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종 사장의 첫 직장은 우체국이었다.
자신이 돈을 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졌던 집배원 시절은 가장의 역할때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몸져 누웠고 행상으로 하루살이 인생이었던 어머니는 「아이구 내팔자야」 타령만 할때였다.

대학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대학은 생각만해도 사치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천직인양 열심히 했던 집배원 생활은 오래지 않아 접었다.
돈 더준다는 바람에 고무공장으로 직장을 바꾼 것이다.

박사장은 고무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여공과 결혼했다.
아내는 새로운 기술을 배워 독립하자고 박사장에게 졸라댔다.
사진 찍는 취미가 있었던 박사장은 「얼씨구나」 하고 사진관을 차렸다.
별 생각없이 뛰어든 박사장의 사진관 운영은 어려워져 다시 변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무래도 먹는 장사가 나을 것 같아요.”
아내의 생각이 옳은 것 같아 제빵.양식.한식 등 요리기술을 배우면서 참 잘했다고 여겼다.
통닭과 생맥주, 닭도리탕집, 돼지보쌈, 분식집 등등을 전전한 끝에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을 차리게 됐다.

박사장은 26세 정사(丁巳)년에 결혼했고 28세 기미(己未)년, 32세 계해(癸亥)년에 각각 유산했다.
임신하고서도 무리하게 일을 함으로써 아내의 유산이 이어졌던 것이다.
아내가 집에서 쉬면서 몸조리를 잘해 35세 병인(丙寅)년, 갑오(甲午)월에 아들을 얻었다.
아들을 얻은 뒤로는 일이 잘 풀려 생활이 안정돼 갔다.

박사장의 명은 임진(壬辰)년, 신해(辛亥)월, 을해(乙亥)일, 기묘(己卯)시, 대운 4.
아내의 명은 을미(乙未)년, 갑신(甲申)월, 기미(己未)일, 병인(丙寅)시, 대운 4.
아들의 명은 병인(丙寅)년, 갑오(甲午)월, 무신(戊申)일, 임술(壬戌)시, 대운 1.

아들은 천하의 명품이다.
시상편재요, 천하대격인 것이다.
학교공부는 큰 도움이 안되니 돈 버는 일에 올인하는 운명이다.
부모가 학력이 짧은 것을 유전적으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좌하(坐下)에 있는 신(申)의 소중함을 알고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좋은 아내를 얻을 공산이 크다.
아내는 신월(申月)생이 유력한데 짝수해에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일찍 발복하고 그 복은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 경찰, 의사, 법관, 경찰, 기계.철강, 영어, 권력, 미국.영어권, 서쪽.흰옷(흰색)등과 같은 금기(金氣)를 바탕으로 한 다음 수기(水氣)로 승부를 낸다는 뜻이 있다.
좋은 결혼을 하고 좋은 아이를 낳을 경우 또 하나의 재벌이 탄생할 수 있다.
중국어와 영어를 배움이 필수라 할만하니 중국으로 가서 카센타운영을 통해 자동차산업에 진출한다면 천하대부(물론, 하늘의 도움, 조상지덕이 있어야 하겠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운지역, 뜨거운 것과는 맞지 않으니 술, 기름, 화학, 화공약품, 고무, 동남아지역 등과 연결되는 사업은 차단하는 것이 좋다.

임술이란 시상편재(偏財)를 잘 활용하는 근본은 유통에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등을 연결하는 무역을 하면 좋을 것이고 철강, 기계, 자동차와 같은 품목이 잘 맞을 것이다.

하늘은 천하대부의 자질을 주었을 경우, 큰 시련으로 자주 시험을 한다.
대부가 되면 하늘을 대신해서 크게 베풀 것도 주문한다.
부는 내가 일궜고 내것이라고 우기면, 얻어맞고 뺏긴다.
자칫 단명으로 끝날 수 있고 끊임없는 아픔과 연결되기도 한다.

부(富)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너그럽게 이타행(利他行)함도 커져야 할 것이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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