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정주영 회장을 기억하며

 

1975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현대건설의 정주영 사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달러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일 정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하지요”

 

정주영 사장은 무슨 이야기인지 되물었다.

“2년 전 석유파동 이후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해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오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에 일할 의사가 있는지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낮엔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가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도대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 가보겠습니다.”

 

정주영 사장은 5일 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 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요?”

“그곳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하기 제일 좋은 땅입니다.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지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지천으로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습니다.”

 

“물 걱정을 많이 하던데?”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지요.”

 

“50도나 된다는 더위는?”

“낮에는 천막 치고 자고, 밤에 일하면 될 겁니다.”

 

정주영 사장의 말대로 한국인들은 낮에는 자고, 밤엔 횃불 들고 일했다. 온 세계가 깜짝 놀랐다.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주베일 항만공사는 공사금액만 당시 우리나라 예산액의 절반에 맞먹는 9억 3,000만 달러였다. 주베일 항만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낸 뒤 현대건설은 쿠웨이트 슈아이바항 확장공사, 두바이 발전소 등 중동일대 대형 공사를 잇따라 수주했다. 1975년 중동 진출 뒤 1979년까지 현대는 약 51억 6,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이야기는 1975년에 청와대에서 있었던 실제 대화내용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로 꼽는 경영자는 정주영 회장이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매우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을 거라는 편견을 갖는다. 정주영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이나 자료를 보면 그는 오히려 운이 나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기회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런 것을 긍정적인 사고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공을 끌어당긴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소설가는 ‘내가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돕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2가지 모습이 있다. 어려움이 많고 장벽이 높을수록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숨어있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어려움이나 장벽보다 기회를 먼저 보는 것이 긍정적인 사고다. 그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이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또한 긍정적인 생각이 실제 성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의 성공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은 그의 성실함과 일에 대한 열정이다.

 

 

정주영 회장이 시골에서 처음 도시로 와서 취직한 곳은 쌀가게였다. 20대 초반의 정주영은 쌀가게에서 꾀를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특히, 새벽부터 일어나서 쌀가게의 앞길까지 청소하고 물도 뿌리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는 거다. 아마 그런 그의 모습은 쌀가게 주인에게나 또는 쌀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에게나 눈에 띄었을 거다. 20 초반의 젊은이가 가령,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자신이 일하는 가게의 앞길을 청소한다면 아마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을 거다.

 

자서전을 보면 정회장이 일하던 쌀가게의 주인아들은 게으른 난봉꾼으로 만주로 노름을 하러 다녔다. 그래서 쌀가게 주인은 아들보다 정주영을 더 신임했다. 후에 쌀가게 주인은 아들의 노름 때문에 쌀가게를 정리하게 되었고 그것을 정주영이 인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2년쯤 후에 청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이 식량을 배급제로 바꾸며 정주영이 운영하던 쌀가게는 문을 닫게 된다. 어찌 보면 정주영 회장은 운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라, 운이 무지하게 나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쁜 운을 그는 항상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 

 

쌀가게를 정리하고 정주영은 아는 사람들과 자동차 수리공장을 차린다. 그때 돈을 만들기 위해 정미소를 운영하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는데,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렸다. 자동차 수리공장은 시작하자마자 불이 난다. 공장 시설과 수리 들어온 자동차까지 모두 불타버린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정주영은 다시 사채업자에게 가서 이대로 끝나면 돈을 갚을 수 없으니 다시 한번만 돈을 빌려주면 꼭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또 돈을 빌린다. 그런데, 어떻게 담보 없이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릴 수 있었을까? 아마 그 사채업자는 정미소를 운영하며 쌀가게에 드나들면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꾀를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정주영을 눈여겨봤을 거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저 녀석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만한 녀석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거다.

 

 

정주영 회장에 관한 자료나 이야기를 읽어보며, 가장 먼저 나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가 항상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했다는 거였다. 어떤 사람은 게으른 사람들이 타고난 천재성으로 발휘하는 것이 창의력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창의력이나 리더십은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다. 열정이 있어야 긍정적인 생각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들 수 있는 거다.

 

우리도 정주영 회장처럼 창의력을 발휘해보자. 정주영 회장은 분명 창의적인 사람이다. 자동차 수리 공장을 운영할 때에는 다른 수리공장에서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수를 늘려 잡아서 더 많은 수리비용을 받아내고 있을 때, 거꾸로 수리를 빨리 끝내며 더 많은 자동차의 수리를 받아서 더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부산의 UN군 묘지단장 사업을 할 때, 한 겨울에 잔디를 깔아달라는 요구에 아무도 일을 맡으려 하지 않자 보리이삭을 잔디처럼 보이게 깔며 일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서해안 간척공사를 할 때에는 물살이 급해서 막바지 공사가 어려워지자 폐유조선을 이용하여 물살을 막아 공사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모두 정주영 회장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결론을 놓고 보면 정주영 회장은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이다. 그런 그의 아이디어는 사실 그의 열정에서 나온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이 그의 창의력을 만든 것이다. 창의력은 긍정적인 생각 + 열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봤던 1975년 청와대에서 있었다는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회장의 대화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중동을 돌아보고 온 정주영 회장이 그곳을 건설공사하기 너무 좋은 곳이라고 말하며 지적했던 첫 번째 이유를 다시 보자. 그가 말한 첫마디는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할 수 있다고 좋아서 흥분하는 당시 60세의 정주영 회장을 상상해보라. 그의 그런 열정이 그의 긍정적인 생각과 결합하여 지금도 이야기되는 창의적인 성공을 만들었던 것이다.

 

 

박종하

mathian@daum.net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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