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치유의 커뮤니케이션 리더

입력 2013-04-11 09:00 수정 2013-04-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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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가나 사회나 기업이나 그 조직 안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모두 한 자락씩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다수의 의견을 따르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만약 겉으로 그 불만을 드러내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부딪치게 되고 내적 상처는 커진다. 진정한 리더는 이러한 갈등과 분열을 최소화하고 양 진영의 공통분모를 하나로 엮어 그간에 입었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통한 협업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평화의 커뮤니케이션 리더를 통해 관용과 화해의 메시지를 다루는 법을 배워보자.

# 가장 뜨거운 분쟁지역에 선 평화의 지휘자 - 다니엘 바렌보임
‘실천하는 음악가’라는 별명이 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유대인이지만 중동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에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발언이 정치적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1999년에 창단해 이끄는 오케스트라 ‘웨스트 이스턴 디반’의 결성 과정과 활동을 보면 그의 정치적 발언이 자기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웨스트 이스턴 디반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화해의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석한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함께 힘을 모아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단원들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이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아랍계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다른 국적, 배경, 계층, 문화를 가진 이들이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되고 음악 밖에서 대화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좁혀나가게 된다. 이들이 한 공간에서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그 존재 자체가 평화와 화해의 상징이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2005년 웨스트 이스턴 디반과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임시수도 라말라에서 위험을 무릎 쓴 공연을 성공적으로 해낸 후에도 세계 곳곳을 다니며 평화의 오케스트라 리더로 계속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도 내한해 임진각에서도 뜻깊은 공연을 했다.

‘음악’이 누구나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세계인의 언어라는 것은 모든 음악가와 청중이 공감한다. 하지만 그런 소중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가장 뜨거운 분쟁지역을 향해 격정적으로 쏟아내며 평화를 호소하는 음악가는 드물다. 바그너 음악의 애호가였던 히틀러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 음악이 연주되지 않는데, 이 금기를 깬 사람도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음악계 리더의 목적과 의도가 ‘평화와 화해’임을 믿는 단원과 청중들이 있는 한, 그의 소신 있는 활동을 계속될 것이다.

# 정적에게도 손을 내미는 국민의 참 봉사자 - 룰라 다 실바
“룰라는 내 우상이다. 그를 깊이 존경한다.” 이 말은 빈민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학력 때문에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던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을 두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다. 룰라 대통령은 재임기간 8년 동안 4천만 명의 실직자를 구하고 세계 최악의 빈곤국에서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렸다.

빈민 출신의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를 멈출 수 없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가장 먼저 찾은 사람도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며, 이후 계속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뼛속 깊이 체험한 가난과 절망은 그들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여기며 브라질 엘리트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만들었다.

노동당 출신의 그는 아주 급진적인 정책을 펼칠 거라는 예상을 깨고 보수적인 색채의 정책을 내놓으며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안았다. 지지자들이 배신감을 느끼며 비난과 저항을 할 때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장가를 안 간 총각 때의 생각과, 일단 결혼해서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이 딸린 가장의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념이 충돌하는 정쟁은 일단 먹고 살아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는 브라질을 위해서라면 적과도 친구가 되고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도 손을 잡다보니, 급기야 야당 대통령 후보마저도 룰라를 칭송하고 이를 이용하는 선거전을 치렀다. 적마저 감동시키고 무장해제 시키는 룰라의 소통 방식에는 정치적 꼼수라는 것이 없었다. 빈사 상태의 경제를 살려내고 국민을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전부였다. 이것이 빈부의 차이가 어떻든,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하나의 공감대 안에서 공명했던 것이다. 룰라는 간절함이 빚어낸 진정성만큼 파괴력을 지닌 소통방식이 없음을 보여준 세계적 지도자였다. 

