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가 된 소녀

입력 2009-12-03 17:17 수정 2009-12-03 17:27
한여름의 태양에 반사된 바다는 다이아몬드인양 반짝였다.
갈매기는 그 반짝임 속으로 파묻혔다간 솟구쳐 오르며 울음을 토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채양이 긴 하이얀 모자를 쓴 소녀가 소나무에 기대선채 그 바다를 보며 흥얼 거린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채..."

그때 소녀 곁으로 다가와 눈을 가리는 한 소년.
소녀는 가만히 소년의 손을 떼어낸다.
둘은 바닷가로 내려가 멸치를 말리는 방파제의 한쪽끝에 자리잡는다.
소년은 가슴에 품고온 선물을 소녀앞에 꺼내 놓는다.

초콜릿과 운동화, 그리고 셀마 라겔류프의 소설 '호반의 각시'

소년은 선물을 하고픈 설레임으로 신문을 들고 새벽을 갈랐다.

그해 가을의 단풍은 유난히 곱더니...
그만 낙엽이 돼 떨어질무렵 소녀는 서울로 가버렸다.
사업실패로 바닷가 작은 어촌으로 내려왔던 부모가 서울서 다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편지가 오갔고 소년이 서울로 가 만나기도 했었다.
소년은 대학을 못가고 일찍 군대에 갔다.
소녀는 소년이 선물한 운동화를 신고 취직이 돼 회사원이 됐다.

소녀의 부모는 딸을 일찍 시집 보내려했고 마침 좋은 자리가 나와 강압적 결혼을 시켜 버렸다.

소년이 군에서 나왔을 때 소녀는 남의 아내가 돼 미국으로 갔고 소식조차 제대로 듣기가 어려웠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소녀는 남편을 일찍 사별했다.
그렇지만 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큰 아들은 공무원, 둘째 아들은 의사, 셋째 딸은 펀드회사 직원으로.

한국엘 나오면 그 바닷가를 찾았다.
그리움? 글쎄, 아련한 추억? 글쎄.
그렇지만 그 바다는 언제나 정답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소년의 모습이 때때로 떠오르기는 했다.
미국서 바다를 즐겨 찾았던 것은 그런 탓이 아니었을까?

아들과 딸이 분가해 나가고 혼자 남게 됐을 때 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가끔 초콜릿과 운동화가 생각날때도 있었지만 애써 지우려고 했다.

어느날 한국의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옛날 그 소년이 꼭 한번 만나고 싶어 찾는다는...

"그래, 이번에 나가면 한번 만나고 오자"
그렇게 다짐하며 '호반의 각시' 앞장에 쓰여진 글귀를 떠올렸다.

'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그이는 저 먼곳에 있습니다'
아마, 괴테의 '미뇽'중에 나오는 글이었을 걸...

마음에 얹혀진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기분이 됐을까?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가 했는데 갑자기 앞으로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한지 1주일만에 소녀가 세상을 떠났다.

세 자녀가 한국으로 나와 어머니의 유골을 유언에 따라 그 바다에 뿌렸다.
'호반의 각시'도 함께 띄웠다.

소년은 아마도 갈매기가 되어 그 바다의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품게 될지도 몰라...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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