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공덕’을 쌓으면 정말 부자가 될까

▷ 증권사에서 명예 퇴직한 선배와 함께 지난 주말에 계룡산에 올랐다.평소에 워낙 체력관리를 나몰라라한 탓에 당초 목표지점인 남매탑까지 여러번 휴식을 가진 끝에 간신히 올랐다.탑 인근에서 인증 샷을 찍고 나서 서둘러 하산하고 보니까 때마침 점심 무렵이었다.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하자 끼니를 해결할 곳이 있다면서 선배의 소맷자락을 잡았다.영문도 모른채 끌려온 선배와 나는 작은 천막에서 허기진 배를 국수 한 그릇으로 달랬다.먹고 난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국수 국물이 천연재료만 사용해 사흘 동안을 우려낸 탓에 정말로 개운하고 담백했다.흰 면발도 후루룩 술술 잘 넘어갔지만 육수만큼은 한마디로 끝내줬다.후식으로 먹은 대추차 역시 향내가 가득했다.사실 이 곳은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선열들의 영령들을 위한 국립묘지를 찾는 유가족과 추모객들로 일년 내내 붐빈다. 현충관 인근에서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따뜻한 국수를 제공하는 작은 천막이 여러 개 설치돼 있었다.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국수 한 그릇이 제공되는 천막인 셈이었다.

 

우리 일행이 찾은 그날 역시 사찰에서 직접 건축해 기부 채납한 건물 안에는 여러 명의 봉사자들로 북적였다.한 보살님에게 얘기를 들어보니까 대충 이랬다.“지금부터 한 십 여년 전인 어느날, 아들을 이곳에 묻은 부모님의 서글픈 모습을 목격하면서 이곳에서 국수를 제공해야겠다고 스님이 작정했단다. 그날은 6·25로 전사한 선열을 위한 위령제가 열렸던 날이었단다. 그런데 점심 때가 됐지만 비도 많이 내리고 추운 날씨에 아들을 찾은 유가족들이 먹지도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목격한 스님이 국수 제공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한다.보살님은 쉬지도 않고 연신 말을 보탠다. “그래서 지난 4년 전부터 시작된 국수제공은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자비를 들여 시작했는데 일년 동안 제공되는 국수의 양은 무려 10만여 그릇이 훌쩍 넘고 돈으로 치면 생각보다 엄청난 비용이 지출된다”는 거였다.

사실 내가 이 천막에 들러 국수 공양을 하자고 주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최근에 고인이 된 장모님의 49재(四十九齋) 지내는 것과 연관이 있었다.불교를 믿는 집안인 탓에 자식들이 장례식을 마친뒤 인근 사찰에서 49재를 지내겠다는 것이었다.49재란 죽은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신사람을 위해 49일간 그 넋을 위로하고 명복을 빌어주는 것을 일컫는다.흔히들 사찰에서는 그 영혼이 극락세계로 가도록 스님이 염불로써 그 길을 안내하고 권유하고 인도하는 절차로 49일간 재를 올린다고 해서 49재라고 말한다.발목 신앙인 탓에 주일마다 교회를 빼먹기 일쑤인 나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삼우제를 비롯해 49재 또는 천도재니 하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둘째와 셋째 손위 처남 아주머니들과 함께 사찰로 동행하게 됐다. 49재를 지내기 위해 사찰로 갈 예정인데 나보고 가서 흥정을 해보란다.평소 알고 지냈던 지인이 근무하던 대학 병원인 탓에 장례식장 빈소 사용료를 약간 할인 받는 특혜(?)를 누렸다.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49재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라며 내가 함께 가서 협상을 해보라는 거였다.사실 그순간까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사실 그 사찰 주지 스님은 내가 직접 잘 몰랐지만 한 사람의 이름을 대면 적어도 모든 비용에서 얼마 만큼은 디스 카운트 해줄 거라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비교적 정갈하게 차려진 종무실에 들러 커피를 먹는 도중에 관계자로부터 49재에 대해 절차를 간략하게나마 들었다.드디어 기다리던 중요한 협상의 시간이 다가왔다.일주일에 한 번씩 그러니까 총 일곱 번에 걸쳐 지내는 제사 비용이 수 백만원이란다.당초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거액이었다.장난끼 많은 막내 손위처남 아주머니가 슬슬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드디어 적절한 타이밍이 왔다.종무사의 군더더기 없는 설명 도중에 울린 전화벨 틈을 타 결국 끼어들고 말았다.“일곱번 차례 비용치곤 생각보다 너무 비싼데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냐”며 조심스럽게 따져 물었다.그랬더니 갑자기 당황했는지 이렇게 말한다.49재를 지내는 비용은 얼마 안들지만 남는 비용만큼은 인근 군부대 장병들과 현충원에서 국수를 제공하는데 들어간다는 거였다.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 영가(靈駕)의 ‘공덕(公德)’이라는 점에서 절대로 아까워하지 말라는 얘기였다.사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고인의 ‘공덕’으로 인해 후손들이 잘될 거라고 하는데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구태여 그 자리에서 그 까짓거 50만원 정도 줄여봤자 어리석은 생각마저 들고 말았다.

