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아프지만 감사하다.그래서 행복하다

▷ 동네 골목길을 한참이나 헤맸다.예전에 알려준 주소로 차량 네비게이션에 입력후 도착해보니 다름아닌 산꼭대기였다.불현듯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예정된 강의시간이 십 여분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본뒤 확인해 보니 웬걸 잘못 알려줬다며 연신 미안해 한다.신통치 않은 시력이었지만 멀리서나마 작은 간판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아동 돌봄센터라고 적힌 낡은 간판이 겨우 시야에 들어왔다.부탁해서 따뜻한 물 한잔을 받아 마시고 거친 숨을 돌렸다.비좁은 2층 강의장엔 예상 인원보다 많은 자활 근로자들로 북적였다.대충 세어보니 40여명은 훌쩍 넘었다.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을 비롯해 젊은 청년과 부부,혼자 온 여성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갑작스런 초겨울 날씨 탓에 무거운 외투를 입은채 앉아 있는 바람에 의자 사이를 겨우 빠져 나가서 강단에 섰다.

이날 강의장 만큼은 경제교육을 위한 자리였다.하지만 교육내용 하나라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열기로 후끈거렸다.사실 나 역시 어렵게 모인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어젯밤부터 고민을 해온 터였다.비록 나락같은 절망에 빠져 있어 도무지 역전의 기회라곤 영영 안보일지언정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그래서 내가 무슨 절대 긍정의 아이콘이라도 된양 강의 내내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결국은 형편없는 소득이 문제였다.월 70~80만원 급여로는 당장 식구들 생활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쏟아낸다.그래서 일이 끝날 때마다 독한 소주로 허기와 나약함을 달래느라 늘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단다.게다가 당장 갚아야 할 돈 문제와 늘어나는 약값 때문에 늘 마이너스 상태란다.

하물며 홀로 사는 부모들을 챙겨야 하는 부담 때문에 도통 정신이 없단다.쉬는 시간에 각자의 사연을 듣고 있노라니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마음은 짠했다.90분 강의를 끝내고 인사를 나눈뒤 2층 계단을 내려갈 참이었다.문 밖에서 일찌감치 서성거렸는지 무뚝뚝하게 생긴 50대 남자가 믹스 커피를 손수 타서 건넸다.말을 할까 말까 한동안 멈칫하더니 드디어 고맙다는 말을 어렵게 건넨다.“비록 적은 돈이지만 중고 트럭을 한 대 마련해서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야채장사를 해보고 싶다”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나 역시 이 대목에서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암요, 내년엔 꼭 장만할 수 있을 겁니다.절대로 꿈을 잃지 말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이뤄질 거에요”

▷ ‘감사’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또 다른 할 얘기가 생겼다.최근 다문화 가정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한국에 온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베트남과 키르키즈스탄 여성들이었다.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대화의 속도를 일부러 늦췄다.웬걸 빨리 말해도 대충 이해할 수 있다면서 오히려 호기를 부린다.이야기를 들어본즉 국제결혼을 통해 부푼 꿈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단다.비록 낯선 한국생활이 모국만큼 편안하고 쉽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만족한다면서 서로 눈치를 본다.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깜짝 놀란 질문을 던진 탓에 내가 무척 당황했다.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베트남 출신 주부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매각한뒤 전세로 이사하고 남은 돈으로 토지를 매입할 계획이란다.그래서 어느 지역 토지를 구입하는 것이 좋냐며 추천하란다.다문화 가정 새댁이 순식간에 투기(?)의 한국인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물론 평소 남편의 의중도 있었겠지만 설마 토지 이야기가 나올 줄은 전혀 뜻밖이었다.

사실 본인도 많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알바를 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었다.다행히도 남편도 작은 회사 공장에 다니고 있고 자녀들이 어린 탓에 아직은 여유가 충분하단다.최근 성장중인 베트남의 경제상황을 알려주자 무척 의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그래서 종자돈을 모아서 모국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며 귀뜸했다.현재 한국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일자리도 많고 돈 벌 기회도 많아서 관심을 가져보기에 충분했다.그러자 옆에 앉아 유난히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얼굴 살이 통통한 키르키즈스탄 40대 여성도 말을 보탠다.비록 3년마다 친정을 다녀오느라 비행기 값으로 100만원이 소요되는 탓에 너무 비싸다며 굳은 표정이다.하지만 우직한 남편을 잘 만난 탓에 한국에 대해 늘 고마움을 느낀다며 부끄러워 한다.그래서 남편이 무역 일을 통해 돈 많이 벌어 양국에 도움이 되는 비지니스맨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단다.요즘엔 대통령 문제로 시끄럽지만 그래도 한국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며 내손을 살짝 터치한다.

▷ 지난 주일이 추수 감사절이었다.이스라엘의 3대 명절은 유월절을 비롯해 오순절과 초막절이다.이스라엘 남성들이 성전으로 올라가도록 규정된 순례명절인 동시에 농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계절 명절이라고 볼 수 있다.특히 유월절에서 시작된 보리추수는 오순절에 도달할 때는 그 절정을 이룬다.여름 추수까지 마친 후에 지키는 초막절은 1년 전체의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추수에 대한 감사는 유대인의 중요한 정신이다.잘 알고 있다시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 속에서 감사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세 번이나 거듭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한편 디트리히 본회퍼는 <함께하는 삶>에서 감사가 없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매일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분량과 풍성함을 향해 성장하는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다”

결국 행복은 늘 단순한 데 있다.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초겨울날 하루 품삯을 내팽겨친채 괜찮을지도 모를 내용 하나 건질려고 비좁은 강의실에 미리 와 앉아 있을 때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가.분에 넘치게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됐다면서 믹스커피 한 봉지를 건네주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조건이다.이 작고 소소한 일상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즐거움을 포기하는 꼴이다.밤새 잠 못 이루고 술이 덜 깨어 혼미해도 무겁고 더딘 발걸음이라도 내딛어야 행복을 건져낼 수 있다.그것을 남에게 맡겨 버리면 스스로에게 주어진 행복의 조건을 걷어차는 것과 다를 바 없다.그래서 말하건대 진정 행복하려면 지금 당장 자신이 받은 복(福)을 세어 보기 바란다.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부자(富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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