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궤적

입력 2009-08-27 15:44 수정 2009-08-27 16:12
여름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벌써 내려왔어야 할 오빠는 연락 두절 상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9월로 들어서면서 오빠의 소식이 전해졌다. 아프리카에 봉사활동 다녀오느라고…. 적어도 변명으로 들리진 않았다.

"겨울 방학 땐 틀림없이 빨리 내려갈께"라는 확답은 없었지만 그런 여운이 깔려 있는 듯 했다.

겨울 방학이 됐다. 오빠는 내려오는 대신 "졸업논문, 임관준비 등으로 바빠서 못 내려간다"는 전화를 했다.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으므로 이쪽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화는 있는대로 났다.

분기탱천.
곧 폭발해버릴 것 같은 상태였음에도 잘 참고 버텼다. 졸업식 때는 초청도 없었다.

벚꽃도 다 떨어지고 여름의 입구에서 그럴 수 없는, 그래서는 안되는 소식을 접했다. "재벌급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 데릴사위가 됐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중 3이었을 때 가정교사로 들어온 오빠. 오빠는 수재 이상이었으므로 명문대 법대에 쉽게 합격했다. 대학 3학년 올라와서 고시에 합격, 이제는 자신과 결혼할 것이라는 꿈에 젖어 있었던 그녀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대학생활비 일체를 그녀의 부모가 다 감당했고 아들 겸, 데릴사위 겸이었다. 오빠도 그렇게 받아 들였다. 주위에서도, 동네에서도 그렇게들 생각했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으로 꼬였다. 슬픔 끝에 우울증, 정신병원 생활, 부모의 죽음 등을 경험하는 사이에 많은 재산은 그녀의 친척들이 하이에나처럼 뜯어 먹었다.

무남독녀 외딸로 금지옥엽 인양 자라왔던 그녀의 인생은 처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길거리에 내 팽겨쳐저 「미친년」이라는 수근거림 속에 살던 그녀는 어느 날 새벽 별 다른 생각없이 비끌어 매어져 있던 줄에 목을 걸었다.

「뎅그렁」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바람이 불었던가? 참 포근하고 아늑하다고 느꼈다.

의식을 잃고 축쳐져 늘어져 있던 그녀는 새벽 일찍 교회종을 치러 나온 목사에 의해 구해졌다. 목을 매어 자살하겠다는 의식도 없이 그렇게 일이 전개됐고 하늘은 그녀를 구원의 세계로 돌려놓은 것이었다.

그녀의 삶은 종치는 것, 교회에 찾아오는 어린아이와 노는 것, 목사님을 따라 심방다니는 것 등. 교회적인 것이 전부였다.

전도사가 된 그녀는 낮은 산등성이에 있는 교회와 그 속에서의 삶을 사랑했다. 교회 지붕의 붉은 색, 교회 건물의 흰 색, 그리고 초록빛 바다는 잘 어우러졌고 그 그림속의 생활은 그녀에게는 천국이었다.

검사가 된 오빠는 정계로 진출, 3선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을 지냈고 정치계의 거목이 됐다. 자신이 망가뜨린 인생에 대한 한치의 회한도, 부끄러움도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갔다.

부동산 투기가 잠깐 문제됐을 뿐, 먹은 뇌물, 처가로 부터 받은 막대한 재산 등으로 최고의 부러움을 사는 돈많은 정치가가 돼 있었다.

행복 그 자체가 충만한 인생의 주인공이 된 오빠의 마음에 납덩이를 얹은 사연하나.
지체 부자유인 아들, 미국 이민가서 흑인과 살며 쾌락에 빠져 마약에 젖어 사는 딸.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이 죽어가는 것은 모르고 아들과 딸이 빨리 죽기만을 빌고 또 빌고 있었으니….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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