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식당 차려서 제대로 망하는 법

# 대전의 명물인 두부 두루치기 원조식당 주인이 장사를 하면서 평생 모은 현금 8억5천만원을 몽땅 도둑 맞았다는 방송 보도내용을 술자리서 우연히 알게 됐다.엄청 맵기로 소문난 두부를 팔면서 전국적으로 소문난 맛집이었다.자세히 들어 보니까 장롱안에 있던 100만원권 수표 5장을 포함한 현금 8억5000만원과 귀금속 1000만원을 송두리째 도둑 맞았다는 거였다.경찰에 따르면 5만원권 지폐 무게가 총 20㎏ 정도였고 여행용 캐리어에 넣어야 운반할 수 있는 정도의 무게라고 했다.70대 여주인이 지난 40년동안 식당을 운영해 오면서 평생동안 아끼고 모은 돈이었다.작년부터는 아들내외 부부에게 식당을 완전히 넘겼다고 했다.처음에 이 방송을 듣고 내가 즐겨 찾는 식당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놀랐고 두 번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아들부부 내외가 이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하지만 문제는 장롱속에 거액이 보관됐다는 사실조차도 아들내외 마저 까마득히 몰랐다는 점이다.아무튼 경찰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왜 현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집안 장롱 속에 철저하게 보관했냐는 점이다.물론 거친 풍파를 살면서 현금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을 지도 모른다.괜시리 금융기관에 노출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각종 세금과 주변의 따가운 질투라는 점도 생각해봤을 것이다.또한 상속 및 증여 문제로 세무사와 복잡한 상담도 사전에 피하고 싶었을 게다.알고보니 주인장은 매일 번 돈을 신문지로 뚤뚤 말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에 만족했으며 힘들 때마다 꺼내서 돈뭉치를 보면서 외로움을 털어냈다고 한다.충분히 이해는 갔지만 그렇다고 작은 돈도 아닌 엄청난 거액을 마냥 쌓아둔 채 도둑 맞을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게다가 자식마저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채 말이다.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평생 살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불쌍한 마음까지 든다.도대체 그놈의 돈이 뭐길래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식까지 속이고 식당 앞에 있는 은행까지 무시한채 겨우 장롱에 보관하다가 느닷없이 왕창 털렸으니 마음이 얼마나 허망할까.그것이 단골 원조집 주인의 헛된 그림자였다.

 

 

# 이 세상에는 희한한 일도 종종 발생한다.허구헌 날 가진 돈 자랑질 빼고는 내세울게 변변치 않은 가진 자들 앞에서 늘 당당하게 살았는데도 오히려 돈을 억수로 번 사나이가 있다.1년에 1억을 버는 원도심에 위치한 칼국수집이 있다.이 곳에 가면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인다.지금은 음식장사로 성공한 어엿한 김사장이지만 식당을 창업하기 전까지는 한마디로 백수였다.건설업을 하다가 분양실패로 엄청난 손실을 본뒤 수년간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였다.나중에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준 한 지인의 도움으로 동업형태로 대학교 인근에다 횟집을 열었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날이 갈수록 장사는 잘 됐지만 월말이면 파트너들간 수익 분배 문제로 충돌이 잦았기 때문이다.결국 오픈한지 1년도 안돼서 지인에게 어렵게 빌린 2억원을 날려야만 했다.한동안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다가 생각해 낸 것이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칼국수집 창업이었다.워낙 가진 돈이 없는 탓에 사채로 겨우 돈을 빌린뒤 모텔 인근의 먼지 툴툴 날리던 빈 점포를 얻었다.문제는 어떻게 매출을 올려야 할지에 대한 걱정거리가 산더미였다.이왕 뒤늦게 시작하는 거라면 남들이 안하는 방법으로 차별화 해보고 싶었다.그래서 일단 착한 가격으로 인근 고객들을 끌어 모으는데는 성공했다.비록 위치는 노른자위는 아니었지만 식당위치가 모텔 인근인데다 24시간 영업하는 탓에 그럭저럭 자리는 채워졌다.

