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운 것처럼 상대도 내가 두렵다

입력 2006-09-08 14:16 수정 2006-09-08 14:16
나는 강아지를 못 만진다. 큰 개가 아니라, 아주 조그맣고 귀여운 강아지도 만지지 못한다. 강아지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을 만지지 못한다. 체온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못 만지는 것뿐만 아니라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 고양이 같은 녀석은 보기도 싫다. 가끔 어디선가 고양이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주 끔찍한 기분까지 든다. 나는 사실 동물들이 두렵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한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서 어떤 강아지와 마주쳤다. 큰 개는 아니었지만, 어린 내가 느끼는 위협은 상당한 정도였다. 나는 골목길을 거꾸로 나와서 먼 길을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골목이 길어서 내가 뒤 돌아서 도망갈 동안 그 강아지가 나를 충분히 따라올 거 같았다. 정면 돌파를 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나는 한쪽 벽에 몸을 딱 붙였다. 그 강아지도 앞발과 뒷발을 구르며, 인상을 쓰며, 으르릉 거리는 약간의 소리를 내며, 나와 반대편 벽에 몸을 붙였다. 녀석은 계속 나를 노려봤다. 약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는 되돌아서 골목을 거꾸로 도망쳐 나올까? 아니면 그냥 한쪽 벽에 붙어서 앞으로 마구 뛸까를 고민했다. 그 강아지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나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흐르도록 녀석과 나는 대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용기를 내서 가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골목을 거꾸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 강아지와 그래도 덜 마주치는 것이고, 열심히 뛰다가 물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픈 것을 꾹 참고 또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망치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리라. 나는 마구 뛰었다.

그때, 그 강아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뛰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하늘이 노래졌지만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일단 저 골목의 끝까지 뛰어 나가면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으로 뛰고 또 뛰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나를 도와주리라.

골목을 빠져 나오면서 뒤를 봤다. 그 강아지는 반대편으로 마구 뛰어가고 있었다. 강아지는 나를 쫓아온 게 아니라, 녀석도 나를 피해 도망갔던 거다. 그러니까, 내가 녀석을 무서워했던 것처럼 녀석도 내가 무서웠던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골목에서 마주친 녀석이 무서웠던 것처럼, 녀석도 내가 두려웠을 거다. 내가 주춤거리며 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도, 녀석에게는 큰 위협이었을 거다. 나는 가끔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면, 어렸을 때 골목에서 마주쳤던 그 강아지를 생각한다. 내가 두렵고 무서운 것처럼 상대도 내가 두렵고 무서울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생각을 얼마 전에 했다. 인터넷 바둑을 가끔 두는데, 내 급수는 15급이다. 16급이었다가 몇 번의 승리로 15급으로 올라갔다. 16급에서 15급이 된 나는 다른 15급들을 만나면 그들이 두려웠다. 이제 막 15급이 된 나로서는 이미 15급인 그들은 나보다 잘 두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15급이어도 나는 그들이 두려웠던 거다. 하지만, 바둑을 두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들도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15급이기 때문에 그들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 못했다.

상대를 두려워할 때에는 높은 승률을 올릴 수 없다. 내가 지기가 쉬운 게임이라고 생각하면서 게임을 하면 좀처럼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도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 게임의 결과는 알 수 없고, 어차피 승률은 50%다. 지금 내가 좀 더 진지하게 게임을 한다면 내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더 높아진다’라는 생각으로 게임에 집중한다면 승률이 높아진다. 나는 15급을 두려워하다 다시 16급으로 떨어졌다. 그 후 나는 두려움을 없애고 다시 15급이 되어서는 3연승으로 14급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14급이 두렵고, 아직 15급도 두렵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우리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사람하고만 바둑을 두고 싶어한다. 마찬가지로 쉽게 얻을 수 있는 목표만 세우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눈 앞에 해결책이 보이는 문제에만 도전한다. 하지만, 해결방법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고, 가야 할 길이 놓여진 것은 목표가 아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이루는 것에 우리는 도전, 성취,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거다.

우리는 어려운 목표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만, 그 녀석들도 우리가 두려울 거다. 우리가 게임을 즐기면서 진지하게 집중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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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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