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익숙한 ‘나’ 낯설게 보기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굴까.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답이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나’는 특별히 알려고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저절로 잘 알아진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특별히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탐색하는 시기도 사춘기나 청년기 이전에 대부분 마무리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타인들이 자신을 보는 시각과 자기 스스로 자신을 보는 눈에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을 보는지는 자로 잰 듯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타인이 보는 눈은 단 한 사람의 눈이 아니며 일정한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한발짝 떨어져서 그 사람을 보는 처지이기 때문에 어쩌면 일부분보다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데 더 유리한 자리에 있다는 의미다.

자신을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타인들이 평가하는 모습과 아주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경우는, 그 사람이 이중적인 생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까닭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미리 재단한 테두리 안에서 눈을 조금 높이 들어서 보지 않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것을 깨고 일어서는 것이 바로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는 첫 번째 과정이다.

나를 어떤 프레임 속에 가두지 말라.

“나는 이제까지 이랬다, 그러므로 나는 어떻게 해도 이런 사람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혼자서 굳히기를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감은 자신을 바로 아는 데서 나온다. 내가 나에 대해 모호한 시각과 심정적인 긍정만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자신감이 솟구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으로 내 인생을 채우고 싶은지 아는 사람은 아주 열정적으로 그것들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나에 대한 생각을 모두 접고 ‘널 처음 본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나는 잘 하는 게 별로 없다, 나는 무취미하다 같은 나를 말하는 무수한 말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자. 물론 아무리 낯설게 봐도 나를 제대로 응시하다보면 쓰레기통에 버렸던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낯설게 보면서 나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서 덜어내고 보태는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진실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내 안에는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지만 날카로운 비판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좋아하는 일에는 며칠 밤을 샐 수도 있으며, 사람을 사귀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의외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미리 규정한 사람들의 틈에서 그냥 그렇게 ‘나는 그런 편이다’라고 인정해버리고 그 속에 묻혀 산 세월이 오래이지 않은가. ‘자아’는 분명 축복 받은 신의 선물이다.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해주는 중요한 표징이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가능성과 잠재력의 샘물을 버리고 일상의 순간적인 반응과 혼란에 사로잡혀 있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사춘기 소년소녀처럼 나를 깊이 응시하는 시간이 때때로 너무나 필요하다.

CMI(커리어 매니지먼트 이노베이션)연구소 대표.
자기계발, 경력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과 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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