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학 보내 주세요"

<어디로?>

"프랑스요"

<알았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렸던 딸의 주문.

지방 도시의 한의사로 꽤 유명했던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자신의 살아 숨쉬는 원동력이 돼 왔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재력이 상당했으므로 유학비용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만 유학보내고 텅 빈 것 같아질 생활, 세월이 걱정됐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사별한 아내에 대한 도리를 딸을 잘 키우는 것과 재혼하지 않는 것에 두고 살아왔던 아버지.

딸은 어려서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재주도 있었다.

「화가가 되려나? 원한다면 그길도 괜찮겠다. 작가겸 대학교수를 하면 좋겠지.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앞날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명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는 딸이 고통스럽게 살것으로 짐작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종교인이 된다면? 어쩌면 그 길이 나을 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던 아버지.

딸의 명은 무신(戊申)년 경신(庚申)월, 신해(辛亥)일, 무술(戊戌)시, 대운1
딸은 21세 이후 정사(丁巳)운 중에 파리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귀국했다.

곧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다.

중소기업 사장으로 잘 나가던 남편은 잘 생겼고 건강했다.
막내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과속 질주와 욕심이 화근이 돼 욱일 승천 지세였던 남편이 암초에 부딪쳐 난파하고 말았다.

남편의 보증을 섰으므로 엄청난 빚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된 딸.

이혼했다.

빚과 아들 둘을 데리고 가장으로서의 새 삶이 시작됐다.
딸은 여러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인테리어, 디자인, 꽂꽂이, 글쓰기, 기획력 등등.

미모에 S라인이었으므로 주위에 많은 남자들이 꼬였다.

재혼하고 싶어하는 남자, 애인이 되고 싶어 하는 남자 등등.

그렇지만 딸은 아들들의 어머니로써의 자격과 자리를 지키려 애썼다.

삶은, 특히 경제력에서의 압박이 심해 고통스러웠다.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일까?

이미 이혼녀가 된 친구 등이 카페를 같이 해보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 돈 많은 아저씨의 애인이 되라는 제안, 등등. 이런 저런 제안이 날로 늘어나고 있었다.

딸의 명은 시 무술이 대단히 좋지 못하다.

말년으로 갈수록 힘들어 진다.

돌부처가 돼 살라는 뜻이 있다.

좌하 해(亥)가 숨구멍이다.

시 무술은 해를 틀어막는 악의 축인 셈이다.
일주 신금(辛金)은 여기저기 비견 겁재를 깔고 있다.

재(財)는 해(亥) 중 갑목(甲木) 밖에 없다.
그러니 돈은 들어오면 나가기 바쁘다.

돈 가져 가려는 손이 여기저기서 쟁탈을 벌이듯 하고 있는 것이다.

요조숙녀요, 정숙한 두 아들의 어머니를 고집하나 운명은 남자와 잠을 자 돈을 벌어야만 살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섹스」의 유통이 업이 된다면, 그런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딸이 시집간 것은 운명을 모르고 저지른, 잘 못 씨를 뿌린 것과 같다.

그야말로 「씨받이」, 써 먹을 수 없는, 아픔 밖에 없는 씨받이의 길도 운명이요 인생이랄 수 밖에...
찬명(趲命)이 길일수도 있지만 비우기를 끊임없이 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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