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
언제부터 저렇게 예쁘게 피었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뜨락에 핀 무궁화가 눈에 들어왔다.
무궁화를 보며 노래를 응얼거리던 J는 보따리를 쌌다.

J는 여고 1년 때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에게 겁탈을 당했다.
어느날 아버지가 친구랑 술이 만취가 돼 와서는 마지막 술 판을 집에서 또 벌였다.
잠 자다가 나와서 아버지 옆에 앉았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 새벽에 일이 그렇게 됐고 며칠 고민하다가 말도 못하고 가출, 술집으로 흘러 들어갔다.

J는 요정과 룸살롱을 오가며 술집아가씨로 성장해 갔다.
다행이도 틈틈이 공부를 해 술집이력이 쌓이는 만큼 학업진도가 쌓여져 대입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24세때 소위 『새끼마담』이 되면서 명문대 수학과에 합격했다.
당시 목표는 수학선생님.

직장(술집)에서 대학다닌다고 줏가가 꽤 높았고 손님이 많았다.
새끼 마담을 겸한 아가씨의 수입은 놀랄 만큼 이었다.
J는 노래를 굉장히 잘했다.
성량도 풍부했다.
수학과를 안다니고 음대 성악과를 다닌다고 해도 누구나가 믿을만했다.

J의 성가가 높아지면서 어린 나이에 마담으로 승격. 유명한 요정, 룸살롱의 스카우트 대상이 됐다.
영민했던 J는 3선 의원, 장관들의 자청, 타청 애인(?)이 됐다.

J가 밤의 요정에서 밤의 여왕이 될 무렵, 홀연히 사라졌다.
바람결에, 홍콩 삼협회 두목의 애인이 됐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더니 일본의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의 이름과 함께 J가 떠올랐다가 가라앉고는 했다.

『J가 마카오 카지노에서 부자들과 게임하는 것 봤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20여년이상 소식을 못 들었었다.
그동안 J는 마카오에서 사업하는 중국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왔던 것이었다.

J는 홍콩, 일본, 인도네시아, 아프리카의 라스팔마스, 카사블랑카 등지로 마담 또는 유랑인으로 떠 다녔었다.
싱가포르에 자리 잡으면서 J가 남모르게 해온 일은 청소년들의 뒷바라지였다.
소년소녀가장 돌보기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자녀는 100여명이 넘을 터였다.

J의 명은 계사(癸巳)년, 계해(癸亥)월, 계미(癸未)월, 계해(癸亥)시, 대운3.
겨울에 태어나 천간이 4계니, 기구한 운명일 수밖에 없다.
계수는 지혜, 밤의 정령, 호르몬 등 특이한 기운이고, 수학도 된다.(수학과를 쉽게 떠먹는 숟가락으로 쓸 생각)
좋은 대운 병인(丙寅)에서 대학생이 됐고 유명한 마담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낳은 자식은 1명도 없지만 돌본 자식이 100여명 이상인 것은 식신, 상관을 잘 활용하여 (木), 재(財)로 승화(火)시킴이 최선의 운명이 되는 때문이요, 불미스런 남자 이력은 토기가 얼어붙었을 때의 필연적 인연인 때문이다.

그래도 23세 이후로 영화(?)가 있었고 위험 속에서도 군림할 수 있었던 세월은 대운의 흐름이 80세가 넘도록 좋은 쪽으로 가고 있는 탓이다.

조상의 음덕이 있는 가문 출신 이라면 연예인, 외교관, 대학총장 등으로 이름을 날렸을 수도 있고 문광부 장관이나 여성부 장관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어두움 속에서였을망정 영화스러움이 있었던 것은 J의 착한 심성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말년의 삶이 편안한 것은 정심행선(淨心行善)의 중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과도 통한다.

싱가포르에서의 J는 넉넉한 삶 속에 있다.

그러나 진정 넉넉한 것은 한국의 젊은 꽃, 무궁화를 닮으려는 청소년들을 돌봄에 있지 않을까?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