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복(福)있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

▷ “영화 <국제시장> 에서 덕수가 ‘아버지, 저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며 우는 대목이 나올때 참 많이 울었죠. 덕수의 고백이 부모님께 드리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한국 사회가 그래도 인간적인 것은 묵묵히 남을 위해 살아가는 덕수 같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대형 사고와 씁쓸한 소식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는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며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나보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한 삶”이라는 말하는 그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부산에서 출판 유통업을 운영할 때 안회장의 나이는 마흔이었다.전국에서 실적 1위를 달리던 그는 차츰 사업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난생 처음 건강검진을 받게 됐다. 위내시경 촬영을 마치고 의사가 건넨 심상치 않은 말 한마디 때문에 결과를 담대하게 기다려야만 했다.당시 그는 소싯적에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일을 비롯해 6.25 피난 길에 일어났던 아군과 적군의 치열한 총격전 가운데 행주나루 둑에서 밤을 지새우던 일들이 불현듯 떠올랐단다.사실 그는 여태껏 온전히 살아온 것만으로도 추호의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곧 검진 결과가 나오면 즉시 장례 절차를 위해서 그동안 벌여놨던 사업을 정리 할려고 맘을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딴판으로 검진 결과가 나왔다.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건강하다는 판정이었다. 그날부터 안회장은 덤으로 생명이 연장된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사업하는 내내 부침도 많았지만 생각만큼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돈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하지만 그럴수록 어차피 덤으로 받은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기쁜 마음뿐 이었단다. 오히려 그 뒤부터는 매사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매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업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단다.얼마 전에는 무려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안회장은 미국의 철학자이며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글 <성공이란 무엇인가>에서 ‘자신이 한때 이 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문장을 가슴에 품고 여태껏 사업을 해왔단다.사실 독실한 기독교 장로이자 나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봉사 활동중인 그는 평소에 강조하는 말이 있다.“’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알리지 않고 익명으로 선행을 베푸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주변에 알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어서 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보입니다.하지만 기부문화도 이젠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작은 카페를 2년간 운영하면서 발생한 수익금의 대부분을 후원해 왔는데 이렇게까지 나눔 활동이 커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다만 나중에 1억원 기부라는 꿈을 가졌었는데 5년 만에 그 꿈을 이루게 됐네요. 당시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아깝다거나 욕심이 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죠”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 놓는 나의 고교 후배인 황대표는 “사실 부모님이나 가족들마저 이 사실을 잘 모른다”며 멋쩍게 웃는다.

 

“TV에서 어려운 형편에 놓인 아이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나오면 그냥 못 지나친다”는 그는 “어린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앞으로 얼마나 훌륭하게 성장할지 누구도 모르는데 지금 당장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못 배우고 못 먹는 걸 보면 너무도 안쓰럽다”며 속상해 한다. 수 년째 ‘세이브 더 칠드런’, ‘굿 네이버스’ 등의 기관을 통해 어린 아이들을 후원해 오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이 같은 마음이란다.

 

황대표에게 “나눔도 좋지만 당장은 사업을 위한 자금 마련과 투자에 더 신경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솔직히 돈만 생각하면 아직도 대출이 많은 편이죠. 당장의 시설 투자만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라며 담대하게 털어 놓는다.그는 “나눔과 봉사를 위해 무리하게 큰 돈을 당장 내놓는 것도 좋지만 사회에서 받은 이익금의 일부를 적립한뒤 다시 되돌려주고 싶어요.다만 공대 출신으로써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사업에서 분수를 지키며 노력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서지만 정작 자신의 차림새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다 못해 무관심할 정도다. 수년 전에 산 가을 양복을 때아닌 한여름에도 입는 단벌 신사다 보니 합쳐봐야 달랑 양복 한 벌, 와이셔츠 한 장, 넥타이 2개 뿐이다.그나마 항상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 양복은 일종의 행사용으로 개업식 같은 아주 특별할 때만 입는다는 그는 껄껄대며 웃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타고 다니는 차량이 궁금해졌다. 고급 차를 타고 다니지 않냐고 묻자 “기계 설치를 위해 지방 출장이 워낙 많아서 이동거리가 상당한 편이죠. 게다가 장비도 많이 실어야 하는 탓에 고급차는 아예 꿈도 못꾼다”는 답만 싱겁게 돌아왔다.

 

“좋은 일을 많이 하려면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이 사내는 기계설비의 사후관리 업무를 하다 보니 퇴근하면 밤 12시가 넘는 것은 다반사란다.그래서 아직도 불혹인 나이에 미혼일 수 밖에 없는 그에게서 향후 계획에 대해서 물어봤다.“절대 싼 재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마진율이 결코 높지는 않죠.하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들에게 나쁜 제품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큰 돈은 못 벌어요.그렇다고 사업 확장에 대한 큰 욕심도 없지요.다만 내 일 열심히 잘 해서 기회되면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 특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좀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 입니다”

 

▷ 불교에서는 작은 선(善)이라도 좋으니 하루 한 가지씩 실천하라고 한다.겉으로 보기엔 작고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또는 남이 인정해 주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행(行)해야 한다고 말한다.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 가운데 질서를 가져온다고 한다.왜냐하면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거듭 일으켜 세워주기 때문이다.그렇치 않으면 늘 넘어지는 법이다.그것은 이웃을 향한 실천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 경전을 많이 봤다고 해서 아니면 법문을 많이 들었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란다.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룻 동안에 한 가지 착한 일을 듣거나 행할 수 있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것이다.늘상 시간을 내서라도 사람의 도리를 다 했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되씹어 봐야 한다.결국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덕(德)이 되는 행동을 했는가 또는 안 했는가에 따라서 그날 하루를 잘 살았는가 아니면 못 살았는가를 판가름 할 수 있다.여기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특히 나 같은 부류인 소심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치만 말이다.

 

연말이다. 지난 1일부터 구세군 자선냄비도 종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결국 기부는 학습이 아닌가 싶다.당장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되는 법인데 여간 쉽지가 않다.기부하려는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다든지 혹시 나중에 돈을 벌어서 하겠다며 계획을 미룬다면 큰 오산이다.내 자신이 직접 즐거움을 느껴야만 한다.결국 금액의 액수를 떠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예전에 기고했던 칼럼 가운데 이런 글들이 생각난다.‘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기에 기부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갖고 있기 때문에 기부할 뿐’이라는 소박한 말과 ‘돈 버는 것은 기술이요,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기부자의 메시지가 새삼 생각나는 세밑이다.이 대목에서 확실한 건 이번에 소개한 선한 이웃들 뿐만 아니라 익명의 수많은 기부자들처럼 복(福)있는 사람을 결국 당해 낼 재간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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