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퇴직금 노리는 사기꾼 퇴치법

▷ 우산봉 자락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신령스런 기운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십 년째 운영중인 편의점은 그럭저럭 장사가 잘된다.주말에 동네 산책을 마친뒤 가게에 들러 쵸코파이 한 박스를 사들고 계산을 치를 무렵 짠순이 여주인 표정이 왠지 어둡다.요즘 도통 내 얼굴 보기가 힘들다면서 냅다 호통을 친다.건장한 사내처럼 목소리가 걸걸하고 씩씩한 성격의 소유자다.하루 왠 종일 10여평 남짓되는 가게에서 앉아 있으려니 답답한 심정도 이해도 가련만 그래도 늘 웃는 표정이다.어쩌다 편의점 앞에 설치된 빨간 파라솔에 앉아 양지마을 세탁소 사장님과 늦은 밤 소맥이라도 먹는 날이면 한 잔씩 건네곤 한다.그럴때면 가게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흰 종이를 떼라고 요구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뭔고하니 보험가입을 유도하는 문구와 각종 특약과 담보내용이 빨간 펜으로 깨알같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매사에 억척스런 그가 편의점에서 보험도 판매하는 어엿한 보험 설계사로 투 잡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처음엔 동네 어귀의 이곳 편의점을 들렀을 때 벽면에 붙은 보험문구가 적힌 글들을 보고 참으로 당황했다.어쩌면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마트에서 보험을 판매하는 창구 즉 ‘마트 슈랑스(martsurance)’이었던 셈이었다.예전에 너무 궁금해서 여주인에게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물건사러 온 손님들이 여기서 보험을 가입 하느냐는 질문에 대뜸 신통치는 않지만 가입자가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는 답변이 돌아왔다.알고보니 모 손해 보험사에 본인은 물론이고 부모와 자녀들을 포함해 모두 6명 이름 앞으로 한달 보험료로 170여 만원이 지출되고 있었다.처음엔 매월 납입중인 보험료를 듣고서 깜짝 놀랐지만 오히려 여유만 있다면 추가로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어쨋든 그는 그렇게 가게에서 물건도 파는 동시에 보험 문구를 보고 살짝 관심을 보이는 손님에게 적극적인 클로징으로 보험도 함께 판매했다.

 

사실 알고 보면 여주인은 그렇게 생활형편이 초라하지는 않았다.현재 살고 있는 상가주택은 비록 대출금이 남아 있더라도 어엿한 그가 소유한 건물이다.게다가 1층에서 편의점도 운영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억척스런 60대 동네 아줌마였다.그동안 지방에서 소위 괜찮다는 알짜 아파트와 토지 매매로 약간의 돈도 벌었지만 한편으론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결국 이젠 모두 정리한뒤 현재 거주하고 있는 10억짜리 건물이 유일하다.게다가 상가주택을 짓고 이사 오기 전에 분양 받아 놨던 20평짜리 상가에서 월세를 꼬박꼬박 받고 있는 중이다.그런데 늘상 밝은 얼굴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보험료 때문이었다.많이 가입할수록 나중에 보험금을 많이 탈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화근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편의점 수입이 신통치 않은데다 소유하고 있던 상가에서 1년째 공실이 지속되면서 보험료를 끝내 연체하고 말았다.문제는 앞으로 남은 10년 동안 무려 200만원 가까이 되는 보험료를 낼 수 있을지 골치가 아팠다.그 이유는 가입했던 보험상품 중에는 갱신형 상품이 많아서 매년 보험료가 올랐기 때문이었다.무조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면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판단이 지금에 와서야 뒷목을 잡을 거라곤 아예 생각하질 못했다.잘 알지도 못하는 보험 상품 가입권유는 물론이고 심지어 본인까지 설계사로 등록시킨 고향 선배가 이제 와선 악연이라며 치를 떤다.결국 본인의 생활 형편을 감안할때 너무 지나치게 많이 가입했음을 뒤늦게 인정하고 말았다.그래서 조만간 어떻게든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리모델링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였다.