 

그 순간 막내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눈치는 결국 내가 잘 아는 그 사람의 이름을 빨리 거명하라는 신호였다.어쩌다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됐는지 무척 당황스러웠다.평범한 사람들도 불특정 다수에게도 기부도 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도와 줄 판에 고인이 돼서 좋은 일 하겠다는데 당장 뜯어 말릴 명분이 없었다.내가 멈칫하는 순간에 기가막힌 타이밍이 흘렀고 결국 알려준 당초 금액으로 계약서에 사인하고 말았다.종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둘째 아주머니가 나를 보면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알고보니 평소 모든 일에 협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격을 잘 흥정할 줄 알았는데 못하는 것도 있네요”라면서 ”사실 본인 같았어도 제사 금액을 절대로 깎을 수 없는 상황이었네요”라면서 작은 손을 입에 갖다 대며 깔깔 웃는다.그 돈 몇 푼 아끼자고 덤볐다가 천하에 나쁜 놈이 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아무튼 49재 해프닝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선배랑 산행을 마친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진짜로 국수 공양을 하는지 내심 확인해 보고 싶었다.

 

▷ 선배에게 다짜고짜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를 그제서야 털어놨다.현충원의 초겨울 쌀쌀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마친뒤 때마침 장날인 인근 재래시장을 찾았다.앞으로 얼마 안되서 이곳에도 터미널과 함께 복합 쇼핑몰이 건축될 예정인데 이 풋풋하고 사람 냄새 나는 재래시장이 버텨낼 수 있을지 못내 아쉬웠다.언제나 그렇치만 젊은 사람들보단 나이 든 중년층과 노인들로 이날 역시 붐볐다.스마트 폰을 보니 오후 3시를 훌쩍 넘겼다.갑자기 배가 출출해졌다.그래서 30년 전통의 족발집을 찾았다.‘공덕 식당’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에 허름한 식당안 원형 테이블에는 사람들로 가득찼다.역시 식당은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왁자지껄 먹는 것이 뭐라고 해도 일품이다.남자 사장님은 한참이 지났지만 보이질 않는다.물어 보니까 시장입구 정형외과 병원에서 일주일째 입원 중이란다.얼마 전에 시장골목 계단을 내려오다 발이 겹 질러져서 넘어졌단다.

 