#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행동하는 지도자 - 빌리 브란트
일본이 그동안 우리에게 늘 과거사에 대해 ‘유감’ 표명은 했지만, 결국 그게 형식적인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 요즘의 독도 문제도 더욱 명료해졌다.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어떤 책임도 속죄도 보상도 없이 일본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망발을 계속된다. 우리와 일본처럼 숙적의 사이가 과거 독일과 폴란드였다. 폴란드가 독일에게 받은 상처와 분노의 역사는 우리보다 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폴란드 국민들은 우리가 일본에 대해 느끼는 만큼 독일을 향해 분노하지 않는다. 그러한 관계가 되기까지 거기엔 독일의 빛나는 한 정치 지도자의 노력이 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이다.

빌리 브란트는 1970년 독일과 폴란드 관계정상화를 규정하는 ‘바르샤바 조약’ 체결을 위해 독일 총리로는 처음으로 폴란드를 방문한다.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깊게 자리 잡은 폴란드 국민들의 매서운 눈이 쏠릴 때 브란트 총리는 나치 희생자 기념관에서 전 세계가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가해국의 총리가 비에 젖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폴란드 국민들은 함께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브란트의 무릎꿇기’가 폴란드 국민에게 치유의 기폭제가 되었던 단순히 그 행동 하나로 가능했던 건 아니다. 브란트가 1970년부터 ‘동방정책’을 내세우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끊임없이 화해와 친선을 추구해온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왕따 당하기 십상이었던 독일을 용서하고 유럽사회 안에 받아들여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기도 했다. 이런 끈질긴 화해 요청과 용서받기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브란트의 무릎꿇기는 충동적인, 혹은 철저히 계산된 ‘정치적 쇼’에 불과했을 것이다.

리더의 수사가 현란할수록 진정성은 의심받기 쉽다. 말보다 한 가지 행동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그 한 가지 행동 이전에 얼마나 충분히 소통하려 노력했으냐, 얼마나 진심이 담겨있느냐가 관건이다. 상대가 아주 악의적으로 왜곡하지 않는 이상 진심은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 세계인의 평화 멘토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국가와 민족, 종교를 넘어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드문 종교지도자다. 역사적으로 종교지도자가 더 평화를 위협하고 부를 쌓고 악행을 저지른 과오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종교를 가지고 있다거나 종교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끊임없는 기도와 자기 반성, 보편적 교리의 실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돌봄, 어떤 갈등과 오해의 상황에서도 평화를 최우선에 둔 대화를 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런 의미로 볼 때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귀감이 되는 종교지도자로 손꼽힌다. 그는 교황으로 재직 시 종교의 다양성과 타종교의 신성함을 존중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파했다. 특히 그는 갈라진 형제들을 하나로 모으는 교회일치 운동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가운데 동방교회와의 우호적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힘썼다. 1979년 이스탄불에서의 전례, 1986년 로마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의 설교,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가진 평화를 위한 세계기도모임, 2002년 미국 9·11 테러 후 종교인들과 또 다른 기도모임을 열었다. 종교 역사의 라이벌이었던 이슬람교와의 화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마치 적과 같았던 이슬람교도마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라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존중’하는 것은 ‘인정’보다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 한 차원 높은 열쇠다. 존중함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고 그러면서 서로 많이 달라도 평화로운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혹은 따르는 교리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선행을 베풀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방법의 차이만 있지 목표나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처럼 방법이나 형식의 차이를 존중하고 그 궁극적  목적을 위해 마음을 모으자고 독려한 세계인의 평화 멘토였다.

모든 갈등과 오해,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와 화해의 손은 강자 혹은 가해자, 리더가 먼저 내밀었을 때 유효하다. 그 진정성의 크기에 따라 약자나 피해자, 조직원들이 호응하는 화해 무드는 더 빠르게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그래고 오래된 상처는 오래 치료해야 한다. 오래 마음을 닫고 있는 대상에겐 사랑하는 사람에게 끈질기게 구애하듯 마음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것처럼, 문이 열리고 시원한 소통의 바람이 부는 것은 생각지 못한 어느 순간 시작될 수 있다.


전미옥 / CMI연구소 대표, jeon@mycmi.co.kr
- 이 칼럼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원보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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