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고민만큼 그들의 고민도 치열하다

입력 2010-11-17 00:00 수정 2010-11-17 00:00
조직의 성격이나 조직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기준 중 빼놓을 수 없는 기준은 ‘중간 관리자가 살아있는 조직인가’하는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중간관리자란 대략 10~20여명 내외의 팀원을 이끄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끄는 팀이 모이면 조직의 규모는 금방 커진다. 경영층과 조직구성원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이 사람들의 역량과 열정이 살아 있어야 조직도 잘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중간’이라는 자리만큼 늘 어떤 것의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라고 했던 햄릿의 고민만큼 치열하다

#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중간관리자는 조직의 목표와 팀 사이에서 갈등한다. 또 그 안에서 자신의 성장을 찾는데,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마음이 늘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 자기 나름대로 내공이 있어야 한다. 자기 욕심은 버리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쉽사리 기가 꺾이지 않아야 한다. 뭔가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는 급하게 결론 내리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나’에 대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순서다. ‘나를 어떻게 볼까’에 너무 신경을 쓰는 일을 피하고 욕심을 버린 채 일 자체만 바라봐야 길게 봤을 때 더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

박지성 선수에게 애정을 가졌으면서도 이유 있는 비난을 하는 팬들이 있다.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 왜 슛찬스가 왔는데도 직접 슛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패스를 해서 귀중한 기회를 놓치느냐는 비난인데,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 문제에 대해 이런 맥락의 대답을 했다.

“나도 골을 넣고 싶다. 하지만 내가 골을 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팀의 승리다. 내가 슛을 할 수 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패스하는 건 그 선수가 골을 넣기에 더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골보다 팀의 승리가 더 기쁘다.”

박지성 선수의 맹활약으로 골이 터지는 모습을 좀 더 자주 보고 싶은 팬들 입장에선 조금 불만스러운 대답일지 모르지만, 축구가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라 팀을 이루어 하는 경기라고 생각할 때 박선수의 대답이 더 옳다. 일을 잘해서 내가 승진과 연봉 협상에서 유리한 점수를 따는 일도 중요하지만 팀이 목표를 이루고 조직이 성취해 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팀원을 리드하는 것이 진정한 관리자 모드다. 사실 이렇게 충실한 관리자 모드가 결국 나중에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 않을까.

# 실무자와 관리자 사이에서
처음에 회사에 입사했을 때 당시 팀장을 보면서 ‘참 편하겠구나’ 하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는 한 팀장의 고백이 있다. 업무도 나보다 적은 것 같고, 그런데도 퍽하면 날 불러서 서류 이거 틀렸다 저거 틀렸다 지적이나 하고 그런데도 임원들한테 칭찬은 다 받고 있으니 얼마나 속 편한 팔자인가, 나는 언제나 저 자리에 가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3년에서 5년 정도 하면 중간관리자로 승진하게 되고 업무에 대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나름대로 그 업무도 재미가 있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입사원도 들어오고 회사생활의 구력이 슬슬 붙을 때쯤 함께 커지는 것이 책임감이다. 저녁 9시 이전에 퇴근을 하면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고, 가끔 휴일인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며, 월요일이 되어선 주말에 나와서 일을 좀 해 놓을 걸 싶은 생각까지 든다. 거기다가 부서를 옮겨 업무가 낯설게 되면 잠시 팀장이 팀원에게 배울 일까지 생기면 말이 아니다. 윗사람은 팀장인 나한테 업무 지시를 하지만, 팀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면 가끔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거나 펑크를 내서 수습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계장, 대리, 과장, 차장, 팀장, 부장 등 조직의 실질적인 중추 역할을 수행하는 중간관리자급의 애환은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무슨 일이든 계획 및 입안 단계에서부터 일을 수행하는 실무자와 함께 실제 몸으로 부딪치고, 일의 과정을 상급자에게 중간보고와 결과 보고를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를 행하는 집단이라 일도 많고 탈도 많다. 윗사람의 지시를 잘 소화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잘 모아 윗사람에게 전달하는 기교도 필요하다. 그래서 일부 기업에서는 중간 관리자를 ‘머그(MUG;진흙)층’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 속도와 품질 사이에서
그들도 하기 싫다. 일처리를 빨리 빨리 하라고 다그치는 소리, 무슨 빚쟁이처럼 구는 것, 그들도 하기 싫다. 상사의 일 독촉에 미치겠다는 하소연을 그들이라고 못 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팀의 목표와 계획이 있기 때문에 마냥 기다려줄 수 없는 상황이 딜레마다. 업무의 속도를 강조하면 필연적으로 업무의 품질이 떨어진다.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하는 이들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속도를 맞추지 못해 끝없이 더 위로의 독촉을 받아도, 품질이 나빠 무능하단 소리를 들어도 이들의 실패경험은 아주 값지다. 결국 이들 중에 다시 상위관리자가 생겨날 터인데 성공의 경험만 있는 상사보다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두루 갖춘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더 이상적이다. 조직에서 성공만을 했던 리더, 그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다면 부하들의 실패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중간관리자일 때부터 머릿속에 넓고 멀리 굵은 선을 그려두고 부하직원들이 그 안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조금 비틀거리며 가더라도 눈감아 주고, 오히려 ‘잘 하고 있다’고 응원해주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믿고 기다려주는 미덕을 가진 상사 아래서 직원들도 성장한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도 성장한다.

중간관리자는 아직 젊다. 변화에 대해 능동적이고 도전정신도 있다. 승진도 하고 싶고, 높은 몸값을 자랑하며 소신 있게 일하고 싶은 꿈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때때로 꿈을 향해 한 번씩 어퍼컷을 날리고, 도전정신은 더 위에 계신 리더의 큰소리 한 번에 급하게 접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참 중요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실행력이 있고 열정이 있고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한다. 이들의 기가 살아 있는 조직, 이들의 아이디어가 다듬어지고 다듬어져 실현되는 조직이 가장 건강한 조직이다. 중간관리자가 일하고 싶은 조직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모든 기업의 사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미옥 / CMI연구소 대표, jeon@mycmi.co.kr
- 이 칼럼은 잡지 품질경영 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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