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본부장 좀 오시라고 해”

<예, 회장님>

O본부장은 재정담당이다.

요즘 회사에는 돈 줄이 마르다 못해 타들어가고 있다.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O본부장은 느긋하다.

똥줄이 타는 것은 오너인 회장일 뿐.

다만 회장 앞에서 송구한 표정을 짓고 지극히 우려되는 듯 회사를 걱정하는 연기만 하면 된다.

본부장은 재계에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

서울 상대, 한국은행 출신이어서 회사가 망해도 어디든 자리를 옮길 수가 있는 것이다.

본부장은 회사 돈으로 선심을 써왔다.

넉넉한 홍보비로 언론계와도 친해 두었고 금융계, 정,관계에 출세한 동문들에게도 골프, 술 등 향응을 베풀어 왔으므로 인기가 좋았다.

잘 놀고, 고스톱, 포커, 마작, 운동 등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므로 잘 못 하는게 뭔지 모를 정도였다.

 

능력 있는 본부장에게 자금줄을 맡겨 놓고 회장은 여자에게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아왔다.

본부장은 찬스라고 여겨 막대한 비자금을 만들고 회사에 자금줄을 연결하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어지간히 챙겨두었다.

때때로 비자금의 일부를 회장에게 바치면서 빠져 나갈 구멍은 철저하게 마련해 뒀다.

 

본부장의 고향은 서해안 갯마을.

어머니는 조개잡이 밭농사일 등으로 아버지는 전형적인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무지무지하게 공부를 잘 했던 본부장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면 선생님들이 두려워 할 정도였다.

그래서 서울 상대, 한은을 수석으로 뚫어 냈고 대기업에서도 스카웃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돈에 한이 맺혔던 본부장은 좋은 머리로 들키지 않게 착복을 꽤 오랜시간 했다.

돈에 관한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가족과의 행복을 생각할 때라고 여겼다.

위태위태하던 회사는 오래지 않아 부도가 났고 꽤 괜찮은 자리(법정관리 회사의 사장)로 옮겨 앉았다.

본부장은 또 한 차례 착복의 기회를 만들었다.

소생가능 했던 법정관리 회사를 아주 헐값으로 아는 기업에게 M&A하고 리베이트를 챙긴 것이다.

주식 장난도 쳤다.

<망할 것이다> 와 <소생한다>를 반복하면서 엄청 벌었지만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재수 좋은 돈벌이를 계속할 즈음 가정에는 우환거리가 생겼다.

외동딸의 병이 악화일로였던 것이다.

드디어 딸은 누워서 지내게 됐다.

사실 본부장의 악착같은 돈 모음의 목표는 딸을 행복하게 해주려는데 있었다.

딸에게 많은 돈을 주지 않게 되면 딱히 쓸 곳도 없는 돈.

딸은 너무 예뻤다.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지 않으려고까지 생각했고 [데릴사위]외에는 다른 대안은 가지고 있지도 않았건만.

그런 딸이 누워서 생활을 하다니.

본부장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해야 하나?

 

본부장이 겨우 겨우 생각해 낸 묘수는 [같이 죽는 것] 밖에 없었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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