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러고 싶단 말이다. 남편이 돌아오면 청소기 한번 알아서 안 해주나 눈치보고 싶지 않다. 나도 그를 푹 쉬게 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뭐든 편안하게 다 들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면 먹을 수 있게 맛있는 엄마표 간식 착착 해서 쟁여놓고 점수 따고도 싶다. 밖에서 유능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군소리 없이 집안일 척척해내는 그런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단 말이지. 하지만 내 몸은 하나. 생각은 한꺼번에 몇 가지나 동시에 할 수 있을까. 나만 참으면 다 조용한 일이다? 일하는 아내 일하는 엄마가 한둘이 아니건만 가정에서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기분 씁쓸한 죄인 심정, 슈퍼우먼 강박증... 아, 우리 집의 평화를 지키면서 나를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 내 마음에서 ‘슈퍼우먼’부터 거절하자
멀티태스킹. 사전적인 의미로는 ‘하나의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개의 작업을 수행하는 일’을 말한다. 사람살이에 있어서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이 멀티태스킹에 능하다고 한다. 남자는 급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고 한 가지 일이 끝난 다음 다른 일을 시작하지만, 여자는 동시에 몇 가지 일을 잘 처리한다.

여성은 이런 능력을 타고났을까. 아니면 집 안팎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은 자신의 삶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에 그쪽으로 진화한 것일까. 후자 쪽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들이 많다. 특히 일하는 기혼여성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집안 일만 하는 전업주부라도 제대로 살림을 하고 아이를 기르고 가족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아주 바쁘다. 그래서 일하는 직장여성들이 집 안팎에서 할 일이란 거의 헤비급 수준이다. 아무리 멀티태스킹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혼자 말끔하게 일처리를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아직도 직장 일도 집안일도 모두 잘하는, 혹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아직 우리 집은 멀었다, 내가 식구들 길을 잘못 들였다, 싶은 후회가 들면서도 그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해서 남는 건 짜증과 울화. 안 할 수도 없고 다 하자니 벅차서 짜증이 나고 가족들에게 화가 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갈등이 저 안에서 싹트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집안일도 바깥일도 모두 내가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부터 내 마음 속에서 거절하자. 당신은 슈퍼우먼이 아니다. 잘못해서 몸과 마음에 두루 병만 키운다. 바깥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집안이 조금 엉망일 수 있다. 가스렌지 주변이 더러울 수 있고, 삶은 빨래를 제때 못할 수 있고, 창틀에 먼지도 뿌옇게 쌓일 수 있다.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서 ‘짜증 여사’나 ‘버럭 여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이보다 조금 더 심한 상황이 된다 해도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상태를 가진 아내나 엄마가 되는 것이 낫다.

# SOS! 그 부드럽고도 효과적인 기술
존경받는 한 여성 CEO의 인터뷰. 그 자리에 있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20여 년 전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라는 답변이 나온다. 우리가 접하는 방송이나 그밖의 매체에서는 워킹맘들의 애환보다는 지극히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아내와 어머니를 소재로 다루면서 마치 그렇지 못한 여성은 나쁘거나 부족한, 또는 게으른 이미지를 자꾸 재생산한다. 특히 양육과 일은 어찌 보면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두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처럼 일상화된 점이 일하는 워킹맘들을 힘들게 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남편은 남편대로, 자녀가 어리면 어린 대로 그에 맞는 적당한 일을 맡기자. 도와주지 않는 걸 서운해 하거나 성내며 투덜투덜 혼자 하기보다는 부드럽게 부탁하자. 명령하거나 짜증스럽게 말하지 말고 간곡히 부탁하자. 나도 힘들다는 것을 이해시키며 ‘하라’ 하거나 ‘왜 안 해주냐’ 하지 말고 ‘도와줬으면 좋겠다’ ‘도와주길 바란다’ ‘도와주면 고맙겠다’라는 부탁의 말을 가족에게 나누는 습관을 정착시켜 보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계속 해줄 수 없는 건 처음부터 하지 않아야 하고, 평소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선을 그어준다. 이런 절제된 선 긋기는 일하는 엄마 스스로에게 도움도 되지만, 전업주부보다 오히려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는 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업지수가 높은 직장여성의 경우 너무 마음이 약해서라기보다 너무 완벽하게 잘해내려는 자존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이렇게 회사와 가정에서 과다한 일에 시달리다보면 자신이 힘든 부분에서 좌절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자기 스스로 보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의 말이 변명처럼 들리기 쉬워서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땐 때로 적절한 엄살도 필요하다. ‘돈 때문에…’는 이럴 때 가장 특효약으로 쓰일 수 있는 처방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주변의 잔소리를 단번에 물리칠 수 있는 파워를 가진다.

