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좀 잘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영어가 안돼서요. 이사님처럼 영어로 의사 소통할 수 있으면 고민이 없겠어요.”

“모르시는군요. 영어는 자기 수준에서 누구나 고민한다는 걸요.”

 

 

미국에서 몇 년간 생활하신 경험도 있으시고, 외국인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시는 분을 뵙고 나는 영어를 못하는 신세타령을 했다. 내 하소연에 그분은 ‘영어는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고민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모두 동의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예전에 외국계 회사에서 만났던 사람이 생각났다. 나는 그 회사에서 강의를 했었는데, 점심시간에 회사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같이 식사를 하던 중 한 명이 키도 크고 얼굴도 매우 미인이었던 한 여성에게 어떤 남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 여자분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요. 특별한 조건은 보지 않아요. 인간적인 면 외에 고려하는 것이 있다면 남자가 저보다 조금 더 나았으면 좋겠어요. 가령, 나보다 영어를 조금 더 잘 한다던지…”

 

점심 식사가 끝나기 전에 나는 그 여자분이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다면 영어를 충분히 잘할 텐데, 왜 자신보다 더 나은 남자의 조건에 가장 먼저 영어를 뽑은 걸까? 차라리 ‘나는 수학을 못했는데, 남자가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라던지, 아니면 회사 업무와 관련해서 ‘리더십도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은 스마트한 사람이면 좋아요.’라고 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 그런데, 영어는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고민한다는 말을 대입하면 아마 그 여자분도 자기 수준에서 그 당시 영어를 고민하고 있었던 거 같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수준에서 자기 상황에서 고민을 한다. 아주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는 사람도 영어로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건 영어만이 아니다. 돈이 많은 거 같은 사람도, 명예가 높은 거 같은 사람도,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아마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또는 자기 상황에서 돈과 명예와 행복으로 고민들을 하고 있을 거다. 뉴스를 보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위기감으로 항상 고민한다고 하니 말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수준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수준 높은 고민을 하고 싶을 거다. 상대적으로 더 행복한 고민이 있다면 당연히 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꼴등을 벗어나는 고민보다는 1등을 쟁취하는 고민을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먹고 살기가 너무 빠듯해서 먹을 것을 걱정하는 배고픈 고민을 하는 사람은 해외 여행을 가기 위해서 적금을 붓는 배부른 고민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거다. 배부른 고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배고픈 고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곤 한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수준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나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얼마 전에 UN 개발 경제 연구소의 가계 자산 보고서를 뉴스에서 본적이 있다. 그 통계에 의하면 만약 나에게 5700만원의 자산이 있다면 나는 세계에서 10% 안에 들어가는 부자다. 5700만원을 현금으로 갖고 있던, 전세금으로 갖고 있던, 주식으로 갖고 있던 어떤 형태로라도 5700만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미 세계에서 10% 안에 들어가는 부자라고 한다. 만약 세계 최고 부자 1%에 들어가고 싶다면 4억 7000만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유엔개발경제연구소(UNU-WIDER)는 밝히고 있다. 어떤가? 당신이 하고 있는 고민이 배고픈 고민인 거 같은가? 아니면 배부른 고민인 거 같나?

 
 

우리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대에 가장 행복한 지역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선택은 나의 노력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이 주신 선물이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 받은 가장 행복한 인류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가난한 집 자식으로 본다. 그러면서, 부잣집에 태어나서 어려움 없이 살면서, 배부른 고민만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통계는 대부분의 우리는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배부른 고민을 하며, 재벌 집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을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한다면 나부터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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