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산에 나무를 심는 4월 5일 식목일... 여러분 마음에도 든든한 나무 한그루씩 심으셨는지요~ 4월의 봄바람과 따뜻한 햇살~ 이런 날, 신나는 일 많아지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여러 행사들이 많아 분주한 4월입니다. 치통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니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혹자는, 이 악물고 열심히 살라는 뜻이라지만, 건강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건강할 때 일도 사랑도 우정도 열심히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이번주 역시 결혼을 하는 후배도 있고, 새로운 직업을 찾은 후배도, 승진을 한 후배도 있네요. 모두에 축복을 전하며... 늘 칼럼을 통해 애정을 듬뿍 전해주시는 여러분들께도 새봄의 기운을 가득 안겨드립니다 ~

- 전미옥 드림 www.myc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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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인생을 바꾼 30대

 

30대는 미래의 가능성으로 무한대 열려 있는 시기다. 본래부터 해오던 일을 탄탄하게 다지고 키우는 시기로 손색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한거나 조금 비껴서 다른 길로 진로를 바꾸어도 충분히 빠르게 제 궤도를 찾아갈 수 있는 역량과 열정이 가득하다. 많은 성공한 인물 가운데서도 30대에 자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사람들이 많다. 그 계기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30대에 자기 삶이 가야 할 방향을 뚜렷이 잡고 일어섰다. 

 

현업을 확실하게 업그레이드하다
◇ 오프라 윈프리 
미국의 방송권력이라고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가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녀는 대단한 독서편력으로 불우한 환경과 부족한 교육에서 오는 결핍과 절망을 극복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해왔는데, 그녀가 오늘날 이름만 들어도 전 세계인이 알아볼 정도의 인물이 된 계기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다.


오프라 윈프리의 나이 이제 오십을 넘었지만 그녀는 이 쇼를 32세에 시작했다. 토크쇼를 통해 소개하는 책은 출판 시기를 막론하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도 그녀의 독서력에 대한 시청자의 믿음 한켠에 세상의 쓴맛 단맛을 모두 맛본 사람이 권해주는 남다름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성폭행, 이혼, 아동문제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시사문제를 섞어가면서 진솔하고도 인간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청자가 하나 되어 함께 울고 웃는다. 그런 그녀의 쇼의 인기 비결은 한마디로 그녀의 아픈 과거와 이에 대한 그녀의 진솔한 고백이다. 방송 중 갑자기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활보하고 갑자기 화를 내거나 박장대소하는 그녀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기존의 틀에 박힌 형식과 권위가 아닌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토크쇼를 통해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 조관일
30년 현장경험을 20권의 책에 녹여낸 사람이 있다. 농협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조관일 강원도 정무부지사다. 그는 <人테크-창조적 인간관계의 기술>, <서비스에 승부를 걸어라>, <멋진 상사, 유능한 부하>,<고객죽이기>,<나이가 경쟁력이 되게 하라>,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9가지 법칙> 등 23년 동안 20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각 방송사며 대학, 기업, 지자체 등에서 수많은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롭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인물이다.


그가 단순한 농협 창구의 직원에서 지식노동자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30대였던 80년대 군부독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이었던 농협에서 책임자급들이 모두 사표를 요구 받는 홍역을 치르게 된다. 직장인 목숨이 파리 목숨 같다고 생각한 그는, 너무도 뻔한 자신의 장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에 대해 고민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 보고 싶었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업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창구직원으로서 보고 느낀 경험을 되살려 쓴 첫 번째 책, 국내 최초로 대고객 서비스와 관련된 책이라고 평가되는 『손님, 잘 좀 모십시다』를 펴내게 된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는 서비스 전문가의 길을 가게 되고, 현재 서비스 이론에 관한 한 최고의 브랜드를 가진 컨설턴트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을 이제까지와 다른 눈으로 보다
◇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을 말할 때, 오늘의 그를 만든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81년 부산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인 부림사건을 꼽는다. 민주화운동 핵심인사 22명이 용공혐의로 구속된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음으로써 민주화운동에 눈을 뜨고 험난한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그 이전까지 그는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조세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현 시국에 대한 고민도 그다지 없이 살아온 평범한 변호사였다.


