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고물 컬렉터 박사장의 멋진 예언

# 둥지 세탁소 윤사장은 토요일 오전이면 변함없이 동네 편의점을 들린다.이유는 로또복권을 사기 위함이다.머리를 깍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나서 내가 다짜고짜 물어봤다.평소엔 5000원씩 매주 구입하는데 술 한잔 한뒤 기분이 삼삼할땐 수시로 구매하기도 한단다.워낙 가진 것 없는 본인에겐 유일한 투자라면서 말하는 모습이 왠지 부끄러운 눈치다.그동안 당첨된 적은 있냐는 질문에 최고 성적은 3등이란다.당첨금은 얼마나 받았냐는 질문에 스마트 폰에 저장된 농협 거래내역 확인증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정말로 세금 22%를 차감한뒤 120만원 당첨금이 확연히 보였다.전날 밤 꿈속에 아련한 숫자가 보여 그대로 적었는데 아쉽게도 1등이 안돼 무척 아쉬워했다.어쨋든 그 날 이후로 자신은 로또복권 수집가가 됐다면서 껄껄껄 웃는다.언젠가 1등 당첨되면 종중땅에 지은 단층 벽돌 집에서 벗어나 계룡산 자락으로 이사해 소 키우면서 살고 싶단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무렵 쯤이다.당시 나는 그림 수집에 미쳐 있었다.아이러니하게도 고교시절 가장 애를 먹었던 과목이 내신성적이 반영되는 미술이었다.그런데 세월이 흘러 돈을 벌게 되면서 투자라는 명목으로 소품들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으니 참으로 뜻밖이었다.‘이중 그림’으로 블루칩 작가로 된 화가 김동유도 그때 알게 됐다.지방에서 묵묵히 활동하는 비주류 작가라는 점에서 더 애착이 갔다.그가 처음 수집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옛 기왓장이었다.건축된 지 오래돼 떨어져 나온 기왓장을 비롯해 집을 허물거나 지붕을 새로 얹히면서 버려진 기와장등 실로 다양했다.기왓장이 있던 장소를 우선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찾아가 파낸뒤 모으기 시작했다.대부분은 눈에 보이질 않아서 땅속에 박혀 있거나 빗물이나 바람에 제 모습이 드러난 그런 것들이었다.이런 기왓장을 손에 넣을 땐 가장 행복했지만 반면에 쓰레기를 줍기 위해 돌아 다니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무척 언찮은 표정이었단다.

 

 

컬렉터(collector)의 본능은 여기에서 끝나질 않았다.철이 들고 난후 또 다른 수집대상은 우표였다.새 우표가 나오는 날이면 여지없이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채 우표를 사는 것이 가장 뿌듯했다.그렇게 그는 수집하고 모으는 일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며 살았다.그래서 한동안 자신의 그림 소재가 된 것은 우표였고 그 이미지를 그림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며 버려진 개인 소지품들을 고르기 시작했던 것이다.고장난 자명종 시계부터 할머니의 닳아버린 악어 핸드백, 깨진 LP판, 전축등등 낡고 오래된 골동품에 매료됐다.“여보 이런 것 좀 주워오면 안돼? 집이 고물상이야?” 꺼림칙하는 아내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은 어느새 고물상이 되어 버렸다.그렇게 지독한 수집광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 이야기가 이쯤 흘러가면 고물 수집으로 대박난 한 강철 여인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갑작스런 사업실패로 남편이 자살하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이 된 박사장은 생계를 위해서 뭐든지 일해야만 했다.지인의 소개로 나대지를 빌려서 작은 고물상을 시작했다.남의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닥치는대로 고물을 주워 불과 10년만에 산업단지 진입도로 인근에 300평짜리 땅을 어렵게 장만했다.그 곳엔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컨테이너 집과 각종 고물들로 가득찼다.공장 인근에서 버려진 고물들을 수거하느라 밤낮없이 일한 결과 그의 성실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일대 공장 곳곳을 샅샅히 트럭 운전하면서 단시간내 많은 양의 고물을 차에 싣는 속도가 왠만한 남자들도 못따라갈 정도였다.남들이 꺼리는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찌든 남자같은 얼굴을 비롯해 화장끼 없는 민낯과 상처투성이 두 손으로 두 자녀를 훌륭히 키워냈다.아들은 지방 국립대 공대를 나와 대기업 지사에서 근무중이고 상업계 고교를 졸업한 딸은 농협에 우수한 성적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화물트럭을 손수 운전해 고물이 있는 곳이라면 촌구석도 마다하지 않는다.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천직인 고물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다짐이다.박사장은 폐지 줍는 부모님 같은 노인들을 보면 트럭에서 내려 자신이 힘들게 수거해 온 고물들을 나눠주는 일도 다반사였다.얼마 전에 부동산에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고물상 주변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면서 토지를 매도하라는 거였다.땅값이 평당 1000만원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과거에 고물상을 하면서 큰 평수로 임대를 할까 고민하다가 힘들게 마련한 종자돈에다 대출받은 돈으로 땅을 매입한 것이 제대로 적중한 것이다.세월이 흘러 어느 새 30억대 부자가 되는 인생역전의 기회가 오고야 말았다.현재 산업단지내 토지가 워낙 부족해 시간이 갈수록 인근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 불 보듯 뻔했다.늘상 자식들이 고물 줍는 일을 그만두고 이젠 여행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라는 말에는 도통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 최근 취미가 없는 고객들을 위해 맞춤형 취미를 제안하는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이들은 누구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아주고 관련 제품을 추천해 주는 ‘개인 맞춤형 취미 제안 서비스’를 제공한다.서양화가를 포함해 건축가, 마술사, 리폼, 블로거 등 개성있는 큐레이터들이 참여한다.특히 단순한 취미용품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션 수행을 통해 취미를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큐레이터와 참여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소품 만들기, 로봇, 레고, 마술, 드론, 가구리폼 등 분야도 다양하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그룹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결국 밥벌이 하느라 일상에 찌든 세대들이 간편하고 쉽게 이색적인 취미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수집광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콜렉터>라는 영국 소설의 주인공처럼 단순한 취미인 것일까 아니면 병적인 집착으로 번진 것인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화가 김동유에게는 수집이 가져다 준 의미를 물어보면 서슴치 않고 위로와 편안함이란다.남들에게는 허접스런 쓰레기고 볼품없는 행위지만 자신에겐 유일한 보물이자 세상 어떤 것보다도 의미있는 시간이란다.그래서 모으는 것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늘상 즐겁단다.인생이란 이벤트도 비슷한 것 같다.원하지도 않았지만 때론 아무도 바라보지도 않았던 자신이 어느 순간 가치를 발휘해 찬란하게 빛나는 경우가 일어나기도 한다.누군가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결별을 당하고 취업이 안돼 절망하고 하던 사업이 망해 빈털터리로 남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들이 아닌가.인생 길은 밋밋하고 재미없는 일방 통행만이 길이 아닌 듯 싶다.스스로 쓰레기통에서 주워낸 보물에게서 가치를 부여하고 가슴이 뛴다면 이 역시 다이나믹한 인생이되는 법이다.물론 각자가 느끼는 가치의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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