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해방문은 10번쯤 됐다.

첫 번째는 여름이었다.

상해 중의약대학에서의 침술강의 및 실습과 부속병원에서 가운 입고 현지 의사를 가장해 침놓기를 실전을 통해 했었던 때였다.

당시 중국 명의로 소문난, 특히 침술 대가로 소문난 교수에게서 밤잠을 설쳐가며 100년 이상 가전(家傳)의 비법으로 물려온 침법을 배웠었다.

두 번째는 그해 10월에 그 교수에게 좀 더 배우려고 방문했었고 입학을 권유받고 준비하다가 친구의 SOS를 받곤 꿈을 접고 말았었다.

 

그런 뒤로는 사무실, 공장, 판매망 등에 관한 풍수 자문이 대부분이었다.

중국 명소에 대한 여행은 짬짬이 했다.

주만 간 살 격으로 웬만한 곳은 훑었으므로 중국에 대한 식견은 수박 겉핥기식이나마 있는 셈이었다.

상해 방문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소식이 뚝 끊어진 영남이가 갑자기 떠올랐다.

영사관을 방문했다.

영남의 아들은 북경 쪽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사관 직원은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일 텐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더는 소식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동행한 공 총장은 "아무래도 무사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서 회장의 일주가 정유(丁酉)고, 아들은 병신(丙申)이니 결론은 무술(戊戌)년이 되면 나겠지만 둘 다 상반기생이니 기해(戊戌)년이 돼야 정리될 것 같습니다>

"좋은 쪽으로의 해결 방법이 전혀 없겠습니까?"

<북경은 상해보단 북쪽이고 금수(金水) 기운이 강한 곳이니 지리적으론 유리합니다. 그보다는 조상지업이 문제겠지요>

"내년이 병신이고 내후년이 정유이니 운으로는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묘수는 그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고 움직인다면 다른 사람이 해야 되며 하반기 생중에서 금기가 강하고 재력이 있으면서 권력 쪽에 끈이 닿는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방 여사는 홍콩으로 딸을 만나러가고 오사장은 할일이 더 남았다고 했다.

미녀는 새이름을 「미소가 짱」이라는 뜻으로 장미소(張美笑)라 지어줬는데 마음에 들어 하니 다행이었다.

성은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해 보였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성은과 미소는 상해에 남았고 귀국길은 공 총장과 둘이었다.

홍차우 공항에서 동방항공을 이용, 김포로 왔다.

상해와 서울의 기운(온도와는 다른) 차이가 엄청났다. 공 총장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말했다.
"저는 중국에서는 못 살 것 같습니다."

<총장님은 습기 찬 곳이 많지 않아서 상해가 별로였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딱히 불편한 점도 없었고 지리(地理)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떨어져 있으니 민성이가 엄청 보고 싶은 것도 깨달음이었고요."

 

공 총장과 헤어져 사무실로 들어서니 썰렁했다.

비운 지 1주일도 안 됐는데 낯선 기분이 드는 것은 사람의 체온 탓이리라 여겼다.

「에라, 모르겠다. 사우나나 다녀오자」

사무실 근처의 사우나 장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니 좋았다.

뜨거운데 입에서는 「어, 시원하다」가 나왔다.

그때 머리가 약간 벗겨진 젊은 친구가 나를 보더니 「숙부님」하고 불렀다. <어음, 누군가?>

 

한정희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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