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정의의 이름으로 그대를 심판한다



이 그림(목판화)는 에셔의 낮과 밤이라는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는 논 바닥이 진화하여 새가 되어 날아간다. 새의 반은 검은 새가 되어 낮으로 날아가고 있고, 나머지 반은 흰 새가 되어 반대편의 밤으로 날아간다. 이 그림 속에는 낮과 밤이 공존한다. 검은 새가 흰 새를 존재하게 하고, 흰 새가 검은 새를 존재하게 한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만들고 있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다. 요즘은 TV의 시사프로그램을 부쩍 많이 본다. 지난 달 대통령의 탄핵 이후 다른 어떤 것보다 정치가 재미있어졌다. 정치에 무관심했는데, 정치가 재미있어지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약간 불길하다. 이렇게 청춘이 가면 어쩌지.

인생도 게임이고, 정치도 게임이다. 게임이라면 우리는 2명의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이 먼저 생각난다. 권투나 축구, 또는 전쟁처럼 말이다. 하지만, 꼭 그런 제로섬 게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에서는 윈-윈(win-win) 전략을 이야기하고, 인생에서는 상생의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나는 정치도 냉혹하게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얻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협력을 통하여 모두가 더 큰 이익을 만드는 넌제로섬 게임 중에서도 플러스섬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 정치도 분명 플러스섬 게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협력을 통한 플러스섬 게임이 되는 것을 가장 크게 가로 막는 것이 아마 선거가 아닐까 싶다. 여러 명 중 한 사람만이 뽑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낙선할 수밖에 없는 선거는 분명 제로섬 게임이다.

일반적으로 정치를 포함한 사회 활동 중에서, 협력을 통하여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는 플러스섬 게임을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냉혹한 제로섬 게임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로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다. 선과 악의 대결은 2명의 선수가 싸우는 가장 단순한 유형의 제로섬 게임이다.

우리는 선과 악의 대립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TV 시사 프로그램 중 토론 프로그램은 대부분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가진 두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서로가 자신의 의견을 침을 튀겨가며 주장한다. 토론을 하는 이유는 토론을 통하여 더 좋은 의견을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찬반토론을 통해서는 더 좋은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진전은 없다. 단지 자신들의 주장을 반복할 뿐이다. 찬성과 반대라는 대립의 게임은 TV를 통하여 중계되고, 참여자들은 상대를 쓰러뜨려서 자신이 이기는 게임에만 몰두한다. 더 나은 의견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로섬 게임만을 할 뿐이다. 그런 제로섬 게임은 시청률을 높일지는 몰라도, 토론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분한다. 그럼, 선은 누구고, 악은 누구인가?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선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의의 이름으로 선의 편에 서서 악을 심판한다. 스스로 악의 편에 서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정치나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나는 악의 편이다’라고 나서는 사람이 어디 있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정의를 위해서 선의 편에 서서 악의 축인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라크의 많은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선을 지키지 위해서 악마의 힘에 대항하여 싸웠다.

세상에 선과 악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자신은 정의의 이름으로 선의 편에 서겠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가령, 요즘 정치에서 말하는 진보와 보수를 보자. 분배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옳은가? 당신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생각하나?

분배와 성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의 차이를 갖는 것이다. 분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외 받는 약자를 위한 법안 하나라도 더 추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것이고,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은 결국에 국민 모두가 잘사는 길은 성장을 통하여 파이를 키움으로써 국민들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왜곡해서 분배를 주장하면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보고 성장을 주장하면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파렴치한 악덕 기업주처럼 보는 시각은 결코 옳지 않다. 두 의견 모두 존중돼야 하며, 어느 것 하나가 악이라는 생각은 게임을 협력으로 이끌지 못하고 냉혹하고 비열한 게임으로 만들고 만다. 당신이 상대를 속이지 않으면 상대도 당신을 속이지 않는다. 당신의 친구를 악당으로 보지 마라. 그것이 협력을 위한 게임의 룰이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어머니께서 물으신다.

나는 전에도 그랬듯이 웃으며 대답한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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