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더불어 키우는 사회가 희망이다!

학교가 개학을 하고 신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지속적인 동급생의 폭력으로 숨진 중학생 사건이 충격을 주면서 학교는 어느 때보다 긴장하며 교문을 열었을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처리가 경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되면서, 실효성에 의문은 있지만 일명 ‘일진’이라고 불리는 폭력학생이 있는 학교명단을 공개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그만큼 학교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학교폭력’이라는 표현이 불편하다고 하는 선생님도 있다. 따돌림‧갈취‧폭력 사태가 학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이미 학교 밖에서도 가리지 않고 벌어지기 때문에 ‘10대 폭력’ ‘청소년 폭력’이라는 용어로 정리되어야 하며, 학교는 기본이고 가정과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새삼 이런 말이 생각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가정,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돌봄이 있어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면서 서로 돕고 격려하는 문화를 배우고, 아이들의 꿈이 더 튼튼해지면서 큰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귀중한 뜻을 실천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긴 동명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책도 있다. 4388명의 어린이와 5299명의 가족이 만들어낸 희망을 기록한 책인데,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가족들과 아이들이 꿈을 키우며 자랄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를 만드는 이웃들이 엮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히 미담을 소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지를 잘 보여준다.

모든 어른들은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에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발전한다. 산골에서 혼자 염소를 키우고 살면서 모은 돈 1억을 고향인 경남 함양의 한 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은 79세의 정갑연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면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천지사방이 전부 저같이 혼자라면 이 세상에 사람이 없겠죠. 아이들 공부시키며 애쓰는 사람들 보면 감사하죠. 그래서 배우는 사람한테 쓰고 싶어요. 배워야 하니까, 모르고 살면 굉장히 힘들어요.”

적어도 이런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많아야 하고, 이런 생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작게라도 실천하고 돕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과거에도 학교마다 ‘비행청소년’이라고 불리는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손을 쓸 수 없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진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IMF시대 즈음에 태어난 아이들의 특수한 환경을 그 중 하나의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으면서 어머니가 일을 찾아 나서고, 그러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집안 살림 안에서 부부가 불화하고 가정이 흔들리는 것을 고스란히 보고 자란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가정의 따뜻함과 가족의 보살핌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내재된 불안과 불만을 그대로 안고 자란 아이들이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열패감을 느끼고 분노하고 그 스트레스를 가장 만만한 학교 친구들에게 푸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일차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아이를 보살피지 못한 부모를 원망할 수 있지만, 그 절망스럽고 혼란한 시기에 어떻게든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도움을 주고 보살피지 못한 사회의 책임도 크다. 정갑연 어르신 같은 몇몇 어른들의 노력만으로는 턱없이 힘에 부친다. 그야말로 온 마을이 나서야 하고 온 나라가 나섰어야 할 일이다.

몇 년 째 모교인 우리나라 한 고등학교에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하는 해외 교민 한 분이 있다. 이 분이 교장 선생님에게 부탁하는 장학금 수혜자의 기준은 좀 특별하다. 우리가 아는 장학금은 보통 ‘공부를 잘 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어진다. 사회통념상 장학금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 교민은 “공부는 못해도 좋다. 공부 못하는데 집안형편까지 어려운 아이면 된다. 이 아이가 학교를 포기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도록 돕고 싶다. 거기에 내 장학금을 쓰고 싶다”는 뜻을 학교에 전달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꿋꿋이 홀로 공부 잘하는 기특한 학생을 돕는 장학금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박탈감을 느끼며 학교를 포기해버리는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반전 장학금’이다. 이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왜 나 같은 애한데 장학금을?’ 하면서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평소 이 학생에게 장학금(獎學金)은 자기와는 아주 먼 거리의 장학금(長學金)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반전 장학금’을 받은 학생의 ‘반전 인생’은 마음속에서 이미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같은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에겐 희망을 싹트고 삶의 자세를 서서히 달리 할 것이다.

희망이 가득한 사회란 되도록 많은 기회를 주고 힘에 부칠 때 도와주는 손길이 많은 사회다. 우리는 1등에게만 환호한다. 우리는 잘하는 사람만 칭찬하고 도우려면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1등이 홀로 끌고 가지 않는다. 1등 아래에 있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더불어 발맞추어 갈 때 사회는 발전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스스로 상처 받았으면서 어려움에 처해 가해자가 된 청소년들에 대한 해법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전미옥 / CMI연구소 대표, jeon@mycmi.co.kr
– 이 칼럼은 <원자력안전기술원> 사보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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