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챔.

마음은 알아챔과 깨우침과 각성이다. 알아챔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마음이고, 깨우침은 작은 자기는 없다는 것을 알아챔이며, 각성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는 큰 깨우침이다. 현재의 자기를 알고, 욕심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각성으로 하늘 큰마음을 갖자. 꽃의 본성은 핌이고, 눈의 본성은 봄이며, 마음의 본성은 알아챔이다. 악몽을 깨치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게 꿈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고, 탐욕을 부리는 것은 최종 상태는 빔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투는 것은 목적보다 평온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고 듣고 알아채는 기관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각성과 성찰이 없으면 자아마저 알아채지 못하고, 자기감정에 갇히면 상대 역공을 알아채지 못하며,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면 진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상대 표정을 통해 현재의 자기를 알아차리고, 살핌과 관찰로 나감과 멈춤을 알아차리자.

 

깨우침.

깨우침은 진리를 자명하게 아는 마음이다. 술을 먹고 취했다는 것을 알고 일어서는 것은 알아챔이며, 술에 취하면 인간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주(節酒)하는 것은 깨우침이다. 몸은 유한하지만 마음은 무한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알아챔이고, 마음은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깨우침이며, 몸은 유전자 전달자에 불과하고 개별적 자아는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큰 깨우침이다. 몸이 망가질 때까지 습관과 욕심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자기모순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화와 성질과 변덕을 부리는 것은 유아독존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은 자아는 없다는 것을 한 번 크게 깨우치면 작은 일로 흔들리지 않고 상대 때문에 아파하지 않는 인간 반석이 된다. 달구어진 쇠라는 것을 알아채고 쇠를 잡으면 화상을 입지 않고, 녹은 쇠에서 나와 쇠를 잡아먹는다는 것을 깨우치면 화와 분노로 자신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욕심을 버려서 괴로움도 버리고, 작은 자아를 버려서 깨우치겠다는 바램도 버리자.

 
대오각성.

마음이 알아채고 깨우치더라도 마음은 수시로 오류를 일으킨다. 고칠 수도 없는 지나간 일에 에너지를 뺏기고, 변덕과 비교와 부정과 실언과 병약(病弱)으로 자기가 자기를 파괴한다. 마음의 변형과 변질을 알아채고 고치는 것은 각성뿐이다. 깨지지 않는 금강석 마음을 만들려면 세상도 상대도 자신도 불완전함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유전자 프로그램이 설정 된 몸은 고칠 수도 없는 가전제품과 같고, 자유로운 마음은 어디에도 붙들리지 않는 바람이다. 몸에 열이 나면 근본 원인을 알아차려야 열을 다스릴 수 있고, 마음이 불편하면 자기를 버려야 고칠 수 있다. 세상은 엇물려 돌아가는 순환 질서로 유지되고, 자아는 유전자가 아닌 영성으로 이어진다. 작은 자기를 버리는 순간에 큰 자아로 승화하고, 버리지 않으면 버림을 받는다. 욕심 없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고, 대오각성으로 보이지 않는 힘도 꿰뚫어 보소서!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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