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알아? 뭘 아는데?

“괴테는 변태야!”

저녁을 먹으며 한 친구가 74살이었던 괴테가 19살 처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이야기를 하며 괴테는 변태라고 몇 번씩 떠버렸다. 같이 밥을 먹던 다른 친구들은 “부러우면 너도 한번 해봐”라는 말로 응대했다. 괴테, 변태. 말의 뜻보다 귀에 들리는 비슷한 발음이 재미를 만들고 사람들의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 거 같다.

 

 

집에 들어왔다. 아들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가면 우리 아들과 딸은 대부분 책상 앞에 앉아있다. 그러다 집에 들어오는 나를 보며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우리 3명은 바로 소파에 앉아 TV를 본다. 엄마는 속 터져 죽는다. 어쩌면 공부를 하는 것도 (O, X)처럼 ‘공부를 한다’와 ‘공부를 하지 않는다’로 단순하게 나눠서 생각할 수는 없는 거 같다. ‘공부를 하는 것’에도 몇 단계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튼,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 엄마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우리 아들에게 나는 물었다.

 

“너 괴테 알아?”

“알아!”

“괴테가 누구야?”

“……..”

 

아들은 자신이 괴테를 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괴테에 대해서 물었을 때 아무런 대답도 못한다. 심지어 “괴테가 어느 나라 사람이었어?”라는 질문에도 답을 못했다. 우리 아들은 괴테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괴테를 ‘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럼 “나는 괴테를 아는가?” 스스로 질문해봤다. 내가 괴테에 대해 아는 것을 찾아봤다.

–          독일 사람.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제목만 아는 책인데 저자가 괴테인지 약간 헷갈린다). 파우스트(이 책도 읽어본 적은 없는데, 괴테의 대표작인 거 같다) 그리고……

 

 

우리가 ‘안다’라고 하는 것에는 매우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무엇에 대해 안다는 것은 (O, X)처럼 ‘안다’와 ‘모른다’ 둘로 단순히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는 것이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이다.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예를 들어, ‘당뇨병’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사람도 당뇨병을 아는 사람이고, ‘당뇨병’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당뇨병을 아는 사람이고,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도 당뇨병을 아는 사람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골든벨 퀴즈에서 정답을 맞추듯 단순히 (O, X)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아는 것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바로 나의 수준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는 것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괴테에 대해 내가 설명하려고 했을 때 나는 아무런 말을 못했다. 나는 괴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알긴 아는데, 설명을 못하겠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신참 의사들은 당뇨병을 설명할 때 전문용어를 쓰며 말한다.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서는 당뇨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당뇨병에 대한 권위가 높고 많은 연구를 한 사람들은 60대 노인들에게도 전문용어 없이 알아듣기 쉽게 당뇨병을 설명한다. 아는 것이 더 많고 이해의 폭이 더 깊을 때, 더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의 정도의 차이를 수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적용시키면 아이들의 수준은 이렇게 스펙트럼을 가질 것 같다.

–          수학 공식을 본적이 있는 학생

–          수학 공식을 잘 외우고 있는 학생

–          수학 공식을 유도하고 설명할 수 있는 학생

–          수학 공식을 활용하여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학생

 

나의 공부가 일반적으로 수학공식을 본적이 있는 것에 만족한다면 나는 수학문제를 풀 수 없다. 나의 공부가 수학공식을 잘 외우고 있는 것까지라면 나는 시험에서 문제를 풀 수 없다. 왜냐하면 공식을 바로 적용하는 문제는 절대 안 나오니까. 공식을 이해할 때에만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변별력을 갖는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공식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학생은 수학공식을 본적이 있다는 걸로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는 것에 만족한다. 그런 학생은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다. 시험문제를 풀 수 없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의 경험만 하고 그것에 대해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응용도 없고 확장도 없고 좋은 성과를 얻지도 못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안다’와 ‘모른다’가 단순하게 (O, X)처럼 구별되지 않는 것은 인간관계의 ‘안다’에도 적용된다. 사람에 대해 아는 것도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예전에 어느 모임에서 한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사람도 아는 사람이고, 가끔 만나는 사람도 아는 사람이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마음을 써주며 인생을 공유하는 사람도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아는 것도 농도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아는 것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의 ‘아는 것’에도 적용된다. 그에 대해 당신은 뭘 알고 있나?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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