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불황을 건너는 방식

입력 2017-03-09 10:24 수정 2017-03-09 10:24
계속되는 경제 불황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난감하다.신문 방송에서는 희망퇴직이다 임금삭감이다 뭐다 해서 들려오는 말들이 이젠 전혀 낯설지가 않다.그럴수록 불황 스트레스도 덩달아 커져만 간다. 그렇지만 두 손 놓고 넋 나간채 멍을 때려봤자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불황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든 스스로 생존법을 찾아야 한다.당장 내 머리위에 떨어지는 낙엽부터 무조건 피하고 볼 일이다.가끔씩 비 맞은 낙옆처럼 악착같이 붙어 있어야 할 때도 있다.아니면 이번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적은 돈이라도 안 쓰고 안 먹든지 행동으로 옮길 타이밍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주변에선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공중이다. 어디 그뿐인가.몸이 유일한 최대 자산이라며 마라톤이나 전국 명산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가하면 정신 건강을 위해 정신과 병원이나 요가 및 에어로빅 학원을 찾는 사람도 제법 눈에 띈다. 아예 '짠테크'에 도전장을 낸 사람도 내 주변엔 상당하다. 나름대로 불황 스트레스를 이겨내느라 그야말로 안절부절이다.이번 주말에 볼링장에서 만난 ‘까까머리’ 초등학교 친구들의 고민들은 실로 다양했다.

 

# 지방 건설사 만년 총무부장인 친구는 오래 전부터 회사 일이 끝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과거 유명 양복점 재단사 출신이 운영중인 세탁소에 들리곤 한다. 여차하면 호주로 이민을 가기 위해서다. 오랜 고민 끝에 겨우 결정을 내린 것이 세탁 기술이었다. 자녀들이 호주에서 유학중이라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서 홈스테이와 세탁소를 동시에 경영할 생각이다.그래서 친구는 요즘 회사를 나가지 않는 주말엔 아예 세탁소에서 눌러 앉아 잔일부터 간단한 기술까지 익히느라 한창이다.왜냐하면 드디어 때가 왔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난해 연말 회사로부터 "명예 퇴직금을 미리 받고 나가든지,아니면 강제 구조조정 후보에 오를 것인지 선택하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원 감축안 이었다. 이 통보를 받자마자 당장 때려치고 이민을 가고 싶었지만 아직 세탁 기술을 완전히 습득하지 않은 터라 1년만 미루기로 했다.앞으로 회사에 살아남아 눈치나 보느라 마음 고생을 하느니 몸으로 때울지언정 높은 임금을 받는 게 낫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 의약품 유통회사에서 영업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송이사는 지난해 투잡족이 됐다. 주위에선 "번듯한 직장이 있는데 왜 무리하느냐"고 말렸지만 어차피 50대 중후반에 직장 문을 나서는 선배들을 보고 미리 준비하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그래서 선택한 업종은 프랜차이즈 선술집.직장 근처에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아서 무리하게 가게를 열었다.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인근 가게로 가서 오후 11시 넘게까지 서빙을 하고 카운터도 지키면서 악착같이 일했다. 그런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결국 그는 일주일에 한 번은 정신과 병원에 가야만 했다.

 

거액을 들여 시작한 선술집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회사 영업 실적이 점점 줄었다.동시에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런 그에게 최근 고민 하나가 더 생겼다. 대출금을 회수할 생각에 회사를 다니는 동안 틈틈이 사놨던 모 제약사 주식이 기술이전에 관련해 늑장 공시를 한 탓에 엄청난 손해를 봐야만 했다.다가올 구조조정과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금 상환 문제로 낮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지경이다.

 

# 건축자재로 유명한 중견 기업에 다니고 있는 최공장장은 얼마 전 임원 인사에서 또 물을 먹었다. 생산 공장에서 고참 선배로서 자존심은 물론 상했지만 내심 그는 기뻤다. 회사를 더 오래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초에 입사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임원이 된 친구는 올해 초 회사를 나갔고 얼마 전에도 승진 1년도 안돼서 부하직원의 비리로 옷을 벗은 선배도 있었다. 정작 임원이 되면 급여와 성과급이 확연히 달라지지만 신분이 계약직으로 바뀌는 바람에 언제든지 정리될 수 있어 회사에 불만도 제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후배들에게 눈치가 보여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부장은 쉽게 잘리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만 했다.

 

요즘 분위기를 봐서는 당장 임원으로 승진하지 않고 직급 정년을 꽉 채운뒤 맨 나중에 임원으로 퇴사하는 선배들이 마냥 부럽다.그렇다고 부장이란 타이틀이 그렇게 안심할 자리는 아니다. 언제 희망퇴직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급적 임원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려고 애를 쓴다. 연월차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전산휴가로 대체한다. 오히려 사내 전산망을 통해 월차나 연차를 사용한다고 보고한 뒤 주말에 출근한 적도 여러 번이다. 아직까지 확실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든 회사에 바짝 엎드려 있어야 하는 현 상황이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 경정비 업체를 운영중인 박사장은 유리지갑인 월급쟁이의 심정을 얼마나 알까.이 친구의 관심은 온통 아끼고 덜 쓰는데 목숨을 건다. 지금과 같은 시장 침체기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보다는 무조건 절약이 최고라는 판단에서다.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퇴근후 동료들과 한 잔은 자제한지 꽤나 됐다. 가족과의 비싼 외식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자가용 이용도 줄이고 왠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수 년째 경기가 워낙 안 좋은데다 차량 정비건수 마저 줄어든 탓에 실질 수입이 줄어서 무조건 아끼는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최근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매주 5000원을 들여 로또복권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평소 로또를 구입하는 정비 기사들에게 "확률이 그렇게 낮은 곳에 1000원이라도 쓰는 게 아깝다"고 비아냥대던 그였다.하지만 이제는 "10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라며 로또를 치켜 세운다. 그만의 작은 사치, 다름아닌 불황 스트레스를 날리는 해결책인 셈이다.

 

# 나 같은 촌놈들이 사는 방식들을 정리하자면 대충 이랬다.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공통점이 있다면 조만간 안정된 직장에서 나와 진검승부를 걸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요즘 미국 트럼프 정부의 금리 인상건도 그렇고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지만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아무리 평균수명이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한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는 특히 중요한 시점이다.어쩌면 작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은 피하고 때론 어떤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지금 당장이라도 흰 백지를 펼쳐놓고 학창시절에 지겹게 들었던 스왓(SWOT) 분석으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촘촘하게 파악해야 한다.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문제를 놓고 절박한 심정으로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결국 장사든 사업이든 간에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파트너들과 함께 하는 동업(同業) 관계라는 점이다. 주변에서 성공한 사업가들을 관찰해 보면 초라하게 시작한 사업을 가족의 일로 끝내 만들었다. 적극적으로 사업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잠재적 고객을 이웃처럼 섬긴 결과였다.이는 그들이 살면서 오랫동안 좋고 나쁜 고객 서비스를 몸소 겪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산전수전 겪었지만 본업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애오라지 끈기 있게 버텨냈다. 이 대목에서 확실한 건 무슨 사업이든간에 상품과 서비스를 단순화해 품질과 신뢰로 승부했다는 것이다.나이는 창업하는 데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창업한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인생의 지혜는 물론 다른 혜택들까지 얻는다.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점점 더 길어지는 추세다. 속도는 느리지만 추진력과 실행 가능한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면 비록 자본금이 적더라도 이 또한 어떠랴.창업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시점은 나의 머리가 회색이 된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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