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비야는 늘 씩씩하고 활기차다.작고 왜소한 키에 신발 사이즈까지 작은 그가 걸어서 지구를 몇 바퀴씩 걸었다고 하면 과연 누가 믿을까.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데라곤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담장에 핀 개나리가 화사한 한 대학교 특강에서 만난 그의 말 속도는 변함없이 빨랐고 까르르 하며 웃는 모습 여전히 호탕했다.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월드비전에서 그에게 긴급 구호팀장 자리를 먼저 제의했다고 한다.그래서 평소에 생각하기를 죽기 전에 꼭 한번은 케냐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단다. 그 곳에서 케냐의 의사를 우연히 만났는데 결국 터닝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환자들을 정성껏 진료하는 의사의 모습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본 것이다.그 의사는 피범벅이 된 사실도 잊은 채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었는데 자뭇 걱정이 돼서 “괜찮냐”고 질문을 던지니까 “내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돈 버는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그리고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무엇보다 이 일이야말로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단다.이 말을 듣고 나서 그는 그 젊은 의사가 너무 부러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왜냐하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맞아 떨어져 완전 몰입하는 그 의사의 모습에서 벅찬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월드비전의 긴급 구호팀장이 되기로 맘을 먹었다.여러 날 잠도 못자고 눈에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이 날 정도로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땐 ‘내 안의 작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고 물어보곤 했단다.‘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니까’라고 대답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단다.그래서 하는 말이 “지금 당장 무엇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또한 “정말로 가슴 뛰는 일을 찾았을 땐 그것을 꽉 잡는 용기 역시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그는 “청춘 세대를 포함해 전반전을 놓치고 후반전을 향해 뛰고 있는 선수라도 혹시나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그런 생각을 버리고 100도씨로 펄펄 끓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그의 손발이 워낙 작아 매번 캐릭터가 그려진 아동용 운동화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 직원들이 운동화를 보고 “누가 어린애를 위험한 현장에 데리고 왔냐”며 놀리곤 했단다.비록 작은 손과 발을 가졌지만 “중요한 건 손발이 작건 크건 이 손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한 손은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라면 나머지 한손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게 마땅하지요.날개짓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손으로 쓰고 싶고 다른 한편으론 사람들의 눈물을 닦고 상처를 만져주는 손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말도 끝내 잊지 않는다.

 

# “위험한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무엇인가 이뤄낼 수 없습니다.”수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모든 국민들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그때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작한 '희망 항해'가 무려 210일간 총 4만1900km의 바닷길을 항해하는데 마침내 성공했다.김승진 선장의 이번 항해는 어느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 다른 도움없이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만 항해하는 한국 최초의 세계 일주 성공으로 국제 인증을 거쳐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기록됐다.무기항·무원조·단독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그는 뭍으로 발을 내딛은 후 “오기 전까지는 직감이 오지 않았다”며 참았던 콧물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순우리말로 ‘바다 달팽이’란 뜻을 가진 길이 13m의 아라파니호는 장장 210일간 4만1900km에 달하는 거리를 항해하면서 수차례 찾아온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남미 대륙과 남극 사이에 위치한 바다의 에베레스트라 불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험준한 바다로 이름난 케이프 혼을 통과하던 날엔 건물 2층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파도와 돌풍에 두 차례의 전복사고가 있었다.

 

이뿐이 아니었다.같은 달엔 영국령에 위치한 사우스 조지아 섬에 이르렀을 땐 대략 높이 20m, 폭 50m 정도의 유빙을 만나기도 했다.특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자바섬 사이에 위치한 순다해협은 좁은 수로에 선박 통행량이 많을 뿐 아니라 해적이 출몰해 이번 항해 최대 난코스로 알려졌다.그러나 김 선장의 노련함과 육상 지원팀의 노력으로 무사히 통과해 하늘에 감사를 드렸다.드디어 아라파니호는 당진 왜목항에 입항하고 말았다.그는 환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해를 하다 보니 지구가 가장 아름다운 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면서 "세월호 유가족들도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끝내 시련을 이겨내길 바란다"며 위로했다.

