰를 평생 이어간다는 생각으로 한결 같은 태도와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자. 

# 쌓인 시간 만큼 견고해진다
왕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신하에게 자신을 맡길 음식을 책임지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의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왔다. 왕의 음식관리를 제대로 못한 중죄로 법에 따라 오랜 시간 왕의 음식을 관리하던 신하는 한 순간에 죽음을 면치 못할 위기에 처했다. 신하는 변명하지 않고 왕에게 고했다. “뼈도 자르는 칼을 가지고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했으니 죽여주소서! 모든 것을 태우는 뽕나무 숯불을 가지고도 머리카락을 못 태웠으니 죽여주소서! 모든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도 머리카락을 보지 못했으니 죽여주소서!” 하지만 오랜 세월 신하를 신뢰해온 왕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조사하게 했다. 결국 만들어진 음식을 왕의 처소에 옮기는 신하가 머리카락을 넣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억울한 신하는 죽음을 면했다.

신뢰가 견고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신뢰 관계를 형성한 사람 사이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너그럽게 넘어갈 수도 있다. “내가 오랫동안 봐왔는데 그래도 그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듣기까지는 일관된 태도로 서로 믿고 일해온 시간이 쌓였을 때 가능하다. 지금 한 가지의 실수로 저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 않게 하는 힘이 쌓인 것이다. 그러려면 실수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시정하려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구하지 않은 신하의 태도가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하지만 신뢰는 긴 시간 동안 쌓아왔어도 한 번의 치명적 실수로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유리병 같은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정직하지 못한 행동,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동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신뢰관계에 금이 갈 정도의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며 살펴야 한다. 자기 앞의 성과나 이익, 칭찬에 눈이 어두워져서 순간 판단력이 흐려지며 유혹이 흔들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비즈니스 관계에서 신뢰는 곧 성과이고 매출이다. 더 멀리 보고 가야 한다.

# 잘 나가는 사람이 위험하다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재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위치에 있을 때의 태도 변화를 유심히 살피는 일은 꽤 중요하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준다면 그 사람은 크게 성공할 수 있는 확률에서 점차 낮아진다.

자신이 아쉽고 필요할 때는 필요한 사람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인사하고 챙기다가도 자신이 그 사람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확실히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사람이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인사를 하면 그만이다. 새 사람이 오면 그 새 사람과 다시 사귀면 된다. 과거의 인연까지 관리한다는 것은 너무 피로하고 비용에서 손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요즘 잘 나간다고 생각할 때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베풀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롤러코스터다. 누구든 요즘 시대엔 지금 잘 나간다고 그 전성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잘 나갈 때 젠체하거나 거들먹거리느라고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 놓지 않아서 손해 본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 이게 꿈이 아닐까” 싶게 좋을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건 악몽이었어” 싶게 처지가 나빠질 때도 있다. 그래서 과거엔 잘 나가서 사무실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나 요즘은 뭔가 잘 안 되는 사람, 어려움에 처한 사람, 시쳇말로 별 볼 일 없어진 사람들도 무시하지 말고 배려하고 변함없이 대해야 한다. 어려울 때 어려움을 알아준 사람이 가장 고맙다.

사람의 삶은 알 수 없다. 만약 은연 중 자기는 항상 잘 나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부터 생각을 다시 하고 가치관을 다시 세팅해야 한다. 하는 일이 잘 되고 거침이 없다 싶을 때, 그때야말로 겸손하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때인 것이다.

전미옥 / CMI연구소 대표, jeon@mycmi.co.kr
– 이 칼럼은 범한판토스 사보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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