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부모의 자격과 참교육

#1.
<엄마, 나 쥬스 마시고 싶어>
“안돼”
엄마는 딱 잘라 말한다.
<엄마아, 쥬스>
“안된다고 했지”
유치원 수업을 마친 딸과 그 딸을 데리러 온 엄마 사이에 몇차례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다.
톤은 조금씩 높아져가고 둘 사이는 경직된다.

만만찮은 고집들이 격돌한다.
드디어 딸아이의 울음보가 터진다.
엄마의 욱박지름과 준폭력동원사태 앞에 딸의 울음소리가 드높아진다.
이 모습을 지켜 보시던 할머니가 <아이에게 오렌지 쥬스를 사주세요>하고 권유한다.
엄마는 신경질 적으로 반응한다.
“할머니, 참견 마세요”
목소리는 아주 뾰족하고 눈꼬리는 사납게 치켜뜬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엄마도 오렌지쥬스를 잡숴야 겠군요. 짜증이나 신경질은 간(肝)이 힘들어서 그런가라오. 그땐 신맛이 최고지.
레몬이나 신김치 국물이 좋겠지만 당장 구하기 어려우니 오렌지쥬스로 대신 할밖에>

할머니는 은퇴한 내과의사로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기인(奇人)이었기에 지혜로 아이를 다스리는 법을 일러 주었지만 엄마의 교만방자함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2.
“야, 빨리 안가?”
아들은 아버지의 재촉을 무시한 채 길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아들의 생각은 유치원을 마쳤으니 <의무 완수? 했으므로 좀 즐기고 싶어>의 태도.
“길 위에서 놀지 말고 집에 가서 놀자”
아버지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는 아들.
결국 아버지의 성깔이 길 위에서 폭발한다.
장난감을 빼앗아서는 구두발로 뭉개 버린다.
무참하게 짓이겨져버린 장난감을 줏어 든 아들, 아주 서럽게 울어댄다.

#3.
<그 놈의 회사, 딴데로 옮겨 버려>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딸이 시집갈 생각은 안하고 일요일에도 출근 하는 것이 못마땅한 부모님.

출근하는 차안에서 딸은 소리없는 항변을 한다.
“시집 안가는 게 아니라 못가고 있어요. 서글프지만 어쩔수 없답니다. 얼굴이 큰편이라 수술을 해도 예쁘게 될 것 같지 않네요.
돈이나 많음 또 모르겠는데…
공부를 잘 해 <고시합격>이나 회계사, 의사, 약사와 같은 자격증을 딸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것도 어렵구요.
노래나 운동,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주도 없는 주제에 집에서 빈둥거려 봤자지요.
그래도 남이 쉬는 일요일에 회사의 쌓인 일거리를 처리하는 것이 살아남는 비결이랍니다”

자녀들, 특히 어린 자녀들에겐 자신이 전지전능하신 신(神)과 같은 조재라고 착각하는 부모님들 참 많다.
신이라고 의식을 안할 뿐이다.
부모가 잘못한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줄 모른다.
경쟁사회에서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공부해라>밖에 모른다.
그저 성적표에 매달아 놓고 안달복달 난리다.
물론 모든 부모가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인성과 특기를 계발해내는 지혜는 턱없이 부족한 부모님들.
자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오히려 거꾸로 자녀들로부터 이해받으려 한다.
작은 베품(마땅히 부모로써 해 줘야 할 것)에도 자녀들이 감동하길 기대한다.

물론 이런 부모도 있다.
아들, 딸이 노래방을 같이 안가려하자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요즘 유행하는 속도 빠르고 율동이 좋은 숨가쁜 노래들을 배워 자녀들과 노래방을 같이 간다거나, 자녀가 대입준비를 하는 경우엔 부모가 아예 학원에 등록해 다시 대학시험준비를 하는 등 호흡을 같이 하는 부모들 말이다.

법과 도덕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사랑과 이해로 참사람답게 키워내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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