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쾌심죄와 미운오리 새끼

“회장님, 그만 사표를 내시면 어떻겠습니까?”
“(감히 회장 사표를) 누가 수리할낀데?”
그룹의 오너 회장은 그 그룹에선 임금과 같다. 1년 쯤 지나 그룹이 더욱 힘들어졌다.
“회장님, 그룹 통째로 파십시오.”
“(누가 감히 우리 그룹을) 사갈만한 사람이 있겄나?”

다시 1년 쯤 지났다. 이번에는 회장님께서 먼저
“그룹 통째로 내줄끼니까네 한 200억만 받았스믄 좋겠다”고 했다.
여름에 그런 일이 있었고 가을에는 아들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날 낮, 그러니까 오후 3시경에 들렀더니, “오늘은 결재끝, 퇴근한다”며 회장실 셔터를 일찍 내렸다. 세상살이 얘기를 3시간 쯤 했다. 유달리 힘이 없었고, 풀이 죽은듯 했다.
“마, 조용히 쉬고 싶다.”고도 했다.

“회장님, 그룹을 나라에 헌납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고?”
당시는 군정이었고 대개의 기업들이 자금난에 허덕였다. 재벌기업의 간판급 회사도 1차부도 소식에 시달렸어야 했다. 금융권에서 작심하면 웬만한 재벌은 하루아침에 만세하게 생겼던 때였다.
“회장님, 말이 헌납이고 동업하는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고”

자세히 풀어서 요지를 설명했다.
“내년에 군정이 끝나고 선거가 시작됩니다. 구제금융 신청을 하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한 3000억 신청하고 돈 나오면 10%정도 헌납하면 될 겁니다.”
“아하, 요령을 알겠구먼.”

그 뒤 들은 얘기의 내용은 1000억원 넘게 구제금융을 받았고 그룹 핵심인사에게 5억정도 들려서 보냈더니 “껌값이나 하라”며 되돌려 주더라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회장님을 만날 수 없었다. 아들의 장례, 그룹 추스르는 문제 등으로 시간이 없다며 비서실에서 차단하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그럴까?”
이때 이미 마지막 돈 맛을 안 사장과 중역들이 인(人)의 장막을 친 뒤였다. 6개월 쯤 지나서 그룹은 해체됐다. 몇 년 지난 뒤 청문회 때 국회에서 회장님을 만났다.
“어, 한기자 당신이 망한다 캐서 마 내가 망했다 아이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뺏긴기거든. 억울하다 아이가. 우선 몇 개라도 찾을 수 있다 케주라. 당신 말대로 된께나. 그러믄 안 찾겄나?”
“예, 2개 이상은 분명히 찾을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하십시오.”

그 뒤 찾는데 성공은 했지만…

공중분해 2년 뒤 그룹의 회사 하나가 8000억원에 팔려 나갔다. 천안 요지에 있던 20만평 넘는 회사가 30억~50억원 수준에 넘어갔는데 몇 년뒤 수백억원에 되팔렸다.

미운 놈한테 빼앗아서 예쁜 놈에게 나눠주는 꼴과 다를 바 없는 형태, 이것이 이른바 「쾌심죄」였던 것이었다.  사실, 부산(釜山)의 가마솥부(釜)는 부자부(富) 대신 일본이 그렇게 바꿔놓았다는 설이 있다.

세계에서 1등하던 부산의 신발산업은 사상공단으로 옮기고 공단이 폭풍우로 한 때 물에 잠기면서 기운이 이지러져 사상누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주무부 장관이 사양산업이라며 내동댕이 치다시피하면서 몰락의 길로 아주 쉽게 빠져 들었다.

부산에서는 1등 하거나, 상의회장하거나 재벌급으로 커지면 망한다는 속설이 한 때 유행했었다. 동래 범어사, 양산 통도사의 큰스님, 도사 등의 얘기를 듣고 부산을 떠나 무사했거나 재벌이 된 기업들이 많다는데…

오늘날에도 그렇다면?
부산은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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