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입력 2017-03-02 09:24 수정 2017-03-02 09:24
# 낼 모레면 개구리나 도롱뇽 알을 먹으면 허리가 낫는다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는 경칩(驚蟄)이다.주말 날씨가 따뜻한 나머지 초목의 싹이 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마치 땅위로 나오려고 꿈틀거릴 정도였다.금강 휴게소 주변엔 봄 기운을 만끽하러 나온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려는 운전자들로 북적거렸다.가업(家業)인 창호업체를 승계받아 수 년째 운영중인 선배랑 강 주변에서 나름대로 폼을 잡고선 괜시리 스마트폰 셔터만 눌러댔다.한참동안 산책을 했더니 왠지 출출해지자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을 향해 선배의 소맷자락을 잡았다.이 곳에 오면 왠지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이 곳의 별미는 주인이 직접 잡은 물고기로 요리한 도리뱅뱅이와 빙어튀김, 민물 매운탕이 역시 최고다.인심좋은 주인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로 오랜 단골집이었다.낡고 오래된 TV에서는 국정농단 관련 인물이 연신 오버랩되곤 했지만 취기가 오른 손님들은 거의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드디어 얼큰한 매운탕 국물이 나오자 이 대목에서 소주 한잔이 빠질 수가 없었다.

평소 절대 긍정의 아이콘인 선배가 느닷없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다름이 아니라 최근 동생 제수씨에게 폐암말기 진단이 나오는 바람에 집안이 뒤숭숭하다는 것이었다.사실 제수씨는 조상이 도왔는지 재물 운이 좋아서 제주도와 세종시 부동산을 사는 족족 천정부지로 상승한 탓에 내심 집안 식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직업도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어서 워낙 안정적인데가 남편 역시 얼마 전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해 거액의 퇴직금도 두둑히 챙겼다.게다가 앞으로 두 사람이 받을 연금만 합쳐도 노후 걱정따윈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평소에 씀씀이 역시 커서 부모 형제들에게도 후한 점수까지 받았다.그런데 느닷없이 벼락같은 소리를 듣게 되니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금은 매달 500만원을 내고 시골에 있는 암환자들을 위한 공동 치유시설에 들어갔단다.어쩌다가 하필이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 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며 소줏잔을 연신 비운다.퇴근후엔 요가나 헬스로 건강관리도 평소 잘했던 제수씨였던 탓에 충격은 더욱 컸다.아무튼 사람 팔자라는 게 지금 당장 한치 앞도 모르니 참으로 가슴 답답할 뿐이다.

#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독 가스실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보아야만 했다. 위젤은 다른 수용소 네 곳을 끌려 다니다가 홀로 살아 남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프랑스의 고아원에서 수 년간 생활하다가 지난 1949년 소르본 대학교에서 공부를 한뒤 프랑스 신문 <라르슈>의 기자가 됐다. 그는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은 채 ‘히키코모리 병’(방이나 집 같은 특정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은 현상)를 겪어야만 했다. 나치도 싫었고 세상도 싫어서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점점 고립된 삶을 살았다.그 때 위젤의 인생을 바꾼 한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지난 195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수아 모리악(Francois Moriac, 1885~1970)이었다. 모리악은 위젤에게 과거의 아픈 경험을 되살려 글을 쓰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동료 유대인들을 절대로 잊지 말고 인류사에 다시는 똑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홀로 코스트 경험담을 소설로 쓰라고 권했다.

 

그 날 이후로 위젤은 뭔가에 홀린 듯이 <밤(Night)>이라는 소설을 단숨에 써내려 갔다.보기만 해도 흉측한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면서 한 소년은 절망한다. “이제야 쉴 수 있다. 흰 눈으로 덮힌 들판은 우리에게 따뜻한 카펫과 같았고 소중한 보금자리다. 내 뒤에서 누가 묻는 소리가 들린다.결국 신은 어디에 있는가? 내 안의 목소리가 대답한 소리가 들린다. 신이 어디에 있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나중에 위젤은 미국의 유대인 학살 기념회 의장이 됐고 나중엔 핵전쟁 방지를 비롯해 인종차별 폐지와 세계평화 운동 등에 남은 열정을 쏟았다.드디어 그는 지난 1986년 폭력 및 억압과 인종차별과의 투쟁활동이 인정돼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위젤은 과거의 상처가 워낙 컸기 때문에 세상 소식과 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다.그러나 그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끝에 위대한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가 되었으며 끝내 ‘히키코모리 병’을 극복하고 영광스런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한마디로 인간승리였다.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 잭 캔필드는 뉴욕 타임지에 무려 190주 연속 베스트 셀러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 41개 언어로 번역돼 1억권 이상 팔렸다.닭고기 수프는 미국에서는 자녀가 감기나 몸살이 났을때 평소에 엄마가 끓여주는 음식이다.수프가 지치고 힘든 영혼에게는 매우 든든한 보양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술 주정뱅이를 상대로 무력으로 해결하려 했던 한 젊은이가 대화로 마음을 녹여낸 노인을 보고 감동한 얘기를 비롯해 장애가 있는 소년이 장애가 있어 팔리지 못하는 강아지를 구입한 이야기며 아버지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자 자살을 생각했던 아들이 다시 희망을 갖게 된 사연 등등 가슴뭉클한 스토리들로 구성됐다.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위안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 성장하면서 가난 때문에 상처를 겪었다면 이제는 배고픈 이웃들을 치유하고 도와줄 사명이 있다.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로부터 배신을 경험한 쓰라린 상처가 있다면 그것을 가슴에 품고 평생 원망하고 살게 아니라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치유자가 돼야 현명한 법이다.선배 제수씨가 암 투병에서 혹시 낫는다면 혼자서 감사하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을 찾아가서 ‘나는 이렇게 병에서 낫음을 받았습니다. 당신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라는 소망이 담긴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치유자가 되길 바란다.상처 때문에 자기 운명을 비관하거나 원망해서는 더더욱 안된다.특히 상처 입힌 사람들을 증오한다든지 아니면 복수심에 불타서 앙갚음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나의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는 지혜로 살려 적극적인 치유자가 될 때 지혜롭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아픔을 상처 자체로 두지 말고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인생을 사는 동안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어쩌면 그 상처는 오히려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왜냐하면 상처의 아픔을 희망으로 바꾸고 눈물의 진주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분명한 것은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그들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데다 꺼져가는 등불 역시 절대로 끄지도 않는다. 오히려 진리로 도리를 베풀면서 쇠하지 않고 결코 낙담하지도 않는다.비록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치유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약한 자들에게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은 결국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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