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손등 그리고 손바닥

“여보, 미안해요. 아무래도 아버지를 모셔와야 할 것 같아요”
남편에게 친정 아버지 모셔온다는 얘기를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고야 말았다.
『해서는 안 돼』를 다짐했으면서도…

아버지는 11살 때부터 농삿일을 해오셨다.
큰 아들 내외와 별 탈없이 시골에서 쭉 사셨다.

10년쯤 전에 어머니가 돌아 가신뒤로 아버지는 기력이 쇠해졌고 농사는 큰 아들 내외가 지었다.
전, 답, 집, 땅 등 조그마한 재산은 모두 큰 아들이 차지 했고 아버지는 모든 것을 일과 함께 물려 준 뒤로 1년에 한 두 번씩 자식들 집을 다녔댔다.

슬하에 7명의 자녀를 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혼 하는 자식들이 늘어 났다.
아들3 딸4, 7명의 자식 중 이혼하지 않고 남은 것은 아들1명, 딸1명이었는데 이번에 큰 아들이 이혼함으로써 딸1명만 남게 됐다.

큰 아들은 성실해서 농사를 잘 지어왔었다.
그러다가 비닐하우스, 특작물 등으로 돈을 좀 벌게 되자 인근 도회지에 들락거리면서 바람이 난 것이었다.

농사를 잘 지어온 큰 아들, 선생님을 해 온 둘째 딸을 제외하곤 제대로 사는 자식이 없었다.
자식들 중 고등학교 2명, 중학교 3명, 초등학교 2명을 졸업시켜 학교공부 보다는 농사하는 가사일을 돕도록 했던 시골노인으로서의 아버지의 말년이 이렇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업보(?)와도 같은 것인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학력이 그랬어도 잘 사는 집들도 많았지만 자녀들의 삶은 어째 형편이 없었다.
둘째 딸의 경우 여중을 졸업 한 뒤 고교진학 때문에 아버지와 다툰 뒤 가출을 단행했다.

(고등학교를 못 보내 줄 처지는 아니었는데 딸이라는 이유로…)

식당을 전전하며 죽을 고생을 해 교대를 마쳤고 선생님이 됐다.
목숨을 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독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딸은 다행스럽게도 고아 출신인 지금의 남편을 잘 만났다.
남편의 인생 또한 자신과 비슷했으므로 천생연분이라 여겼다.
남편은 고아출신으로 공무원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남편은 부모가 그리웠을까?
친정 아버지 모셔 오겠다는 말에 순순히 『그러라』고 했다.
거리로 내 몰릴 처지였던 시골 노인은 서울 딸 집에서 새 세상을 만났다.
달라진 화장실, 틀면 나오는 따뜻한 물, 맛있는 과자와 음식 등은 신천지 였다.

그런대로 화목하게 잘 지내던 딸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여고 2학년인 손녀, 중학 3학년 손자와의 마찰에서 항상 이기려 들었고 『어른에게 대든다』며 큰 소리를 쳤다.

손녀 손주가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고약함을 일러바치기 시작하면서 불협화음은 높아져 갔다.

할아버지가 마구 먹어대는 아이스크림, 쵸콜릿 등 과자, 우유와 치즈, 계란, 고기, 과일 등은 그렇다 칠 수 있었다.

화장실 소변보고 물 안내리는 것.
화장실 점령하면 2-3시간 기본.
따뜻한물 틀어놓고 그냥 나와서 한나절이상 보내는 경우.
귀가 어두워 전화 못받고 대문 안열어 주는 것.
마늘 엑기스, 홍삼정(50만원이상의 비싼 것)같은 것, 인삼 등은 모조리 할아버지 장롱속으로.
세탁기속에서 나온 깨끗한 수건, 사위의 내의류 등도 모두 가져가는 고약한 노인으로 전락하면서 애물 단지가 돼 가고 있었다.

노인이 손녀와 손주의 공부를 돌봐줄 정도가 되고, 세탁기, 청소기 돌리며 집안 청소도 하고, 냉장고 안의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의 인생은 항상 행복의 신(神)과 불행의 신(神)이 함께 다니면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고 묻는 과정속에 놓여 있다.
마치 손등과 손바닥처럼 붙어 다니면서 행복을 줄까? 불행을 줄까? 하는 신의 선택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것은 자신의 하기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손등이냐 손바닥이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할때 필요한 본질적 선택의 요소는 마음씀의 문제, 지혜, 배려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처럼 딸의 가정에 문제를 야기한 것은 딸이 아버지 수준을 가늠하지 못하고 윤리적인 측면만 본 것, 자식들의 배려를 소홀히 한 것(애들의 의견은 왜 묻지 않았느냐?) 등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신묘(辛卯)일, 임진(壬辰)시 생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신묘가 신묘를 보고 임진이 임진을 보면 누명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딸의 경우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는 잘 못한 것으로 되는 현상은 임진년에도 이어질 것이니 아마도 내년에는 이혼으로까지 연결 될 수도 있을 듯 싶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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