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대리기사가 연금 부자된 사연

# “놀면 뭐 합니까.한창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벌어야죠.그나마 요즘엔 손님도 뚝 떨어져 재미가 없어요.그 놈의 김영란법 때문에 경기가 시원치 않거든요.괜히 정부가 그런 거 만들어서 없는 사람들만 고스란히 피해만 보는 걸요.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마 전 탄핵 결정이 내려진 날 허리띠 풀어놓고 시청근처에서 지인들과 마음껏 술을 마신 터였다.그 날은 어떻게 집에 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하지만 다짜고짜 묻는 대리기사의 질문 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한 걸로 안다.“글쎄요, 김영란법 취지는 좋은 거에요.문제는 정치란 말이에요.탄핵 결정이 내려진 오늘도 결국 정치를 못한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그리고 경제는요? 그것도 말인데요.국민들 표 얻어 당선된 정치인들이 정신 바짝 차리면 금방 해결되고 말구요.그런데 말입니다.그게 당장 쉽게 안되니까 참 안타깝기만 한 거죠.하지만 국민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밤새 촛불 들고 평화적 시위를 하다보면 언제간 좋은 날이 오겠죠.오늘처럼 말입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마음 좋게 생긴 대리기사는 처음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디서 익숙하다면서 말을 대뜸 건넸다.이날 기분좋게 술에 취한 나는 혹시 라디오에서 들어본 적은 있냐고 물어봤다.그랬더니 출근길에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는 거였다.괜히 우쭐해진 나는 모처럼 자랑질을 해댔다.진짜 방송인처럼 말이다.그랬더니 귀가 유난히 작았던 대리기사는 묻지는 않았는데 자신이 운전 일을 시작하게 된 경위를 털어 놓는다.오래 전부터 주말 부부로 생활해온 지라 퇴근후 시간 보내는 것이 무척 힘들었단다.집근처 골프 연습장에서 시간도 축내봤고 직장 동료들과 의미없는 술도 먹어댓지만 신통치가 않았단다.우연히 알게된 대리기사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저녁 이후의 삶이 건강해졌다.지금은 본인이 수 년째 불입중인 개인연금 100만원을 남은 3년만 납입하면 만기가 끝나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대리운전을 할 예정이란다.결국 자신의 노후준비를 위해 성실한 ‘투잡’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맨날 사람들을 만난다는 핑계로 매월 술값에다 대리운전 비용만 치르느라 정신없던 나로썬 망치로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지난해 경기 불황으로 소득이 시원치 않자 이른바 ‘투잡’, ‘쓰리잡’ 등 부업을 한 직장인이 무려 40만명을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인 가운데 부업을 하는 비중은 아직 높진 않지만 여성, 고령자, 저학력층에서 부업을 많이 한 것으로 파악됐다.특히 임시·일용직, 시간제나 특수 고용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부업을 하는 비중도 높았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분석한 ‘부업을 하는 사람들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 가운데 부업을 한 사람은 40만6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2623만여명 가운데 1.5%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고령화 영향으로 40세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중고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았다. 지난해 경기침체의 여파로 부업의 비중이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청년층의 부업 비중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청년층 가운데 부업을 한다고 응답한 이들의 주업은 대부분 도소매 및 음식 숙박업과 학원강사로 대표되는 교육 서비스업에 각각 33%씩 몰려 있었다. 그럼에도 직장인 가운데 고학력보단 저학력층에서 부업을 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고졸 미만 취업자 가운데 부업을 하는 비중은 3%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다른 학력집단에 비해 두 배가량 높았다. 특히 부업을 하는 단순 노무직중에는 청소 경비업, 가사음식 판매관련업, 건설, 배달, 가사 도우미 등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로 대리운전이나 배달업의 종사자가 부업을 더 많이 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청소 경비와 같은 용역직이나 농림어업 관련 단순 노무직에서 부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가 있으면서 추가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경기상황에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았다.특히 경기가 나쁘면 부업이 줄고 호전되면 소폭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이런 현상은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여성, 고령층, 저학력층 인데다가 임시·일용직, 시간제나 특수고용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경우 부업을 하는 비중이 높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부업을 하는 사람들의 주된 일자리 임금수준은 주업만 하는 경우에 비해 70~80%에 그친 반면, 총 취업시간은 오히려 부업을 하는 경우가 더 길었다.또한 부업을 겸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중저임금에 많이 분포해 있었고 이를 업종으로 보면 단순 노무직과 서비스업에 대부분 몰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 연초에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 경제포럼(WEF)에서 글로벌 아젠다가 공개됐다. 세계의 지속 성장 발전을 위해 내세운 아젠다 가운데는 과학 이슈 하나로 ‘행동변화’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다보스 포럼측은 뇌 연구 성과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더 생산적이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삶을 위해서는 ‘행동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무럴리 도래스와미 미국 듀크대 교수는 먼저 “온라인과 모바일로부터 적절한 단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래스와미 교수는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임직원은 업무 시간의 28%를 이메일을 읽거나 답변하는 데 소비하는 반면 방해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최장 시간은 단 11분에 머무는데 그쳐 이런 경우 뇌가 원래 하던 일로 복귀하는 데는 25분이 걸린다”고 발표했다. 도래스와미 교수를 비롯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휴대폰이나 노트북이 없을 때 업무에 더 집중하고 동료와 유대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영국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제시한 ‘자연친화 가설’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은 선천적으로 나무나 물과 같은 자연물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하고 행복감을 느낀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실내에 식물을 키우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한 가지 사건이나 활동에 집중하는 ‘주의집중 시간’이 늘어난다는 결과를 얻었다.그래서 멀티 태스킹(다중작업, Multitasking)이 사실은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뇌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한 번에 여러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오히려 한 가지 일을 한 사람보다 일의 품질과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결과도 발표했다.

 

# 결국 본업이니 부업이니 하는 말들도 자신에게 적용하기 나름이다.한 금융권 후배는 ‘쓰리 잡’을 하고도 멀쩡히 직장생활을 해 나간다.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다.물론 후배는 낮에는 금융 영업을 하니까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저녁엔 빨간 치마를 두르고 어엿한 치킨집 주인으로 변신한다.어쩌다 그 곳에 가서 후배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주변에 부업을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단다.건강 기능식품 네트워크 사업을 비롯해 늦은 밤에 오피스 건물 청소업을 하는 사람도 많고 대출 중개,판촉 및 인쇄물 영업,주말엔 상가 분양등 실로 다양하다.

 

이렇게 각자가 지닌 재능을 펼쳐 보이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수십 년 애오라지 한우물을 파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많이 목격된다.그들을 소위 ‘고수’라고 하는데 지금처럼 불경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간다.사정이야 어찌됐든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활용해 본업(本業)에 충실하다는 점은 단연코 분명했다.이 대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효율’이다.결국 누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건은 각자 선택의 몫일 뿐이다.물론 선택과 집중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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