# 부탁과 거절이 실패한 자리에 가치 있게 쓰는 돈
그래도 써야 할 때가 있다. 가족들에게도 혼자 할 수 없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흔쾌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 많은 일을 다해내자니 속이 상하고 힘들다면? 너무 힘든데 도무지 도와줄 사람을 찾지 못하겠다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돈으로 해결하자. ‘벌어서 죄다 도우미 쓰는 돈으로 탕진하냐?’는 식의 주변 눈총이 마음에 걸리겠지만, 살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도우미를 쓰는 가치는 충분하다. 살림 스트레스를 줄여 육아에 전념하고 나에게 조금의 시간도 할애할 수 있으니 일상이 풍요롭고 의욕에 넘친다.

먼저 청소만 해도 그렇다. 평소 집안에만 있어도 구석구석 깨끗하게 하기 정말 힘든 게 청소다. 날을 잡아 한다 해도 하루해만 짧을 뿐 다 못하기 십상이고 그 다음날은 피곤에 전다. 내 휴식은 온데간데없이 피곤과 짜증만 켜켜이 쌓인다. 바로 이럴 때 돈을 쓰자. 묵은 때 벗겨주는 청소용역회사를 불러라. 빨래와 식사준비도 그렇다. 오전에만 일주일에 두 번 도우미를 부르자. ‘일 주일에 청소 한 번’ ‘화학조미료 안 쓰고 반찬하는 도우미’ 같이 세분화된 맞춤도우미를 활용하면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은 비용이 조금 들더라도 계속 도우미를 쓰고 싶다는 주부가 많다.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조금 큰 자녀들에겐 필요한 용돈을 적당히 책정해서 함께 어려운 일을 나누어 했을 때 사례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돈으로 나의 노동력과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헤피 쓸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헤피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을 쉬게 하고, 시간도 벌고, 내 정신건강을 편하게 함으로써 가족들과 조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 직장에서처럼 가족을 대하라
남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지 말자.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먼저 표현하고 해주기보다, 남편이나 자녀가 내게 어떻게 표현해주면 그에 내가 응답하는 형식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오히려 자기표현이 능숙한 사람이 가족들에게 수동적인 경우가 많은데, “회사에서는 유능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 것처럼 보이는데 집에서는 왜 그러냐’ 하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지 모른다.
너무 가까워서 거절할 수 없는 상태, 평소 식구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냥 힘들어도 참고 해주는 경우... 모두 오래 가지 못한다. 무엇인가 부탁할 때는 여럿이 있는데서 해도 좋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그 사람에 맞는 일을 부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사회생활하면서 내 말이 받아들여지길 바랄 때 간곡한 말투가 되는 것처럼, 가족들에게도 간곡하고 부드러운 어법을 써야 한다. 내 가족이고 일상이 편해지며 즐거워지는데, 절대 치사한 일이 아니다.

직장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업무적 상황을 공유하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집에서도 그럴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차이가 크다. 혼자 뭐든 알아서 해보려고 하기보다 주위에 내 노고를 알리고 “이쯤에서 나도 좀 쉬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힘들어서 괴로울 것 같다” “그건 지금 당장 해줄 수 없다. 나도 지금은 좀 쉬어야겠다”는 심정을 적극적으로 알리자. 직장에서 자기표현에 익숙해야 일이 수월하고 도움도 많이 받는 것처럼, 가정에서도 내 표현에 익숙하고 적극적이어야 도움을 받는다.

요즘은 가족관계가 질적으로 많이 무너지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가정을 지키는 일은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 워킹맘들이 여러 가지 가정평화의 기술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구사함으로써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를 넓혀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이 더 성실해지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즐거움을 또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옥 / CMI연구소 대표, jeon@myc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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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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