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앞에 왕따 당한 난 무명 작가다

입력 2017-02-01 10:22 수정 2017-02-01 10:22
▷ 최근 출판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처럼 떠돌던 신간도서 베스트 셀러 순위 조작 사건이 실제로 드러났다.시중 서점의 책을 단기간내 사재기한 결과 판매 순위를 조작한 출판사 직원과 마케팅 업자가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그 일행들은 수 년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유명 온라인 서점에서 책 11종 1만2000권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특히 이번 사건에는 통신사의 무료 도서 증정 이벤트를 빌미로 확보한 당첨자 정보를 악용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문광고 같은 기존의 홍보 방법을 선택해봤자 비용만 많이 들었기 때문이란다.그래서 베스트 셀러 순위 상승에 별로 영향을 줄 수 없는 도서 사재기라는 노림수를 구사한 것이다.이번 사재기한 책들의 판매대금 절반 가량은 출판사로 다시 회수되는 점을 노렸다. 그 결과 도서별로는 적게는 50권에서 많게는 5000여권까지 사재기에 동원됐다. 심지어 최근 석달간 5000여권을 구입한 자기 계발서는 베스트 셀러 순위 248위에서 무려 3위까지 급상승했다. 물론 사재기가 마무리된 이후 순위는 다시 138위로 곤두박질쳤다.이번 베스트 셀러 조작 사건은 출판사 직원들이 서점을 돌며 책을 사들이거나 지인 계정으로 사재기를 하던 기존 방법과 달랐다.전문적인 마케팅 업체를 동원한 신종 수법이어서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소설가이자 시인인 장정일은 지난해 연말 지방 강연에서 ‘좋은 책’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나의 필요와 선택에 의한 것이며 동시에 본인에게 가장 절실한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좋은 책’은 사람마다 아니면 보는 시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일례로 서울대에서 매년 발표하는 권장도서 100권은 당신에게 반드시 ‘좋은 책’이 될 수는 없지요.차라리 자신만의 책 목록을 만들어 그것을 읽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결국 ‘좋은 책’이란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에 너에게 ‘좋은 책’이 반드시 나에게 ‘좋은 책’일 수 없고 반면에 나에게 최고인 책 역시 너에게도 최고의 책이 될 수 없어요. 흔히 베스트 셀러를 악서(惡書)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베스트 셀러가 왜 나쁠까요? 무려 50만명이 읽고 심지어 100만명이나 읽는데 다시 말해서 너도 읽으니 나도 따라 읽는 책이란 뜻의 베스트 셀러는 나쁜 책일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제가 방금 말했듯이 너에게 ‘좋은 책’이 나에게 ‘좋은 책’일 수 없고 나에게 최고인 책이 너에게도 최고의 책이 될 수 없는 게 맞다면 반드시 50만권이나 100만권이 팔린 책이 내게도 좋을 리는 없다는 거죠. 다시 말해서 그건 나의 필요와 선택에서 벗어난 무자각적인 유행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정일은 예전처럼 독서를 권장하는 글들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는단다.왜냐하면 짜투리 독서를 권유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란다.그는 이 대목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저는 짜투리 독서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그건 심심풀이지 진정한 독서로 볼 수 없지요. 글 쓰는 작가가 어떻게 대충 5분 또는 10분 분량의 글을 썼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글 쓰는 사람의 호흡에 맞춰서 읽어야 합니다. 짜투리 독서는 가장 하류(下流)의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자투리 독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짜 책을 제대로 읽기나 했는지 진짜 의문이 들거든요. 물론 정말로 시간이 없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읽어야겠지요. 어쨌든 우선 책을 새로 구입한뒤 읽겠다고 손에 잡았으면 숨가쁘게 바로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어서 밤새 읽었다’ 라든가 ‘숨도 쉬지 않고 읽었다’ 아니면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는 식의 이런 독서를 했다면 자신의 인생은 그만큼 풍부해집니다. 특히 흔들리는 청춘의 경우 그런 경험을 얼마만큼 자주 했느냐에 따라 자아가 완성된다고 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참 삭막한 청춘을 보냈다고 볼 수 있지요. 바로 그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한 단계 비상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따라서 새로 책을 읽기 시작했거나 한번에 읽기로 결심했다면 최소한 적어도 사흘만에 읽기를 끝낸다면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작가 장정일은 시중에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일명 ‘개런티(guarantee)'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한다.“만약 저자와 출판사간 계약에 있어서 저자가 최소한 보증해야 할 판매 부수가 있지요.그래서 저자 입장에서 판매가 쉽지 않을 경우 그 책들을 자기 부담으로 지인들에게 선물할 수도 있을 겁니다. 본인의 경우는 출판사에서 먼저 출판 제의를 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개런티‘ 문제는 없지만 이렇게 ’개런티‘ 계약 형태도 상당히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책 출판이 많이 된 책, 소위 베스트 셀러가 항상 좋은 책인지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은 물론 동의하겠지만 저자가 아닌 독자로서 수백 권의 책을 읽은 경험으로 비춰보건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요. 특히 국내 독자의 경우 특정 분야에 쏠리는 현상이 무척 심합니다. 베스트 셀러나 스테디 셀러 같은 책 특히 이슈가 되는 책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죠. 최근에 알파고가 큰 이슈가 되었을 때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됐어요. 심지어 출판사의 마케팅에 의해 광고나 홍보 채널에 노출되는 경우 책 자체의 콘텐츠 보다 자본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작가 장정일은 글 쓰는 사람들을 향하여 산업 자본 앞에 당당해질 것을 힘주어 주문한다 “좋은 책과 잘 팔리는 책은 다른 것 같아요.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아 아예 묻히는 책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독자 스스로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주위 지인에게 입소문으로 퍼져서 알려지지 않는 이상 힘들죠.유명한 종교인을 비롯해 연예인과 정치인이 쓴 책이나 시기적으로 이슈가 되는 단행본 또는 출판사 마케팅이 강한 도서 중심으로 베스트 셀러가 될 수 밖에 없지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유수의 출판사나 대형서점도 어쩔 수 없이 좋은 책보다는 잘 팔리는 책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또한 독자의 판단이며 독자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니까요“

