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찍어 먹은 것은 정말 다행이야

입력 2011-08-30 10:47 수정 2011-08-30 11:41
서울서 사업을 하는 공(孔)사장이 고향으로 내려 왔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경찰서, 세무서, 은행, 고시합격, 부자가 된 친구 등과 인맥을 쌓고 어떻게 활용할 지를 계산 해 둔 공사장.

 

동창회가 열리는 날 아침 일찍 고향 집 문을 나선 공사장이 마을 입구의 개울가에 도착했다.

어려서 신나게 놀았던 개울 앞에서 객기가 발동한 공사장.

<이까짓 개울 쯤이야 문제 없지>

조금 둘러가면 될 것을…

 

자신의 앞 길을 가로 막는 장애라도 된 듯 그냥 뛰어 넘기로 했다.

전속력으로 몇 발짝 달린 공사장이 몸을 날렸다.

<얏!>

기합소리와 거의 동시에 비명인지, 신음인지 <어이쿠>가 터져 나왔다.

개울 저쪽 조금 못 미쳐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 진 것이었다.

 

손을 개울 바닥에 짚고 일어 서려는데 손에 물컹하고 뭔가가 잡혔다.

<아니, 이게 뭐야?>

손을 쳐다 보며 코 쪽으로 가져 간 공사장.

<에이 쿠려!>

그것은 똥이었다.

 

공사장은 손에 묻은 것을 털어 내려고 땅을 향해 힘 껏 뿌렸다.

이번에는 그 손이 돌부리를 세차게 내려 치고 말았다.

<아이구 아야!>

자신도 모르게 똥 묻은 손을 황급히 자신의 입으로 쑤셔 넣은 공사장.

 

공사장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으레히 꺼내는 것이 있다.

공자의 후손임을 내세워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쳤고 한글도 서투를 정도이니 <공자 운운>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탓도 있지만 세파에 시달리면서 간교함, 공짜, 남의 것도 내것인 양 슬쩍하기, 목욕탕에 가면 제일 좋은 신발 신고 나오기 등등 좀도둑이나 양아치와 같은 기질이 날로 성숙해 가는 공사장이었다.

 

인격이 개 떡이었지만 사회적으론 유지 행세를 하고 다녔다.

OO유통, OO식품, 청소년 선도위원(경찰청 발급), OO위원회, OO포럼 등의 대표와 총무 등을 나열한 명함을 들고 다닌다.

상당히 많은 기관장 (특히, 권력층 쪽으로)의 이름을 외우고 급할 때 써먹는다.

 

동창생중 그에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물린 친구가 열명도 넘었다.

그러면서 동창회에서는 소문이나 완전히 상종 못 할 <개새끼>로 변해 버렸다.

 

얼마전 공사장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돌리다 적발된 회사와 불을 내고 불법과외(?)를 한 학원이 적발된 것을 무사히 무마 시킨 뒤 관련 기관장과 업자를 불러내 한바탕
<잔치(?)>를 치뤘다.

 

공사장은 을미년, 임오월, 병술일, 기축시 생이다.

삶의 방식은 똥통 속에서 허우적 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공무원 들이 같이 빠져서 허우적 댄다는 것이다.

기관장들 조차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똥을 찍어 먹는 정도는 [클래식]한 수준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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