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金) OO입니다.
뉴욕에서 금융수학, 통계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1974년 양력 1월 27일 오전 11시 30분경에 서울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마치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어려서 집안 형편이 곤궁하여 (부모님 일찍 이혼) 보광사(덕성여대 근처)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숙대 경영과를 나오셨고 (이경숙 총장과 동창) 침, 뜸, 사주를 조금씩 하십니다.
어머니께서는 고인이 되신 박재완, 이석영 선생님과도 교류가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금.수(金.水)가 용신이라 하십니다.
맞는지요?“
 
그의 명(命)은 계축(癸丑)년, 을축(乙丑)월, 무진(戊辰)일, 정사(丁巳), 또는 무오(戊午)시, 대운 7.
 
정확하게 오전 11시 30분 서울태생이면 「정사」가 맞지만, 경계선상이라 할 수 있으므로 「무오」도 참작함이 타당하다.
겨울 무토(戊土)는 동토(凍土)다.
얼어붙은 땅에 곡식을 심어야 소용없는 노릇이 되고 만다.
년.월.지지는 쌍축으로 역시 언땅이다.
초년이 불리하다. (어려서 절생활, 절에서 학교 다님, 부모의 이혼 등)
대운의 흐름도 초년은 수기(水氣)다.
 
<얼어 붙은 땅에 햇살이 퍼지지 않으면 쓸모 없는 땅이 될 겝니다.
시(時)가 명품이군요.
하루중 태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할때니까요.
말년으로 갈수록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57세이후 97세까지 건강이 허락만 한다면 대발(大發)할 겝니다.
겨울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조후(調候)가 우선입니다.
따뜻함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지요.
따라서 금(金)은 통관용신으로 쓸 수 있으나 수(水)는 기신(忌神)입니다.>
 
박재완, 이석영 두 대가의 이름을 참으로 오랜만에 들었다.
잠시 감개 무량했고 선생님들의 따뜻했던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박재완 선생님을 대전 대흥동 집으로 아주 가끔 찾아 뵈었다.
한OO (전 대우증권 전무) 형이랑 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역작 「명리대전」에 직접 사인하여 주시면서 「제자 됨이 어떻겠는가」를 물으셨다.
당시에는 역문관의 유충엽 선생(박재완 선생님 수제자)에게도 다닐 때였으므로 사정을 말씀드리고 사양했다. (새치기 한다는 인상을 남기기 싫었으므로)
 
이석영 선생님은 청주에서 서울 필동으로 이사 오셔서 한복을 즐겨 입으셨고 을지로5가?(지금의 중구청 근처)에서 공개강의를 하셨었다.
배우고 싶었으나 다닐 수 없었는데 선생님께서 녹음을 해서 주셨고, 실험적 역작인 「사주첩경」을 사인해서 주셨다.
역시 「제자될 뜻이 없는가」를 물으셨는데 신문사 일이 너무 바빴고 제자분들이 여러명 계신 탓에 끼어들기가 겁이 났다.
 
두분 선생님께 배우고 싶은 열망은 강했으나 몸과 마음, 정성을 다하며 모실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자칫 불량한 마음으로 재주만 홀랑 빼먹는 꼴이 될까 두려웠으므로 사양하게 된 것이었고 훗날 죽음의 문턱에서 하늘의 도움으로 병고치는 지혜와 사람 사는 방법과 태양계의 기운에 대한 지혜를 터득한 것은 두 분 선생님게서 하늘에서 도우신 탓이리라.
 
<어머니께서 명리학에 조예가 깊으신가 봅니다.>
“무당수준입니다.”
<웬 겸손의 말씀을>
“저는 어려서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게 산 탓인지 욕심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금융통계학을 공부하는 연유도 부자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채권, 파생상품의 세계적인 권위자 밑에 있는데 잘 안 가르쳐 줍니다.
유태계는 동양인에게는 절대로 문호를 개방하지 않습니다.
전세계의 금융자산 운용을 절반 이상 주무르고 있습니다.
얼마전 중국청년이 오랜세월 스승에게 배워왔어도 문을 열지 않자 대판 싸우고 홍콩으로 가버렸습니다.
홍콩에서 지금 대가로 활약하며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있답니다.
저의 사부님은 미국 최고의 경제학상을 수상하셨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명단에 오를 만큼 유명합니다.
이 정도면 대개는 노벨상을 타게 되는데, 사부님은 돈을 택하셨습니다.
짧은 시간에 (채권 환율 파생상품으로) 수천억 버셨고 지금은 중동자금을 수십조 단위로 운용하고 계십니다.
어떻게든 배워 보려고 하는데...“
 
뉴욕 월가에서 일하며 공부해온지 13년째 된다는 김 박사는 한국의 몇 군데 증권회사, 자산운용사와 조인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의 금융시장에서 유태인이 어른이면 한국은 어린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월가의 프로 금융가 수준에서 보면 한국 금융 전문가는 석기시대 정도가 맞을 것입니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