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에게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 남자는 그녀가 그냥 현모양처가 되길 바란다. 그를 사랑하지만 발레를 떠날 수 없는 그녀는 남자와 발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 극단적 설정은 영국영화 <분홍신>의 플롯이다. 다큐멘터리영화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분홍신>을 통해 ‘일과 사랑, 다 잘할 수 없을까?’라는 화두를 던지며 시작한다. 다이안 레인, 홀리 헌터, 맥 라이언, 기네스 팰트로, 제인 폰다, 샤론 스톤 등 37명의 중년의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일과 사생활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들이 젊고 성적 매력을 지녔을 때는 끝없이 찬사를 받으며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낌없이 주어졌지만, 나이가 들며 누구의 어머니, 심지어 할머니 역할만 맡게 된다. 또한 영화계의 관습에 따르지 않으면 쉽게 도태되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 관습과 타협하지 않았던 데브라 윙거는 결국 은퇴했다. 맥 라이언은 육아를 위해 1년에 영화 한편만 찍기로 했다. 우피 골드버그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일을 선택했지만, 지금까지 자녀에게 미안해한다.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그녀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다. 영화산업의 메카 할리우드라 해도 여배우들이 일과 사랑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건, 지금의 우리 직장 여성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006년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여성들이 지금 보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일과 사랑, 혹은 일과 가정생활 사이에서 생기는 어려움과 부담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열심히 일했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일하고 싶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는 경력을 이어가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아무리 남성이 여성의 사화생활을 긍정적으로 지지한다고 해도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을 땐 쉽게 여성에게 화살이 돌아오고 만다. 아무리 슈퍼우먼이 불가능하다 해도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들은 직장 여성선배가 일과 사랑에 대한 균형을 찾지 못하고 평소 집안일과 육아까지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 안에 행복감도 있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노하우도 있을텐데, 괴로움과 어려움만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후배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점점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성선배는 어려운 가운데도 스스로 일을 포기하지 않고 일과 사생활을 병행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후배와 함께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 같은 여성끼리 시간이 모자라면 모자랄수록 어떻게 해야 일과 가정을 부드럽고 효율적으로 이끌어, 지금보다 일에도 시너지효과를 줄 것인가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실행에 옮기는 꾸준한 움직임은 가족구성원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사실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이후 직장을 계속 다니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일과 사생활 모두에 충실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일에 집중하면 어쩔 수 없이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하며 사생활을 지켜나간다는 것에 곤란을 느껴 일을 포기하거나 사생활을 포기하려는 여성들은, 육아와 가정을 꾸려가는 기쁨과 행복을 가소평가하지 않길 바란다. 고통 이상으로 육아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느낌으로써 일과 사생활을 조화롭게 꾸려가는 여성들도 많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네’라는 식의 자책을 하기보다 가족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의 선을 명확하게 긋고 가족에게도 그런 부분을 주지시키며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해야 한다. 같이 얼굴을 붉히며 불화를 키우기보다 낮은 목소리지만 뿌리칠 수 없게 만드는 대화의 기술을 고민한다.
‘일과 사생활’, 둘 중 어느 한 쪽을 고르던 시대는 지났다. 일과 사생활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둘 다 잘되는 상승효과가 생겨나 인생이 두 배, 세 배 점점 충실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일과 사랑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경영할 수 있다면 정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 될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의 사고와 인식이 카메라 렌즈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피사체에 집중하다보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 우리 눈은 각도를 순식간에 바꾸어 사물을 볼 수 있다. 조금만 시각을 달리 하면 역경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역경과 위기 속에는 늘 기회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신념을 가지고 힘겨운 그 시간을 견디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나의 자격이 부여된다. 그 시간을 지나면 그만큼 내공이 복리로 쌓이게 될 것이다. 1993년 <피아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홀리 헌터가 <데보라 윙거를 찾아서>에서 “마흔이 되고 나니까 몸이 편해졌다. 배우로서의 재능도 더 풍성해졌고 그 재능을 쓰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자.


전미옥 / CMI연구소 대표, jeon@myc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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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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