그때 나이 35세. 결혼도 하고 가정을 잘 꾸려나가야 하는 가장이었던 그는 개인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갈등이 많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민주화에 관한 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일관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노동 법률상담소를 차리는 등 본격적으로 재야 운동에 나섰으며, 86년부터는 변호사 업무를 거의 중지하다시피 하고 인권변호사로 전념했다. 87년 옥포 대우조선 이석규씨 사망사건 때는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하나의 사건이 사람에게 아주 큰 전환점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시대적 아픔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절박함, 절실함이 배어 있는 가치관을 일관된 삶으로 보여줌으로써 시대가 요청하는 인물로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 박재동 
한겨레신문 창간과 함께 ‘한겨레 그림판’을 그리는 시사만화가로 시국을 날카롭게 풍자하여 이름을 날렸던 박재동은 ‘만평의 달인’으로 통한다. 한겨레 그림판을 떠난 뒤에도 많은 시사 만화가들이 여러 신문 만화를 통해 거칠 것 없는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을 내놓았지만, 어느 특정 시대를 자기만의 시대로 규정지은 시사 만화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스스로를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본질을 간단명료하게 파악해서 전달해야 할 언론인이며, 역사관과 세계관이 녹아난 필치를 가져야 하는 화가이며, 일단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어야 할 개그맨이며,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도 확 풀어주어야 할 무당이라는 표현을 통해 다채롭게 세상을 어루만지는 역할에 고군분투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사회문제나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시절, 화실 강사를 겸하고 있을 때 한 제자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선생님의 그림에는 삶이 없다, 역사도 없고 사람도 없다, 나는 그런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고. 그는 그 당시를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고 표현한다.


그후 내 민족과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게 되고, 이후 우리나라 민중미술의 모태가 된 <현실과 발언>의 동인활동을 하게 된다. 1981년 창립전을 연 이 동인회에서 박재동은 10여 년 동안 활동을 한다. 사회의식이 남다른 친구, 제자들과 어울리면서 시대정신과 자신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다. 30대를 고스란히 그렇게 보낸다. 그러한 경험은 한겨레신문의 창간과 더불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촌철살인의 시사만화를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던 일을 미련 없이 버리다
◇ 안철수
우리나라에서 안철수는 ‘가장 존경받는 벤처기업가'  ’우리시대의 가장 신뢰받는 리더' 등 여러 설문조사에서 1위를 독식하는 인물이다. 그는 본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었지만 동물실험 중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고통 받기도 했다. 그래도 성실하고 집중력 있는 공부 덕분에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으며, 대학을 마치자 스물여덟의 나이에 바로 교수로 단국대에 임용되었다. 거기다 독학으로 공부한 컴퓨터도 국내 최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에겐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미국 NIH의 연구원 자리까지 따놓은 상태에서 보장된 의학을 길을 가느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연구를 시작하느냐의 기로에 섰지만 그는 과감히 안정이 보장된 의학도의 길을 포기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며, 바이러스 백신 연구 또한 병든 컴퓨터를 고치거나 예방하는 의사의 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겐 사업가의 면모보다는 학자나 선비의 분위기가 더 풍기는지도 모른다.
 
◇ 정수용 
지난 80년대 합동통신의 외신부와 사회부에서 기자로 일했던 (주)빙그레의 정수용 사장은 신군부의 기사 검열에 반대하는 제작 거부 투쟁을 벌이다 해직되었고, 다시 기업인으로 재기에 성공한 인물이다. 그가 원해서 기자를 그만 둔 경우는 아니지만 빙그레의 CEO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안착하는 데는 30대 기자 시절의 경험을 가벼이 치부할 수 없다. 


정수용 사장은 90년 한양유통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기업과 인연을 맺었고, 92년 빙그레 경영정보담당 이사를 맡으면서 기업인으로 본격 변신한다. 그의 직업관 중에 특이한 점은 어느 직업이든 전직을 하더라도 자기의 경험은 반드시 활용할 때가 있기 때문에 경험은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내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제너럴리스트적인 접근과 판단력 균형 감각이 중요해지는데, 짧은 시간에 균형 있게 판단해야했던 기자생활과 다양한 인생 경험이 기업인으로서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는 전직 이후 무조건 배우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임원 이상이 된 이후엔 실무적인 권한을 이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가 7년 전 경영정보 담당 임원으로서 국내 다른 업체들보다 앞서 이메일 결재시스템인 ‘핸드오피스’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전략적 판단의 결과다.
 

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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