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경식입니다."

이름을 듣고도 조카라는 인식이 얼른 새겨 지지 않았다.

금병매 속의 서문경쯤 돼 보이는 조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가까이서 찬찬이 들여다 보니 젊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눈가엔 주름이 자글자글 했다.

웃는 모습은 징글맞다고 할만큼 능글능글했다.

대머리가 된 탓에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인데 기억 속에 떠오른 경식이는 「범생이」로 통했던 먼 친척이었다.

그의 결혼식 참석 후 못본지 20년이 넘었으니......

 

경식은 서울의대 나와 충청도 부잣집 딸에게 장가들었었다.

대전에 병원차린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거기까지 였었다.

경식을 달고 사무실로 왔다.

흑임자를 넣은 생식을 죽으로 끓여 경식과 저녁을 대신한 다음 차를 한잔 달여마셨다.

경식은 나의 행동을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숙부님" 이라고 반갑게 불렀던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공허함 같은 것에 불과 했든지 인연의 끈을 맺는 것이 될지 알지 못했다.

 

경식은 서초동에서 성형외과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대전이었으나 서울로 온지는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숙부님, 서울 계시는지 몰랐습니다. 알고도 찾아 뵙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심했든 것은 사실입니다. 죄송합니다."

<피장파장일세, 아들은?>

"아들만 둘입니다. 큰 놈은 군의관으로 근무 중이고 작은 놈은 고2입니다."

<어드, 가족의 생년월일을 대보게>

 

가족 명은 ①경식은 기유(己酉)년, 임신(壬申)월, 을묘(乙卯)일, 임오(壬午)시 대운 ①었고 ②처는 기유(己酉)년, 정축(丁丑)월, 계사(癸巳)일, 임술(壬戌)시 대운 ⑦이었으며

③큰아들은 갑술(甲戌)년, 병자(丙子)월, 경오(庚午)일, 경진(庚辰)시 대운 ⑨, ④ 작은 아들은 경진()년, 병술()월, 병인()일, 경인()시 대운 ① 이었다.

 

<아들 둘은 잘 낳았군, 별탈없으면 크게 될 것일세. 그나저나 부부해로가 어렵게 돼있으니 참고 살아야 할 것일세>

"서울로 오기 전에 이혼했습니다."

경식의 처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긴 했으나 일시가 좋지 못했다.

겨울생의 일시 천갈이 계(癸)와 임(壬)이니 골치 아픈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경식이 이혼한 사연을 털어놨다.

처는 질투심이 심해 간호사와 말도 못하게 할 정도 였으며 아들 낳고는 서서히 정이 떨어졌고 헤어지기 바로 전에는 처가 아들들 하고 날마다 싸우다시피 했다고 했다.

일요일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교회에서 살았는데 돈을 퍼붓다시피 했다고도 했다.

계사일주가 월에 정화를 봤고 좌하(坐下)에 사(巳)가 있으니 돈많음은 당연한데 시가 임술로 겁재와 정관이므로 아무리 부자라도 거지 꼴이 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경식이 장인에게 "따님을 데려가십시오" 하고는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장인은 "미안하다"면서 딸을 데려가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버렸다고 했다.

잘살려고 했던 결혼이 능력부족으로 파산이 나 버린 것은 화해, 용서, 배려, 감사, 사랑과 같은 쉬운 낱말들의 진의를 파악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과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만 얽매인 탓에 얻어진 결론이었던 것이다.

 

아이둘 데리고 인사차 다시 오겠다며 일어서 나가는 경식을 보며 나는 「가족이 전부 하반기 생이니 한바탕 비극은 필수다」 명리적 해석에 집착하고 있었다.

 

한정희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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