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가에 D 도넛을 파는 가게가 있다. ‘아빠가 도넛을 사가면 우리 딸이 너무 좋아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D 도넛을 사서 집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우리 딸은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며 ‘아빠 최고’를 외쳤다. 딸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버스 정류장 뒤로 약간 돌아가면 K 도넛을 파는 가게도 있다. 이번에는 K 도넛을 사서 집에 들어갔다. 같은 양을 담아도 넓은 판에 담기는 K 도넛을 보자마자 예상대로 우리 딸은 입이 또 찢어졌다. 아이들이 뚱뚱해지는 것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넛 하나에 저렇게 좋아할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면 그것도 나에게는 소중한 행복인 거다.

 

 

하루는 저녁 시간에 딸 아이가 전화를 했다. “아빠 오늘 들어올 때, D 도넛 사가지고 와” 애교 넘치는 딸의 전화는 아빠를 한 없이 즐겁게 한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늦게 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도넛을 사지 못했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딸은 크게 실망했다. 한숨까지 쉬며 딸은 말했다. “내일은 도넛 꼭 사가지고 와야 돼”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은 다른 일정이 생겨서 회사 밖에서 집으로 퇴근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도넛을 사가야 한다는 생각은 났지만, 주변에는 도넛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 딸은 뛰어나왔다. 아빠를 반기며 뛰어나온 딸은 내 손을 보면 말했다.

 

“그런데 도넛은?”

“음 오늘은 도넛을 사오지 못했어. 내일은 꼭 사올게”

“어제도 안 사오고, 오늘도 안 사오면 어떻게 해.”

 

딸 아이는 막 화를 내며 울며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옆에 있던 아내는 딸을 쫓아가며 꾸짖었다. 아빠에게 버릇없게 화를 낸 딸을 꾸짖고 나온 아내가 말했다.

 

“도넛 같은 거 자꾸 사오지 말아요. 아이들 버릇 나빠져요. 애가 당신을 기다렸던 게 아니에요. 도넛을 기다렸던 거지.”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도넛을 사가지고 가서 딸을 기쁘게 해야 하나? 아니면, 아이가 나쁜 버릇이 들지 않도록 당분간 도넛을 사가지고 가지 말아야 하나?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항상 어려운 문제다. 사실 단순한 선택이지만, 하루 종일 고민이 됐다. 아빠가 하루 종일 일하다가 도넛을 사가면 그것을 기뻐해야지 버릇없게 도넛을 사오지 않았다고 화를 낸다는 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얼마 전에 실제로 있었던 상황 하나가 생각났다.

 

 

대기업에 용역을 맡아 일을 하는 어느 중소기업이 있었다. 그 중소기업의 인원 몇 명은 대기업에 파견되어 일을 했다. 하루는 중소기업의 사장과 부사장이 그 대기업을 방문했다. 대기업의 담당자를 만나기 앞서 중소기업의 사장과 부사장은 자기 회사의 직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 대기업에는 그렇게 직원을 파견 보내서 일을 하는 중소기업들이 몇 있었다. 그 때도 3개의 회사가 3개의 방에 각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 중소기업 사장이 3개의 방이 있는 복도에 들어섰을 때, 그는 자기 회사 직원들이 일하는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들었다. 다른 2개의 방은 아주 조용하고 적막했다. 실제로 다른 두 회사의 직원들은 업무시간에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일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소기업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은 업무시간에도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것 같았다. 사장과 같이 갔던 부사장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녀석들이 놀아. 아주 군기가 빠졌군. 내일이라도 회사로 소집을 좀 해서 혼내줘야지. 녀석들이 프로정신도 없고 직업 정신이 투철하지 못해서 큰일이야.’

 

사장과 부사장은 대기업의 담당자를 만났다. 담당자와 업무 이야기가 끝날 때쯤 대기업의 담당자는 회사의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직원들이 서로 화목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도 일도 잘하냐고 부러워했다.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서로 즐겁게 일하는 것이 저희의 문화입니다. 회사의 문화라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거죠.”

 

그의 말 속에는 직원들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있었다. 대기업의 담당자도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너무 부럽다며 나중에 꼭 경영비법을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자기 회사 직원들의 웃음 소리에 어떤 사장은 경쟁 상대와의 치열한 전투를 떠올리며 진지하지 못한 직원들을 나무랄 생각을 하는 반면, 어떤 사장은 자신들의 일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일하는 회사의 문화에 자부심을 느낀다. 중요한 건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다.

 

 

그날 저녁, 나는 D 도넛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갔다. 나는 우리 딸이 아빠가 아닌 아빠가 사오는 도넛만을 기다린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딸은 아빠를 사랑한다. 그리고 도넛을 좋아한다. 그 녀석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의 서운함을 표현할 줄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가 예의가 없거나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도넛을 사가지고 짚에 갈 거다. 도넛이 우리 딸을 너무 뚱뚱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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