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감성 사회와 그 적들

위의 두 그림은 매우 유사하다. 알 수 없는 추상을 같은 화가가 그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그림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유형으로 분류해야 마땅할 만큼 다르다.

먼저 왼쪽의 그림을 보면, 이 그림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분노의 눈(Eyes in the heat)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붓는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넓은 바닥에 캔버스를 깔아놓고 붓 없이 물감통에 구멍을 뚫어 물감을 흘리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한 그의 작업방식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널리 소개되면서 폴락은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어쩌면 새로움을 열망하던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의 작업방식과 작품들은 창의적인 활동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되었다.

그는 대중의 스타였다.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았으며, 그의 삶을 영화로도 만들었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카오스 이론을 적용하여 그의 작품들을 해석하는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대중의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다.

미술 작품을 가격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고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잭슨 폴락의 그림 가격을 생각해볼 때, 나는 그의 작품들은 앞으로도 매우 고가에 거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서양 미술사의 일대혁신을 가져온 창의적인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더 중요한 요소는 잭슨 폴락 자신의 삶이 매우 격정적이었으며 비극적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스타가 되었지만, 개인적인 그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잭슨 폴락 개인의 삶을 보면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사회 부적응자였다.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고, 술집에서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평생 감옥과 정신병원을 드나들었으며, 44세의 젊은 나이에 술을 먹고 난폭하게 차를 몰며 드라이브하다가 전복사고로 죽었다. 그러한 그의 비극적인 삶까지도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당신은 잭슨 폴락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자신의 삶은 우울하고 비참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과연 천재의 모습일까? 당신은 창의적인 천재에 대하여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나? 당신이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잭슨 폴락의 삶을 보면서 그 시대적인 분위기를 생각해봤다. 그가 물감통에 구멍을 내어 물감을 흘리면서 그림을 만들던 그 시대는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이 세계대전 이후 극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시기다. 당시의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념을 가지고 대립했다. 자기 생각을 서로가 상대에게 강하게 피력하면서 사회를 구성했던 시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은 자유를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웠다.

자유는 기존의 전통적인 생각들을 보수라는 이름으로 밀어내며 새로운 것, 질서를 파괴하는 것에 대하여 맹목적인 편들기를 했다. 당시 미국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플레이보이지의 표지 모델이었던 마릴린 먼로나 이유없이 반항하는 제임스 딘이 대표한다. 사람들은 난잡한 생활보다는 경건한 생활을 추구해야 하고, 이유없이 반항하기보다는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라는 이름으로 마릴린 먼로나 제임스 딘은 대중의 스타가 되었다. 어쩌면 천박하다고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사회의 분위기를 등에 업고 새로운 창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잭슨 폴락이 처음 물감을 부으면서 작품을 만들었을 때, 전문가들은 그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물론, 그를 옹호하며 새로움에 대하여 찬사를 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비평가들은 따갑게 그의 작품을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를 옹호했다. 이념의 대립에서 출발하여 자유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회분위기는 잭슨 폴락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는 인정을 받았다.

가끔은 사람들과 우스개 소리로 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 같다는 말을 한다. 만약 잭슨 폴락이 1950년에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다른 시대에 태어나서 작품활동을 했다면 그래도 그에게 창의적인 천재라는 이름이 붙을까? 분명한 사실은 그는 술주정꾼에 폭력배, 사기꾼이었고, 쓸쓸하고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는 거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천재들이 사회적인 분위기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만약,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따라가고 싶었던 천재가 사회적인 이미지였다면 왠지 모르는 배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사회에는 감성적이다. 더욱이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고 한다. 인터넷의 발달과 통신 인프라의 확장으로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감성을 공유한다. 특정하게 만들어진 감정이 빠르게 상대에게 이입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21세기는 더욱 더 감성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감성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감성적이다. 가령,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1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나 내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를 따라서 5~6명이 큰 소리로 운다. 그러면 100명의 사람들은 그에게 동조하고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분위기에 휩쓸리고 따라가는 것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습성이다. 사회는 감성적이고 그 감성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다.

우리는 감성과 감성지능(E.Q)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감성에 잘 빠진다고 해서 감성지능이 높은 건 아니다. 감성지능은 감성에 이성을 더해서 발휘된다. 그래서 감성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자주 이용당한다.

풍부한 감성으로 자신의 삶을 느끼면서도, 감성지능은 키워야 한다. 우리 사회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감성 사회의 적들에게 사회가 이용당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앞의 그림을 다시 보자. 오른쪽 그림은 웹 서핑을 하다가 영국의 리슨 갤러리(Lisson gallery)의 art & language 전시회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림이다. 오른쪽 그림은 왼쪽 그림과 다른 의도가 있다. 오른쪽 그림도 자유를 표현하는 것 같고, 무질서해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숨겨진 질서가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숨어있는 레닌의 초상을 볼 수 있다.

오른쪽 그림의 이름은 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태생적으로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 잭슨 폴락과 레닌은 모두 혁명가였다. 한 사람은 미술계에서, 다른 한 사람은 사회에서 말이다.

그러나, 폴락과 레닌은 서로 반대편에 있었다. 잭슨 폴락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의 대립시기에 자유진영의 상징으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반면,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레닌의 초상을 폴락 스타일로 그렸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나?

더욱이 레닌을 숨기고 폴락의 스타일로 말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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