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


내 인생에 가장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은 아니었는데, 어떤 선생님께서 우리 반에 들어오셨고 아이들은 산만하게 떠들었던 거 같다.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산만하게 떠드는 아이들을 제압하시려고 아이들에게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으라고 하셨던 거 같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하게 바른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교실은 조용해졌다. 교실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때였다. 내 앞의 옆 자리에 앉은 녀석이 눈을 떴다. 평소에도 말썽을 많이 부리는 그런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이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눈을 살짝 뜨면서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힐끔 힐끔 살피는 것이었다. 아닌척하면서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실눈을 뜨면서 확실히 눈을 감지 않았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정의감에 불타올랐다. 그래서 손을 들고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누구누구가 눈을 떴습니다.>
<눈을 감으면 그런 건 보이지 않습니다. 눈을 감아요.>
<그러니까, 눈을 감아야 하는데, 누구누구는 자꾸 눈을 떠요, 선생님.>
<내가 눈을 감으면 다른 사람이 눈을 뜨는 건 보이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눈을 감아요.>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나는 내 앞의 옆의 녀석이 불의를 저지르는 걸 봤다. 분명 그 녀석은 자꾸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나는 정의를 실현해야 했다. 그래서 손을 들고 선생님께 말씀 드렸던 거다. 하지만, 나의 정의는 구현되지 않았다. 왜 선생님은 저런 나쁜 녀석에게 벌을 주지 않으시는 걸까.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그날이 계속계속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가끔 너무나 억울한 일들을 당한다. 그럴 때는 인생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악당이 정의로운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억울한 일들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당한 억울한 일과 비슷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성숙해져야 하는 거 같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다. 불평하지 말고 그걸 받아들여라. 불평보다는 불공정한 인생을 인정하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해라.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이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다. 누구는 돈이 많은 부모를 만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다. 누구의 부모는 학식이 많고 교양이 있고 문화적인 유산이 많지만, 누구는 엄마 아빠의 얼굴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기게 태어났지만, 누구는 한번도 날씬했던 몸을 평생 갖지 못하고 작은 키로 항상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이렇게 불공평한 인생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불평이 아니라 불공평함을 일단 인정하고 자신의 상황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삶을 사는 거다.

 

인생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부잣집 아들이 아닌 것을 불평한다. 하지만, 그를 보면 똑똑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뚱뚱하기 때문에 저주 받은 인생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그를 보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너무나 많은 걸 부모로부터 받고 태어난 사람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불평 불만 역시 끝이 없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불만과 불평은 어쩌면 그 사람의 인격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이너스를 만드는 생각의 늪에 빠지기 쉽다. 그 사람의 생각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마이너스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하고 플러스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마이너스 리더십은 마이너스를 만들고 플러스 리더십은 플러스를 만든다. 가령, 일제 시대에 누가누가 잘못했나. 누가 친일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생각이 마이너스 리더십이라면, 그 어려운 시기에 누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플러스 리더십인 거다.

 

<저 여자는 창녀입니다. 죄인입니다>라고 돌을 들고 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하셨다. 죄 지은 사람에게 돌을 던져서 앙갚음을 하는 것보다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더 먼저 생각하는 것이 플러스를 만드는 생각인 거다.
 

우리에게는 착한 마음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힘이 되어주고 싶다.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부잣집 아들을 별다른 이유없이 패주는 걸로 나타나서는 절대 안 된다. 인생을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무엇인가 플러스를 만드는 삶을 만들어보자. 이미 많은 걸 받았으면서도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투정하고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자.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을 위해서 내가 무엇이라도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받고 누리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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