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동판화)은 에셔(M. C. Escher)의 눈이란 작품이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의 삶이겠지만 말이다.



볼 것이 많아지고 봐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 요즘 세상에서 눈은 정말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눈은 정말 소중하다. 에셔는 눈을 그리고 눈동자를 그렸다. 그림을 보면 눈동자가 매우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눈동자를 그릴 때에는 그 눈동자에 맺히는 상을 그리는 것이 당연하다. 눈동자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를 표현해야 완성된 하나의 그림이 된다. 그림 속의 눈은 에셔의 눈이다. 에셔는 눈동자에 해골을 그렸다. 그의 강연집에 수록된 글에서 그는 자신이 눈동자에 해골을 그려 넣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그 눈이 당신의 눈이라면 당신은 자신의 눈동자에 무엇을 그려 넣겠는가?





그 사람의 눈이 무엇을 보느냐,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 행복한 삶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밝은 면을 보라고 하고 아름다운 것을 항상 보라고 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무엇을 보며 살고 있나?



에셔의 말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또 모든 사람은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건 무엇이다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아닐까?

죽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 아주 사소한 차이에서 출발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나는 이것을 상승효과와 하강효과라는 말로 자주 표현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상승효과를 만드는 거다.





내 친구 중에는 이런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여자인데, 사귀는 남자 친구와 사이가 매우 좋았다. 어느 날 그 여자 친구는 라는 말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미로 던졌다. 그런데, 중간 과정을 생략한 결과는 결국 그 둘은 헤어졌다. 아주 사소한 의미 없는 말에서 출발한 작은 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감당할 수 없는 하강효과를 만들었던 거다.



사실, 사랑이란 사소한 오해다. 많은 사랑이 아주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유치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이렇다.



어떤 남자가 동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쪽에 있던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자기 옆에 있던 쇼핑 백이 그 남자의 소지품이라 생각하고 남자에게 건넨다. 쇼핑 백 속에는 초콜릿이 들어있고 우연히 그 날은 2월 14일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었는데,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예의상 몇 번 만난다. 그리고, 각자 나를 찾아온다.



남자는 나에게 상담을 한다. 자기는 여자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데,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자가 아주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를 계속 만나야 하냐고 묻는다.

여자도 나에게 상담을 요구한다. 자기는 남자가 좋지는 않은데, 그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좀 더 그 남자를 만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상담이 귀찮은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은 남자와 여자는 자주 만나면서 둘의 관계는 급진전한다. 이렇게 사랑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는 거다.





아주 작은 사소함이 상승효과를 만들며 큰 축복이 되기도 하고, 하강효과를 만들며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되기도 한다. 둘 다 아주 작은 사소함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분명 상승효과를 만들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말을 써야 한다. 우리의 상승효과를 만드는 그 작은 사소함의 기본은 바로 나의 눈이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내 삶의 상승효과가 만들어질 것인지 하강효과가 만들어질 것인지가 결정된다.



사실,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가령,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주식을 살 수는 없는 거다. 긍정적인 생각이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같이 일하는 점원이 현금을 슬쩍 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사장이 하는 이유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을 나는 본능적인 생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다양화되고 수비보다는 공격이 더 많은 것을 얻는 사회라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생각이 더 효과적이다. 의심보다는 믿음이 더 큰 것을 만드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튼, 당신도 자신의 눈을 그려보라. 그리고, 눈동자에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을 그려 넣어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당신의 눈동자를 보라.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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