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삶의 풍경

이 그림(목판화)는 에셔의 작품으로 테이블 위에 거리가 놓여지는 불가능한 형태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의 어느 날의 기억이 생각난다. 나는 2층의 커피숍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그날 그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텅 빈 거리의 풍경은 죽은 느낌이었다. 죽어서 생기가 없는 거리의 끔찍함.

그 다음날도 나는 그 커피숍에서 거리를 내다봤다. 전날과는 달리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들도 빵빵거리며 어딘가를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숨이 막혀왔다. 도시의 삶에 지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같은 거리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며 또 다른 불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지난 주말에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일본에 갔다 왔다. 금요일에 출발하여 월요일에 돌아왔다. 3박 4일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일본의 회사들이 주 5일제 근무를 하고, 칼 퇴근을 해서, 실제로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은 일 벌레라고 들었던 말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그들이 10년 동안 장기 불황에 경제가 계속 어렵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의 베스트셀러를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만난 일본인 친구에게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뭐냐고 물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류라는 소설가가 쓴 13세의 헬로우 워크(13세의 Hello Work)라는 책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그 책은 큰 판형에 하드커버를 씌워서 가격이 보통 책의 2배 ~ 3배 가량 비싼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갔던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는 중학생에게 직업을 소개한 책이다. 가령, 영화가 좋아요라는 장에는 영화 감독, 영화 배우, 조명 기사,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 등의 목록이 있고, 각 목록의 직업들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나와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30개 정도의 장들이 그냥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장의 끝에는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가 있다.

컬러를 많이 쓰고 고급 종이를 사용해서 책은 예쁘게 잘 만들어졌다. 더구나 유명한 소설가가 쓴 공을 많이 들인 책이었다. 하지만, 그 책이 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순히 직업을 소개하는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상한 것은 왜 유명한 소설가가 직업을 소개하는 책을 쓴 걸까?

일본에서 출판된 내 책의 기획 편집을 담당했던, 일본인 친구가 자신의 분석을 이야기해줬다. 은 현재의 일본의 상황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Hello Work은 단순히 직업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의 고용보험센터를 Hello Work이라고 부른다.

현재 일본은 10년째 장기 불황이다. 일본의 아이들은 일류대학을 나온 자신의 부모가 Hello Work에 가서 실업수당을 받고, 직업을 알선 받는 것을 보면서 자라고 있다. 명문대를 나온 아빠가 실업수당을 받으며, 직업을 소개 받지만, 오랫동안 취업을 못하고 계속 Hello Work을 들락거리는 것을 아이들은 보면서 자라고 있다. 그들에게는 역할 모델이 없는 셈이다.

13세의 아이들에게 라는 말을 하고 싶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책을 사서 선물하기 때문에 지금 이 책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입시에 매달렸는데, 요즘은 그렇게 입시가 심하지는 않다고 그 친구는 덧붙였다. 그 친구의 말을 들고, 책의 제목이 갖는 이중적인 의미와 왜 유명한 소설가가 직업을 소개하는 책을 썼는지가 이해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일본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일까?

어떤 날은 바쁜 도시의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얻고, 평온한 삶을 갈망한다. 또, 어떤 날은 나태하고 하루하루 죽어만 가는 삶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치열하게 살고 싶어지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비슷한 것 아닐까?

일본 동경의 거리 풍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활기차 보이지는 않았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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