 

# 오지 여행과 요트 항해도 신선하지만 이 대목에서 또 한명의 개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살던 집을 팔고 아들과 딸을 휴학시키면서 가족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여행도 그냥 여행이 아니었다. 경북 울산 간절곶에서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25인승 중고 버스를 타고 1년간 횡단하는 대장정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이동하면서 경유하는 나라만 유럽과 아시아를 합쳐 무려 30여 개국에 이른다. 다섯 명의 '빼빼 가족'이 벌인 일이다. 가족 모두 빼빼 마른 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지난 3년간의 여행 준비를 하면서 유일한 재산이었던 아파트까지 팔아 여행 경비로 충당했다.특히 12년된 중고 미니버스를 숙식 가능한 길 위의 집으로 개조한뒤 울산 간절곶에서 포르투칼 호카곶까지 350일에 걸친 세계일주에 성공했다.이 거짓말 같은 모험을 실행한 주인공이 바로 ‘빼빼 가족’이다.삶에서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가족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달린 한 가족의 여정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뒤 자녀들은 1년여 여행기간 동안 각자 분담해 기록한 사진과 동영상, 자료들을 정리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동안 진땀을 흘렸다.갑자기 유라시아 대륙을 당돌하게 오래된 미니 버스를 타고 횡단 해야겠다고 작정한 이유가 궁금해졌다.4평 남짓한 작은 공간은 제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비좁은 공간이었다. 이 작은 집에서 5명이 1년을 잘 살아내려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빼빼 가족’ 가장은 아이들의 어깨가 무엇 때문에 무거운지 아니면 지금 시대의 부모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단다. 고민 끝에 다섯 명의 가족이 서로를 잘 알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미니 버스를 몰고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단다.당시 자녀들이 중고생이었는데 학교 대신 선택한 여행에 부모로써 두려움은 없었을까.중고등학교 시기가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사실 앞에서 실로 고민이 많았다. 자신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부모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올려 놓아야 할 시기라는 사실도 결코 잊지 않았다. 하지만 빼빼 가장은 자녀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부보단 ‘가족’이 있기를 우선 바랬다.

 

여행에서 돌아온뒤 자녀들은 여전히 공부는 뒷전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한 듯 보여 행복하단다.특히 어린 자녀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후에도 서로 만나서 가족의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걸로 감사하단다.가장 기억나는 장소를 묻는 질문에는 단연코 바이칼 호수를 손꼽는다.드넓고 험난한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힘들게 그곳에 도착했을 땐 바이칼 호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양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여행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더불어 그곳에서 만난 마음 착한 어부들과 나눴던 보드카의 맛은 어떤 술보다도 진하고 향긋했다. ‘빼빼 가족’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기에 언젠가 꼭 한번 바이칼 호수에 다시 가보고 싶단다.빼빼 가장은 지금 생각해볼 때 여행을 가기 전과 후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확연히 달라졌단다.여행 전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아니면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살았지 가족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체로 공감했다. 늘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쫓아 다닌 기억밖에 없었다.늘 쫓기는 생활의 반복과 연속일 뿐이었다.이제야 뒤늦게 철들은 빼빼 가장은 이렇게 속내를 털어 놓는다.“저는 허울뿐인 아버지였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그냥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울림이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되찾아 주고 싶었습니다”

 

# 나는 마음가는 대로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꿈이 있다.계속 성장하려면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본다.인생을 즐기고 잘 산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걸까.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실패를 인정하고 성공의 맛도 동시에 누릴 수 있어야 한다.인생은 늘 배움의 연속이다.어쩌면 지루한 인생 길에서 멋지게 즐기려면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 줄 알아야 한다.그러기엔 내가 보기엔 여행이 딱이다.발길 닿는 곳곳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기본이고 채워지지 않는 배움의 열정은 그야말로 보너스다.중요한 건 하찮은 여행일지라도 그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낼 수 있어 빛나는 법이다.그런 측면에서 여행이 참으로 좋은 듯 싶다.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낯선 경험을 하거나 모르는 사람과도 금새 친해지는 장점 또한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한 셈이다.
 

우선 하루를 다양한 기회가 있는 배움의 장으로 생각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특히 일상에서 눈과 귀를 열어두고 주변을 살피면서 언제든 새로운 경험을 받아 들여야 한다.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리뷰하는 습관이 중요하다.왜냐하면 제아무리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으로 도출하지 않으면 그다지 도움이 되질 못한다.특히 낯설고 새로운 것을 접하더라도 자신의 일상에서 적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피곤하고 힘든 여행 길이지만 하루를 마칠 때 조용히 자신에게 질문하고 느낀 것을 천천히 되볼아 보는 것이 좋다.이것이야말로 일상의 여행에서 건져 낼 값진 보석이다.결국 내가 생각하건대 최고의 스승은 여행길에서 얻는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평가를 거친 생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잔인한 사월의 아침이다.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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