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가져야 그것을 이룰 수 있다. 큰 꿈을 아주 구체적으로 꾸는 것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교훈이다. 그래서 꿈을 꿔본다. 특히, 요즘처럼 연초에는 더 많은 꿈을 꾸게 된다. 대저택에 정원이 넓고, 야외 수영장도 있고, 실내에는 영화관 도서관 시설이 별도로 되어 있는 집에서 사는 꿈. 유명 인사가 되어 멋진 파티에 초대 받고, 개인 비서와 수행 경호 요원을 두고 다니는 꿈. 호텔이나 외국 여행지를 부담 없이 다니며 다양한 인생의 경험을 넓히는 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건 꿈이 아니라 망상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이뤄야 할 꿈과 헛된 망상은 분명 다른데,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순간이 있다.

 

꿈과 망상은 매우 비슷하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꿈은 멋진 것이고 꼭 가져야 할 것이고, 꿈이 없다면 성공도 없다. 반면, 망상은 쓸 때 없이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자신의 정신을 황폐하게 몰고 가는 습성이 있다. 꿈과 망상은 아주 비슷하게 보이지만, 꿈에는 행동이 따르고 망상에는 아무런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 꿈과 망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지금 행동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꾸고 있는 꿈에 나의 행동이 따라가고 있다면 그건 분명 내가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 없이 생각만하고 있다면 나는 망상을 즐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꿈과 망상처럼 아주 비슷하면서도 하나는 아주 좋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지 않은 것들이 있다. 단지 백지장 한 장 차이 같은데도 하늘과 땅만큼 다른 것들 말이다. 가령, 예술과 외설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예술과 외설은 분명 백지장 한 장 차이다. 뻔뻔함과 용감함도 때로는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느낀다. 용감한 것은 좋은 것이고 뻔뻔한 것은 좋지 않은 것인데, 아주 작은 차이로 어떤 것은 뻔뻔한 것이 되고 어떤 것은 용감한 것이 된다.

 

천재와 바보도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실제로 어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천재들 중에는 뇌의 특정부분이 손상을 입어서 그 손상을 만회하려고 다른 부분이 과도하게 발달하여 남다른 천재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인데 소리에는 매우 민감하여 한번 들은 모든 음을 즉석에서 재현하는 능력을 가지 사람이나, 자폐증을 겪으며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 놀라운 기억력이나 천재적인 계산 능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보면 가끔은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성공과 실패도 때로는 백지장 한 장 차이로 나뉜다. 0.01초의 승부를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두 자르는 수영선수의 CF 같은 것이 바로 백지장 한 장 차이를 생각나게 한다. 어렸을 때, 이런 동화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의 로키 산맥의 꼭대기에 물방울이 떨어졌는데, 같은 곳에 동시에 떨어진 물방울 중 한 방울은 왼쪽으로 기울어졌고, 한 방울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백지장 한 장 차이로 한 방울은 태평양으로 가고, 다른 한 방울은 대서양으로 갔다. 백지장 한 장 차이로 운명이 바뀐 것이다.

 

천사와 악마도 백지장 한 장 차이로 이야기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7년 동안 그렸다.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12명의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실제 모델을 찾았는데,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 첫 해에 19세의 젊은 청년을 보고 자신이 상상했던 선하고 인자하신 예수님과 똑같다고 생각하여 그를 모델로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그렸다. 다빈치는 그렇게 11명의 제자들도 모델을 찾아서 그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예수님을 배반하는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 6년 후에 그는 어느 감옥의 사형수를 보고 자신이 상상했던 가롯 유다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그 사형수를 가롯 유다의 모델로 그렸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롯 유다의 모델이 된 사형수는 알고 보니 그가 6년 전에 예수님의 모델로 그렸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고통과 쾌락도 백지장 한 장 차이다. 육체적인 한계를 느끼는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은 경기 후에 고통과 함께 쾌락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운동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다. 몇 년 전에 최카피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하신 카피 라이터 최병광 교수님의 개인 블로그에서 교수님의 짧은 일기와 같은 메모를 읽은 적이 있다. “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상쾌하다.” 그날 새벽은 교수님이 2주 동안 집중적으로 밤새워 작업하셨던 책의 집필을 끝내셨던 날이었다.

 
 

결과로는 전혀 다른 것들이 때때로 백지장 한 장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을 자주 본다. 백지장 한 장의 차이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인데, 그렇게 작고 사소한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꿈과 망상의 차이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있다. 돼지꿈과 개꿈은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다. 그저 허망한 생각만하며 상상만 하고 있다면 그 꿈은 개꿈이다. 하지만, 작은 차이를 만드는 어떤 행동을 내가 내 꿈에 덧붙일 수 있다면 내 꿈은 돼지꿈이 될 것이다. 내 꿈이 개꿈인지, 돼지꿈인지는 나의 행동에 달려있는 것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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