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학교에서 데모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없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해도 대학은 그야말로, 데모를 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닭장차라고 불렀던 전경 버스가 언제나 학교 주변을 맴돌았고, 학교 앞 차도에는 매일 같이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이제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당시에는 거의 매일 일어나곤 했다.






나는 학생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데모에 참가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인지, 어떤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기억의 아주 짧은 필름 속에는 데모를 하던 학생들 사이에 내가 있다. 학생들은 스크램을 짜듯 정열하고 교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교문 밖에는 전경들이 지키고 있다. 전경들 역시 잘 짜여진 스크램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전경들 뒤에는 까만 장갑차처럼 생긴 페퍼포그를 내뿜는 차가 있다. 까만 성냥갑처럼 생긴 차다. 문은 보이지 않고, 지붕으로 삐져 나온 통으로 최루탄을 쏜다.






데모의 일상적인 모습은 화염병과 최루탄이다. 당시 데모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은 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하며 학생들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전경들은 방패로 막으며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힌다. 그러면서 최루탄을 쏜다. 최루탄이 학생들 틈에 떨어지면 대열은 흩어지고 학생들은 우왕좌왕한다. 그때 대열을 이탈하여 전경과 마주치는 학생들은 전경의 긴 몽둥이에 흠씬 두들겨 맞는다. 쇠파이프를 들고 전경과 싸워보는 학생들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 전투경찰에게 학생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최루탄은 박격포처럼 한발한발 발사되기도 하지만, 페퍼포그 차에서는 기관총처럼 최루탄이 연속으로 발사된다. 한곳에서 터지는 최루탄과 약간 다르게 땅 바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스를 내뿜는 최루탄의 일종을 우리는 지랄탄이라고 불렀다. 최루탄의 위력은 대단했다. 최루탄은 거리를 순식간에 화생방 훈련장으로 만들었다.








학생들 사이에 끼어있던 나는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우 비장했다. 나는 친구들의 손을 잡으며 그 어떤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나는 머리 속에 하나의 사진을 갖고 있었다. 그 사진은 최루가스가 자욱한 운동장에 학생들이 손에 손을 잡고,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고 있는 사진이었다. 대학생이 교복을 입고 있는 사진인걸보면 아주 오래된 선배들의 모습이다. 독재와 불의에 대항하여 자신의 뜻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고통스러운 최루가스 속에서도 강한 정신력으로 대항하던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당시 나는 새로 찍히는 사진 속의 주인공 역을 맡고, 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정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고, 전경들이 우리를 향하여 방패를 세우고 몽둥이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때, 천둥소리와 함께 뒤쪽 페퍼포그 차에서 불을 내뿜으며 최루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옆의 친구들 손을 잡았다. 그리고, 주인공의 대사를 큰 소리로 외쳤다.






물러서지마!






나는 옆 친구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눈에도 힘을 주고, 팔 다리에도 힘을 줬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가슴을 활짝 폈다. 주인공들이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나의 머리에서 왼쪽으로 45도 각도로 약 10cm 정도 떨이진 곳으로 최루탄이 하나 날아갔다. 짱돌 하나가 나의 머리통을 휙 스치며 지나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잡았던 옆 친구의 손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나는 뛰었다. 어디로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무조건 뛰었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나의 기억의 필름은 거기까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돌이 날아와 머리에 맞아 피가 흘러도 꿈쩍하지 않는다. 나는 중국의 천안문 사태 당시 탱크를 맨 몸으로 막았던 사람의 뉴스를 기억한다. 연설 도중 자신을 겨냥한 총이 빗나가 육영수 여사가 쓰러지고, 경호원들이 뛰어나와 간첩을 총으로 쏘던 상황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은 전혀 몸을 움츠리지 않고, 라고 말했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본 이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주인공들처럼 따라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래된 기억은 그다지 창피하지 않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마음 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나의 머리통을 스쳐간 최루탄을 생각하곤 한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