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그것도 경기의 일부분이다

며칠 전 북한과의 축구 경기에서 후반 초반 정대세의 헤딩 슛은 골인 거 같다. 골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골이 라인을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축구경기가 끝나고 동영상으로 느리게 봐도 라인을 넘었을 거 같아 보인다. 확실하지는 않다. TV 카메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심판이 직접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더욱이 공중에 떠있는 공이 바닥에 표시된 선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는 눈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할 거다. 그래서 그 판단은 전적으로 심판이 한다. 우리는 심판에게 그 권한을 주었다. 아무튼, 북한 감독이 억울하다고 말할만하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은 꽤 자주 있다. 축구 경기를 또 생각해보면, 지난 번 2006년 월드컵에서 우리는 스위스에 지며 16강 진출에 실패했었는데, 그때의 심판 판정도 우리에게는 너무 불리한 판정이었다. 경기를 보며 모두 억울하고 화가 났다. 경기를 지고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선수들은 모두 죄인처럼 얼굴을 들지 못하고 나왔다. 우리에게 불리했던 심판의 편파적인 판정 때문에 졌다고 모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을 때, 경기장을 나오던 박지성 선수에게 TV 리포터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리포터는 박지성 선수에게 편파적인 심판의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마이크를 내밀었다. 그때 박지성 선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것도 경기의 일부분입니다.”

 

나는 나이에 비해 생각하지 못할 만큼 성숙한 그의 말에 매우 놀랬었다. 마음 속으로 역시 박지성은 앞으로도 더 큰 선수, 더 훌륭한 체육인이 될 것 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었다.

 

 

세상에는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다. 이런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거 같다. 하나는 심판의 편파적인 판정이다. 심판이 특정한 팀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리는 거다. 경기 전에 매수를 당했거나 심판이 특정한 팀을 더 좋아하거나 하면 심판의 편파 판정이 시작된다. 스포츠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법이나 제도가 힘이 있고 지식이 있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맞춰져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억울한 일들이 계속 발생할 거다.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다른 이유는 심판도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컴퓨터로 계산하듯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억울한 팀이 운이 나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심판이 서 있는 방향에서는 공이 라인을 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이 라인을 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때때로 교묘한 선수들은 심판이 보지 않는 곳에서 상대 선수에게 침을 뱉거나 팔꿈치로 얼굴을 치기도 한다. 심판이 보지 못하면 파울을 주지 못하는데 그런 경우 당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할거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완벽한 법을 만들고 완벽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그 속에는 반드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그런 법이나 제도에는 반드시 피해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실제로는 억울하지 않은데 경기에서 패한 팀이 심판의 판정이 억울하다고 스스로 믿는 경우다. 그렇게 심판의 판정이 편파적이었다고 생각해야 경기에서 진 것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빠서 또는 부도덕한 심판에 의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경기에서 진 자신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 스포츠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도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는 억울한 것이 아닌데, 모든 것을 부도덕한 정치인과 사악한 기업가들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시각은 자기 위안을 하며 동시에 사회에 대한 증오를 키운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느냐이다.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이 나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에게 손해를 준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나보다 더 약한 사람이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참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 경우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생기는 억울함도 있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여유를 갖고 그럴 수도 있다는 미소를 한번 보내주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박지성 선수가 “그것도 경기의 일부분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억울한 일도 아닌데 바보 찌질이처럼 스스로 억울하다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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