 

 

주변에선 전국 프랜차이즈를 권유했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김사장은 나름대로의 절대 원칙이 있었다.무조건 돈 벌 욕심으로 갑질하는 식품 대기업들이 저지르는 횡포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결국 가족과 친인척 중심으로 직영점을 늘린 결과 분점을 7개나 거느리게 됐다.예전 개업 초창기 시절이었던가.식사 때를 놓친 나는 오후 늦게 가게를 들렸을땐 사채업자에게 그날 번 현금을 지불하고 난 뒤 줄담배를 연신 피던 김사장의 모습을 종종 목격해야만 했다.어쨋든 지금은 성공했으니 사람 팔자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바닥까지 내쳐진 자존심과 절박감이 끝내 승리를 이뤄낸 것이다.시원한 육수와 면발 솜씨가 어느 새 고수의 대열에 들었지만 맛깔난 파김치 맛도 일품이었다.결국 맨손으로 장사를 시작하더니 이젠 차별화를 넘어 맛집으로 우뚝 자리를 잡고야 말았다.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으로 거듭났고 한마디로 인생 역전하는 찬란한 순간이었다.그런데 인생사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술술 잘 풀리던 그에게 엄청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절친한 후배의 권유로 투자한 비상장 주식이 휴지조각 되면서 그 동안의 성공 스토리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함께 고생한 배우자 이름을 새긴 번듯한 사옥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한 것이 결국 화근이었다.한 순간의 성급한 판단이 쪽박 인생으로 변모하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요즘 한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윤식당>의 시청률이 심상치가 않다.인도네시아 발리 인근의 작은 섬인 길리 트라왕간 해변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가게를 경영하면서 좌충우돌하는 분투기를 보여준다.매우 단촐한 식당인데 역할이 새롭다.배우 신구가 아르바이트생을 맡는 것을 비롯해 윤여정이 사장 겸 메인 세프, 이서진이 총무 겸 서비스와 캐셔, 정유미가 보조 세프를 각각 담당한다.이 소박한 식당의 주 메뉴는 단연코 불고기다.TV촬영에 앞서 전문 세프를 만나서 자문을 구한뒤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지금은 라면류와 치킨까지 추가해 불고기를 포함한 세가지 메뉴로 해변가 외국인을 상대로 어설픈 장사를 시작한다.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한뒤 손님 맞을 준비를 다해놓고 텅빈 가게를 채우려는 호객행위가 귀엽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TV방송 프로그램이니까 장사가 안돼도 재미로 봐줄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전쟁이고 정글이다.한마디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식당이란 곳은 한 가정의 생계가 달릴 만큼 존엄하고 그야말로 숭고하다.요즘처럼 계속되는 불경기엔 더더욱 그렇다.오죽했으면 요리 전문가인 백종원이 절대로 크게 벌이지 말고 작은 식당을 고집하라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전날 먹은 술 때문에 해장이라도 할 생각에 어김없이 들리는 올갱이집 사장이 이 대목에서 딱 어울린다.빌린 돈으로 작게 시작한 이 식당주인은 바로 앞에 짓다 만 상가건물을 경매로 받아서 본인 살고 있는 상가주택을 포함해 어엿한 2채를 소유하게 됐다.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그뿐인가.모 대학교 앞에서 작게 시작한 멸치 국수집 주인도 자식과 며느리들이 합세하는 바람에 어엿한 건물주가 됐다.한 여름날 허름한 골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육수를 끓이는 챔피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카이스트 출신 도연스님은 최근 이런 말을 건넨다.“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공부가 시간이 갈수록 공허해졌죠.내가 누구에게 인정을 받을려고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숨쉬는 것조차 자연스럽지 못한게 과연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거 맞아.결국 난 행복해지고 싶거든.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명문대를 입학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방송 세트장이든 가혹한 현실이든간에 따로 분별할 필요도 없다.어차피 먹고 산다는 핑계로 식당을 할 거라면 고객을 향해 온 맘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집중한다면 멋진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자신이 자영업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하기 위해선 메뉴 개발과 식당의 평수가 아니다.그렇다고 자본금이 많다고 해서 떡하니 성공하지도 않는다.분명한 건 선입견과 두려움 같은 혼란스러운 것부터 당장 이겨내고 볼 일이다.비록 작지만 어렵게 용기낸 출발이야말로 행복한 식당을 운영하는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난 오늘 저녁도 그런 소신있고 당당한 주인장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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