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나고 돈났지,돈나고 사람났나

입력 2017-02-09 09:26 수정 2017-02-09 09:26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명당 부동산 최사장에게서 부고장이 날라왔다.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밝혀졌는데 이른 새벽 조깅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영영 일어나질 못했다.지방 강의를 위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도중 사망소식을 핸드폰 문자로 받고나서 오후 늦게 되서야 겨우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그런데 평소 같으면 북적거려야 할 빈소가 휑하니 시베리아 벌판처럼 조문객이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멍하니 혼자서 때늦은 끼니를 때우려던 참에 같은 사무실에서 동업자로 일하던 김사장이 홀로 서성거린다.말없이 내 자리에 앉더니 소줏병을 힘없이 기울인다.사실 최사장은 업계에서 누구나 손꼽는 알부자였다.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임대료가 무려 2000만원을 훌쩍 넘겼다.현재 소유하고 있는 건물만 6채 정도니까 부동산 가치로만 따져도 자그만치 100억대 부자였다.대부분 입지가 좋은 노른자위만 골라 3층 미만으로 건축해 공실이라고 해봤자 거의 제로에 가까워 주변 건물주들의 부러움을 샀다.

 

최근엔 팬션 바람이 불자 아는 건축업자를 불러 저렴하게 신축한뒤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도 쏠쏠하게 챙겼다.게다가 소유중인 건물과 토지를 하나 둘씩 아들과 딸 자녀 명의로 이전하는 작업도 세무사를 통해 이미 끝냈다.하지만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가뜩이나 어려워진 불경기때문에 장사가 안돼 울상인 세입자들에게 임대료를 대폭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그래서 건물에 입주한 임차인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결국 기습 인상된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 줄이어 인근으로 이사하면서 좋지 않은 소문이 순식간에 확 퍼졌다.하지만 얼굴이 워낙 두껍기로 소문난 최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입자를 구했으며 임대료 역시 껑충 올랐다.부동산 사무실을 열기 전까지 그는 동네 방앗간을 하면서 지독하게 번 돈으로 작은 슈퍼를 시작하면서 돈 맛을 알게 됐다.그뒤로 자식 명의로 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벽에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닥치는대로 주변 땅을 사모았다.

 

당시만 해도 행정수도 발표로 짧은 기간내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졸지에 엄청난 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그러나 순박한 동네 인심을 잃게 된 최사장은 오로지 돈만 쫒는 냉혈동물로 오래 전부터 치부되고 있었다.결국 오늘 같은 비극을 맞게 됐고 조문객들로 북적거려야 할 장례식장마저 썰렁할 정도니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마저 든다.내 앞 자리에서 혼자서 말없이 술을 따라 마시던 동업자 김사장이 한술 더 뜬다.최근 바람둥이 아들이 아버지가 물려준 20억짜리 팬션을 담보로 주상복합 아파트 시행사업을 하다가 잘못돼서 경매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알려줬다.얼마되지 않은 매월 관리비는 물론 상가 임대료가 단 하루라도 연체되면 여지없이 달려와서 세입자들에게 다짜고짜 큰소리 쳤던 자린고비 최사장이었다.하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죽은 마당에 제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 본들 모두 허망하고 부질없어 보인다.

 

1935년생 대발이 아버지 탤런트 이순재는 관객들을 향해서 지독하게 인간에 대한 공부를 주문한다. 그는 윌리 로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대의(大義)를 위해 장엄하게 죽는 사람은 영웅이 아니고 악인도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 의한 피해자인 동시에 욕망에 의해 자신을 분열하는 가해자다. 따라서 그들은 곧 우리다"

 

"저는 이 회사에서 무려 30여년을 일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오렌지 속만 파먹고 껍질은 버릴 생각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윌리 로먼은 이렇게 외친다. 세일즈맨인 그는 자신을 해고하려는 사장 하워드에게 일주일에 50달러 일감이라도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사장은 거액으로 장만한 최신 녹음기에 몰두할 뿐 그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윌리는 알량한 자존심을 일단 접고서 이웃집 친구인 찰리에게서 돈을 빌린다. 어렵게 대여한 150달러를 손에 쥐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정말 황당하네. 바쁘게 살다보니 결국 시간이 흘러 남는 거라곤….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네...“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가 1949년에 쓴 희곡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 연극 비평가상, 앙투아네트 페리상 등 3대 연극상을 휩쓸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지난 1930년대 경제 공황기를 배경으로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지친 삶을 통해서 미국 사회에 퍼져 있는 부조리를 풀어 나간다는 내용이다.

지난 1920년대만 해도 당시 윌리 로먼은 성공한 샐러리 맨이었다. 주당 수수료만 170달러가 넘을 정도여서 주변에서 부러움을 사는 영업의 달인이었다. 거액을 들여 장만한 새 집에는 촉망 받는 미식축구 선수인 큰 아들을 비롯해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둘째 아들과 지혜로운 아내 모두 셋이 단란하게 살았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 닥친 경제 대공황으로 윌리 로먼의 아메리칸 드림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나이 60세를 훌쩍 넘긴 그에게 남은 거라곤 할부가 끝나지 않은 낡은 집을 비롯해 정기적으로 수리해야 하는 오래된 고물 냉장고와 부모의 당초 기대를 한참 빗나간 아들만 달랑 남았다.아서 밀러는 이 작품 속에 자신의 경험을 철저하게 녹여냈다.그 역시 경제 대공황기 봉제공장 문을 닫은 아버지를 대신해 접시 닦기는 물론 빵 배달까지 굿은 일을 도맡아 생계와 학업을 병행했던 터였다. 초연을 한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작품의 메시지는 지금도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게 컸다. 큰아들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매일 아침마다 콩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2주짜리 휴가 하나 얻으려면 나머지 350일 동안 죽어라고 일만 하라고? 난 더 이상 못해..."