 

▷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시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이었다.원도심에 살고 있는 구민들을 대상으로 은퇴설계 강의를 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새벽부터 줄기차게 내렸던 비 때문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게다가 수강생 대부분 연령이 현업에서 은퇴한 지가 훌쩍 지난 60세 이상이었다.시간이 흘러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강의는 예정된 시간에 시작됐지만 어느새 우산을 접고 하나 둘씩 빈 자리를 메워 나갔다.‘돈 걱정 없이 멋지게 사는 법’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자 일부러 시간을 내준 것에 고맙고 한편으론 내심 놀랐다.이렇게 노후준비에 대한 관심이 높을 줄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제 남은 두 달만 보내면 80세라는 수강생 회장이 믹스 커피를 손수 타서 건넨다.은퇴세대 부부는 물론이고 혼자 온 수강생들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자식들에게 매월 용돈을 받아서 쌓아 놓기만 하는데 결국 그 사용처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여유있는 질문도 나왔다.하지만 대부분 기초 노령연금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를 비롯해 적지만 월세를 받고 있는데 조만간 이자가 올라서 공실마저 생기면 큰 걱정이라는 질문도 쏟아졌다.두 시간 짜리 강의를 마치고 나갈 무렵 출입구에서 두 명의 은퇴자가 서성거렸다.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본즉 ELS를 가입했는데 손실이 너무 크다며 울먹거린다.손실 폭을 물어보자 무려 마이너스 30% 란다.당초 투자원금은 얼마나 되는지 묻자 자그만치 1억원이나 투자했다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실 생활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는 원도심에서 거주하는 주민 치고는 엄청난 액수였다.알고보니 평생동안 번 돈을 탈탈 털어 은행엘 갔는데 결국 이 상품을 추천한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단다.엘리베이터 옆에서 깊은 한숨을 쉬던 한 어르신은 예전에 가입했던 중국펀드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단다.자식들 몰래 가입한 건데 이렇게 수 년동안 애를 먹을 줄 몰랐다면서 아직도 원금 될려면 어림도 없다면서 손사래를 친다.참으로 안타까웠다.강의 도중엔 창피해서 질문도 못한 채 텅빈 강의장에 남아서 어렵게 던진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주질 못해 가슴이 아팠다.

 

▷ 평소에 내가 강의와 상담을 통해 자주 하는 말이 있다.경제와 금융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금융지식을 제대로 알면 ‘약’이 되지만 모르면 무조건 ‘독’이 된다.그렇다고 전문가 뺨 칠 만큼의 수준은 아닐 지언정 ‘맥’ 정도는 짚어 볼 수 있어야 한다.물론 ‘맥’을 짚는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호락호락 쉽지는 않다.하지만 일상에서 작은 관심부터라도 가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왜냐하면 내가 모르면 결국 알토란 같은 목돈을 사기 당하기 십상이다.주변엔 은퇴자들의 퇴직금을 노리는 선수들이 미리 셈을 끝내고 달콤한 화법으로 기회를 엿보기 때문이다.그래서 말인데 흔히들 얼마만큼 투자할 수 있냐는 질문에 각자가 지혜롭게 대처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결국 수준 높은 강의와 금융교육을 잘 받아야 할 것은 물론이고 늘 긴장하며 신문과 방송을 꼭 챙겨야 한다.특히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금융권 창구에서 상품을 권유하더라도 냅다 가입하질 말고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잘 모르면 알 때까지 여러 번 물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또한 번거롭지만 작은 글씨로 메모해온 뒤 주변의 도움을 받아 분석해야 한다.금융기관 한 곳만 주구장창 갈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다녀서 수익률이라든가 리스크도 동시에 촘촘하게 비교해야 그나마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높은 수익률엔 반드시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무조건 수익률이 좋다고 광고하는 상품에는 어떤 함정이 있는지 두 눈 부릅뜨고 가려내야 한다.세상엔 공짜는 없는 셈이다.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당장 겉보기에 화려한 것들도 거품이 꺼지고 나면 형편없는 민낯만 드러날 뿐이다.따라서 실비보험 하나라도 아니 작은 보험료로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암 보험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게다가 특정 기초자산에 투자해서 확정 수익률을 제공하는 파생상품은 더더욱 따져봐야 한다.높은 수익률로 호들갑 떠는 세일즈맨를 무시하고 정말로 자신의 인생 이벤트에 따라 노후자금을 설계해 주는 그런 진짜 전문가를 만나야 한다.결국 피땀 흘려 얻은 소중한 내 자산은 본인 스스로가 지켜내야 한다.나중에 신문방송을 본뒤 창구에서 만났던 판매 직원과 금융회사에 따져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전에 자신의 책임아래 신중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그것만이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불안한 은퇴세대들이 퇴직금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다.그러니까 반드시 이 사실을 명심하시라.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