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문제

입력 2007-11-12 16:06 수정 2007-11-12 16:06
우리는 학교에서 정답을 찾는 게임을 배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20살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가 배우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정답이 있고 그것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학교에서 우리가 하는 공부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면서 인생은 정답이 정해진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정답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만드는 것이고, 자신이 만든 정답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정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던 기억이 나에게는 있다. 먼저 다음 수수께끼에 답해보라.

 

(Q) 왜 개는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눌까?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동창들과 같이 한 친구의 학교 축제에 갔었다. 축제에서 어떤 행사를 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강당 같은 곳에 여러 사람들이 모였고 사회자가 진행을 보고 있었다. 사회자는 상품을 나눠주기 위해 문제를 내겠다며 “왜 개는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눌까?” 하는 질문을 했다.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구는 같이 간 친구들에게 절대로 대답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무리 확실한 답이라도 문제를 낸 선배의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사회를 보는 그 선배는 문제에 틀린 답을 하는 사람에게 기분 나쁘게 망신을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는 거였다.

 

친구는 나서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나는 그 문제의 정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학이 왜 한쪽 다리를 들고 서있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학이 한쪽 다리를 들고 서있는 이유는 두 다리를 모두 들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개가 오줌을 눌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개 역시 네 다리를 모두 들고는 오줌을 눌 수 없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수수께끼는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실상은 같은 문제인 것이다.

 

나는 친구의 만류를 무시하고 손을 들고 말했다.

“네 발을 모두 들고 오줌을 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사회자는 나를 지적하며 사람들을 눈을 내게 집중시키며 말했다.

“네. 저 놈입니다. 저 놈이 틀린 놈입니다.”

 

그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댔고, 보는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우리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어디선가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다.

“개가 한발을 들고 오줌을 누는 건, 개 폼 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사회자는 그에게 정답을 맞췄다며 상품을 줬다. 무시를 당했다고 크게 창피하지는 않았지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정답이었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상품이 돌아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수수께끼에 정해진 정답이 어디 있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수수께끼의 정답인 것이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내가 처음부터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사회자는 처음부터 2개나 3개의 정답을 생각하고 문제를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정답 중 하나를 처음 말하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여러분 저기 있는 저 한심한 놈을 보세요. 저 녀석은 틀린 답을 말하고 있어요.” 라고 말할 준비를 했던 거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날은 운이 좋지 않아서 순진한 내가 당했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했다고 여유 있게 생각했다.

 

 

우리가 겪는 일들이 정답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문제들은 모두 그날의 수수께끼와 닮았다. 똑 같은 문제라도 상황에 따라 답이 바뀌고, 사람에 따라 답이 바뀌고, 시간에 따라 답이 바뀐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대학 교수님은 매년 같은 시험문제를 낸다. 그 교수님의 시험문제가 매년 같기 때문에 학생들은 작년에 A+ 받은 답안지를 외워서 쓴다. 하지만, 작년과 같은 답을 쓴 학생은 빵(0)점이다. 그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작년과 금년은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가 같더라도 정답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세상은 정해진 과녁에 활을 쏘는 게임이 아니다. 움직이는 과녁에 활을 쏘는 게임이다. 그래서 정해진 정답이 아닌 새로운 정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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