 

사실 아서 밀러는 사회와 개인의 갈등 보다는 인간 내면의 모순을 표현하고 싶었다. 극중 윌리 로먼은 현실과 과거는 물론이고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신 분열증에 걸린다. 그는 지옥 같은 현재가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과거의 행복으로 도피하기 일쑤다.결국 출장간 곳에서 바람을 피우고 아들의 도둑질을 부추기던 과거의 자신을 보며 무척 괴로워한다. 이렇듯 작품은 절대적 모순으로 가득찬 인간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이를 위해 연출자는 언어는 물론 무대와 음악을 총동원했다.분명한 건 원작의 중심은 언어였다는 점이다.관객은 윌리 로먼이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리는 대사를 통해 그의 내면을 이해하려고 했다.작은 집을 둘러싼 거대한 구조물은 윌리 로먼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그의 정신 분열이 심해 질수록 오른쪽 천장에선 그의 허상 덩어리를 상징하는 6m 크기의 오브제가 흔들린다. 결국 그가 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 끝내 자동차 사고로 자신의 목숨과 바꿀 때 그 오브제는 끝내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 윌리의 처지 역시 물론 딱하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지난해 모 증권사 직원이 과도한 영업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문중 선산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이 뒤늦게 확인됐다.죽은 직원은 유일한 소망이었던 정규직이 되기 위해 막대한 빚까지 졌다.결국 위탁 매매를 시도하다 그 손실을 만회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금리 사채까지 빌려서 약정(約定)에 내몰리는 과도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한 셈이었다. 이러한 실적 강요는 증권가에선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전국에 각 직원들의 약정 규모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영업 직원들에겐 눈엣가시다.자살한 직원은 이미 8억원쯤 손실을 본데다 이미 통장잔고는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시절부터 마이너스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개 증권사 직원의 자살은 일간지 사회면 기사에 종종 보도가 되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다. 더 이상 증권 노동자들이 출혈 경쟁과 약정의 노예가 되서는 안된다.게다가 보험사들도 요즘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 보험금 지급 논란으로 최근에 시끄럽다. 결국 해를 넘기면서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보험사는 자살 보험금을 위로금 형식으로 지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강도는 더욱 거셌다.특히 아직 지급을 미룬 메이저 보험사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의견을 밝혀 소비자 분노를 부채질하고 말았다.오죽했으면 자살까지 시도 했을까 이해도 해보련만 그렇다고 정작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애매모호한 약관 앞에서 해석 운운하는 것은 왠지 이치에 맞는 일이 아닌 듯 싶다.

 

▷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 시대 아버지들은 윌리 로먼처럼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젖먹던 힘까지 쏟아냈다.오로지 성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안가리고 닥치는 대로 일한 결과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무정한 세월과 잔인한 사회는 어느덧 늙고 지친 가장들을 마구 내동댕이쳤다. 특히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부모에게 쏘아 부치는 경멸의 눈빛까지 이젠 두렵다. 그렇다고 정(情)에 약한 우리 아버지들은 억지스런 미소를 머금은 채 반응조차 냉담한 소비자를 상대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신성한 밥벌이를 하기 위해 무조건 팔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에 놓여 있다. 당연하게도 거절에 거절이 이어지지만 세일즈 현장에서 결코 물러설 수는 없다. 도망치는 순간 가족이 굶어 죽거나 적어도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어쩌면 나와 가족들이 배불리 먹고 산다는 것은 결국은 무언가를 남에게 팔아야 한다고 말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그렇기 때문에 세일즈 현장은 철저하게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가장 큰 실험실이다.엄청 살벌한 현장에 우리 아버지들은 오랫동안 불안한 마음을 갖고 서성거렸으며 동시에 중심마저 흔들리기 일쑤였다.하지만 애환의 흔적이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사실을 자식들은 전혀 모른다.

 

정작 삶의 목표를 잃은 윌리가 마지막 버팀목으로 삼고 있던 두 아들에게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자 그는 결국 교통사고를 가장한 자살을 선택한다.지금 그에게 닥쳐있는 현실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 보다는 보험금 2만 달러와 자신의 목숨을 바꾸어 그 돈이라도 가족에게 남겨주는 것이 더 낫다는 선택이었다.오늘도 밤 늦도록 힘없는 사내들이 유일한 안식처인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세일즈를 해본 나같은 우리 아버지들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겨우 살아남아 반갑게 외쳐본다.“여보, 나요 나…. ” 쉰 목소리가 한참동안 집안 실내에서 공허하게 울리지만 내내 정적만 흐른다.가족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뜨겁게 맞이해 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터트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심정인데 꾹꾹 참는다.세상에서 가장 초조하고 괴로운 이 사내들을 당장 어찌하란 말인가.허허.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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