 

▷ 홍대 근처에서 출판 기획 사업을 한다는 노련한 K대표를 만난 것은 지난해 늦여름쯤으로 기억된다.나이는 끝내 밝히지 않은채 출판 구력만 수십 년 됐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자랑질이다.다짜고짜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애 취급하듯 초반부터 싹 무시한다.한마디로 일반 재테크관련 책들은 판매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출판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부동산 경공매 분야는 일부 고정 독자층이 있는 관계로 그나마 적정 부수의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일반 재테크 분야는 도통 인기가 없다면서 아예 선을 긋는다.재테크 책을 여러 권 출간한 경험이 있는 연예인 H라면 몰라도 대중적 인지도가 없는 저자의 경우는 돈이 절대 필요하단다.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나는 왜 하필 H냐고 따져 묻자 고정 팬이 있기 때문에 책이 출간 되자마자 사줄 수 있는 구매력(buying power)이 있다는 답변이었다.쉽게 말해서 책 속의 콘텐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다.이 대목에서 분명한 건 저자가 과연 누구냐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항목이란다.신문과 방송같은 언론매체에서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은 생소한 이름의 저자는 출판 시장에선 절대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면서 타이르듯 훈계한다.어쩌다가 무명(無名) 작가가 스타 반열에 편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확률은 상당히 적다는 말도 함께 들려준다.

 

심지어 현직 대학교수 출신 저자들도 편차가 심한 탓에 대중적 인기가 높은 교수들 책만 팔리는 게 현실이다.게다가 종합 일간지 기자들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이 아니고 경제부 특히 기업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쓴 책들만 그나마 팔릴 수 있다는 거였다.그 이유를 알고 보면 출입처인 각 대기업에서 어쩔 수 없이(?) 일정 부수를 구매해주는 관행탓에 출판사의 손익 분기점을 확실하게 넘길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결국 대중적인 연예인을 비롯해 현재 언론에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는 대학교수와 상당한 구매 파워를 가진 언론인과 인기 전업 작가들이 아니면 이름없는 작가들이 책을 판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책들의 경우 일부를 제외하곤 콘텐츠의 진정성이 의심될 정도다.어디 그뿐인가.바쁜 시간을 일부러 쪼개 강연장에 가보면 대중적 인기와는 달리 실망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서글픈 현실이 출판계가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까 싶다.어쨋든 책을 출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엄청난 사비를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결국 돈의 문제다.주변에선 예비 정치인이라든가 아니면 자신의 사업을 홍보하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개런티’를 기꺼이 지불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물론 돈만 있으면 책도 넘치게 찍어내고 유통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좀전에 말한 것처럼 책 속에 들어갈 내용따윈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비용만 넉넉하게 지불하면 얼마든지 대신해서 글 써주는 작가들까지 동원할 수 있다.게다가 보너스라도 건네주기라도 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다.세상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흘러 왔는지 참으로 착잡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정유년 새해가 밝았지만 이 시각에도 차디찬 방에서 칠흑같은 밤을 실끝같은 등불로 지키고 있는 이 시대 무명 작가들에게 부탁하고 싶다.세찬 바람이 불어올 지언정 금방 꼬부라지는 불꽃이라도 절대로 꺼트리지 말라고.언젠가 늦더라도 떳떳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 여태껏 잔인하게 살아냈다는 사실을 곧은 필력으로 보여주길 진정 바란다.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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