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있는 시나리오 만들기

입력 2004-05-07 11:36 수정 2004-05-07 11:36


이야기 1. 수줍은 소년



시장의 과일 가게 앞에 한 소년이 앵두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말 없이 앵두를 바라보는 수줍은 소년을 보면서 과일 가게 아저씨는 말했다.





하지만, 소년은 수줍은 표정으로 앵두를 집지 못하고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다시 소년에게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그냥 수줍은 표정만 지을 뿐 앵두에는 손도 데지 못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웃으며 직접 나서서 자신의 큰 손으로 두 주먹 앵두를 집어서 소년에게 먹어보라고 주었다. 소년은 두 팔을 모두 벌려서 앵두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염치없이 라고 먼저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또는 주인 아저씨가 라고 말하면 바로 집어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 1의 수줍은 소년은 그렇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앵두를 얻었다.



앞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집으로 돌아온 소년에게 엄마가 말한다.





엄마의 말에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야기 속의 소년은 상황을 파악했다. 아저씨가 자신에게 앵두를 줄 거라는 판단을 소년은 했던 거다. 만약, 자신에게 앵두를 줄 사람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먹어보라는 말도 안 했을 거고, 그런 사람에게는 라고 자신이 먼저 나서도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소년은 알고 있었던 거다. 과일 가게 아저씨가 자신에게 앵두를 줄 것이라는 판단을 한 소년은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소년의 시나리오는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했으며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는 적중했다.





당신이 기획에 관한 일을 하건,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건, 광고를 만들건, 아마 당신도 자신의 일에서 많은 시나리오를 생각하게 될 거다. 당신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나 소설처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좀 더 멋지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영화를 보면 뻔한 스토리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아주 잔잔한 감동이 있어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의 전개가 예상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데도 왠지 모르게 지루하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도 매우 좋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시나리오에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 영화나 이야기가 더 좋다. 그게 더 재미있다. 당신은 어떤 타입의 영화를 좋아하나?



시나리오에 아이디어가 있는 영화하면 나는 와 가 생각난다. 유주얼서스펙트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매우 유능한 형사들이 암흑가의 대부인 카이저 소사를 추적한다. 카이저 소사에게 이용당한 5명의 범죄자를 형사는 쫓는데, 그 중에서 가장 나약하고 별볼일 없는 어떤 절름발이의 진술을 통하여 범인을 추적한다. 그 절름발이의 진술 자체가 바로 영화의 스토리다. 영화 속의 형사도 범인을 찾고, 극장 속의 관객들도 범인을 추리한다. 하지만, 범인은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들을 속이고, 극장의 관객까지도 속이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유유히 사라진다. 영화가 끝나기 5분전에 자신이 바로 카이저 소사임을 모두에게 암시하면서 말이다.



디아더스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어떤 헌신적인 엄마가 유령들로부터 자신의 아들과 딸을 보호하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자식을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쓴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던지면서 헌신을 하는데, 결국 관객이 발견하는 것은 엄마가 아이들을 죽였고, 그들이 유령이라는 거다. 영화가 끝나면서 관객들은 유령과 인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안다.



사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이디어는 시나리오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데, 시나리오가 잘 구성되면 될수록 좋은 아이디어가 힘을 받는다. 앞에서 소개한 2편의 영화는 모두 마지막 장면에서 반전을 이룬다. 그 영화들에서는 모두 반전이라는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사용했던 거다. 아무튼, 너무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요즘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 속의 한 장면들로 생각한다면 나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있을까? 혹시 작은 얄팍한 이익을 쫓으면서 겨우 앵두 하나를 얻어먹고 좋아하면서 이야기 1의 소년과 비교되는 그런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은 우리가 만들고 있는 영화를 돌아보자.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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