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첫 눈이었다.

눈이 내렸는가 싶을만큼 오는듯 마는듯 했다.

첫 눈이라면 펑펑 쏟아져 내려 「야! 눈이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도록 하는 것이 제격 아니겠는가!

희미한 첫 눈 온 다음날 출근한 미소가 커피 마실 준비를 하면서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은근하게 말했다.

<하시게나>

"큰 짱구가 결혼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 미소 생각은 어때?>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니?>

"어릴 땐 멋 모르고 시집가서 잘 살아야지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자라면서 현실과 부딪히고 어머니의 일생과 여자의 일생을 제 삶에 대입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시집을 잘 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자주 해 봤습니다. 아무 남자하고 적당히 결혼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결심을 굳혀오던 중 선생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 후론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큰 짱구의 청혼에 마음이 흔들린건 사실입니다."

<잘 알았다. 방여사님과 같이 의논해 보자꾸나>

 

경식의 아들 둘이 공부를 잘해 서울의대생이 된 것과 그들의 머리가 짱구인 것, 그래서 큰 아들은 큰 짱구, 작은 아들은 작은 짱구로 통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게 진행됐던 일이었다. 미소가 큰 짱구의 청혼을 받고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은 형편상 결혼이 어려웠다가 지금은 돈도 많이 있고 홀어머니의 문제도 정리됐으니 결혼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 것과 맞물렸다고 봐도 좋았다.

그 이면에는 큰 짱구가 전도 유망한 의사인 점, 나의 친척인 점, 미국으로 가 불확실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 같은 것이 맞물려 작용했던 것이라고 짐작했다.

 

방여사와 성은이가 함께 들어왔다.

나는 미소대신 컴퓨터에 매달렸다.

연말인지라 풋에 대한 비중을 고려해야 했다.

미소가 방여사와 함께 내 등뒤에 와서 섰다.

장이 열리기 전에 양매도와 풋매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노트에 적어두었다.
<이따가 보고 참고로 하세요.>

방여사에게 말을 마치고 점을 치듯 짱구와 미소의 인연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기운으로 알아봤다.

미소가 결혼 얘기를 끄낸 시각의 기운은 병신(丙申)년, 경자(庚子)월, 무인(戊寅)일, 병진(丙辰)시였다.

구도자의 기상이었다.

큰 스님이나 추기경의 기상이라 할 만 했다.

 

미소가 결혼을 해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드러내놓고 남편이라고 할만한 인연은 없고 돈은 많을 수록 아픔이 크게 될 것이며 속세를 떠나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는 기운이었다.

문득 탄핵 소추된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다.

 

한정희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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