사실 알고보면 족발집 주인 부부는 골목 입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오면서 별로 욕심내지 않은 터라 별다른 부침이 없었다.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한때 주변에서 족발가게를 내달라며 많은 사람들이 성가시게 굴었던 시절이 있었다.그래서 힘든 사람들끼리 다같이 먹고 살자는 생각에 돈 한푼 안받고 기술전수를 해줬건만 기술을 배운뒤 가게를 여는 족족 얼마 못가서 망하고 말았다.주문했던 주전자 막걸리와 연탄 불에 구운 양념 미니 족발이 큰 접시에 야채와 함께 담겨져 나온다.“사장님, 요즘 장사는 어때요? 모 치킨 회사가 족발장사 한다고 난리인데 프랜차이즈 사업 안하셔요?”라고 슬쩍 물었다.“뭔 놈의 프랜차이즈여.요즘같은 불경기에 이렇게 얘들 키우고 밥먹고 살면 되는 거여.난 욕심 안 부려.오늘 팔다가 남은면 내일 팔면 되는거지.그저 무탈하고 우리 낭군 건강하면 되지 뭐.그리고 말이여 이곳이 명당이여,죽을 때까지 여길 안 떠날 겨”라며 안주인은 남의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사실 그의 말대로 이 자리는 명당 자리였다.왜 그런고 하니 수 년전 남자 사장님에게서 공짜로 기술을 배운뒤 전국 각지에서 거액을 들여 창업을 해봤지만 하나같이 신통치가 않았다.정확히 말하면 단 한 곳도 성공한 가게가 없었다.처음엔 조금 되는 듯 싶었다가도 결국 실패로 끝나곤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식자재 유통업체를 운영했던 친동생이 프랜차이즈 한다면서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들여 덤볐지만 결국 빚만 지고 말았다.그래서 말인데 그 부부가 이 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던 셈이었다.한마디로 이 곳이야말로 ‘도깨비 터’라는 결론을 내린 후였다.그래서 하늘이 내린 이 명당을 결코 떠날 수가 없었기에 비록 몇 개 안되는 테이블이지만 그나마 만족하며 장사를 하는 중이란다.사실 터도 그렇겠지만 그 주인 내외는 평소에 워낙 좋은 일을 많이 한 탓에 노인들은 물론 시장 상인들에게 칭찬이 자자했다.요즘처럼 김장철이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을 해서 노인정은 물론이고 주민센터에 건네는 것은 기본이다.요즘같은 세상에 외상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밀린 돈만 받아도 작은 아파트 한 채는 사고 남았을 거라며 껄껄 웃는 낙천적인 부부였다.아무튼 작은 물질을 비롯해 시간이든 봉사든 도움을 청하는 곳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동네의 ‘슈퍼맨’이었다.결국 그렇게 수 십년 동안 착하게 장사를 한 결과 현재 살고 있는 2층 상가건물을 소유하게 됐다.

 

▷ 지금도 한적한 지방에 가보면 마을 어귀에 이끼 낀 비석들이 나란히 자리한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오랜 옛날 그 마을에 덕을 많이 베푼 이들의 공을 기려서 세운 비(碑)들이다. 이런 공덕비 중에는 탐관오리들이 스스로 세운 경우도 없지 않았다.그러나 대부분 ‘공덕’을 진심으로 기리는 마음에서 주민들이 직접 세운 비석들이다. ‘공덕’은 범어로 ‘guna’이다. 예전부터 불교에서는 ‘공덕’을 많이 닦고 쌓을 것을 강조해 왔다. 부처님께서는 탑을 세우고, 절을 세우고, 사경을 하는 것이 큰 ‘공덕’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도 입춘이나 대보름 전날, ‘공덕’을 쌓아야 액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풍속을 이어오고 있다. 남몰래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거나 험한 길을 다져 놓거나, 걸인들을 위해 음식을 짓거나 행려병자에게 약을 주는 등의 ‘공덕’ 쌓기를 서로 질세라 행하곤 했다.

 

주변에 재력(財力)있는 부자들이 많다. 그렇다고 재물이 많다고 해서 모두 다 선행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주변에 무료로 국수 공양을 하거나 김장김치를 나눠주는 평범한 선한 이웃들이 줄고 있다는 소식은 그저 씁슬하기만 하다. 분명한 것은 착한 이들이 많아 질수록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좋은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훈훈한 소식들은 결국 주위를 감동시킨다.물론 먼저 감동하는 것이 자신과 가족이겠지만 말이다.어쨋든 돈은 무조건 많이 소유 할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생각부터 내려놔야 한다.비록 가진 것 하나 변변치 않지만 밀알같은 힘이라도 보태서 남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만 있으면 된다. 그래야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진짜로 멋진 부자가 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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